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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행학습] 앞서갑니까? 헛걸음입니다.
앞서서 갑니까? 헛걸음입니다! | |
표지 이야기 | |
박창섭 기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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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찌감치 마친뒤 반복학습한다? #풍경 1 정길동(가명·21)씨는 ‘수학 신동’이었다. 네다섯 자리 덧셈, 뺄셈도 거의 암산으로 했다. 네살 때부터 수학 학습지를 보고, 수학 비디오, 수학 퍼즐 등을 즐긴 덕이 컸다. 이름난 강사를 불러 과외도 받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중학 과정을 마쳤고, 이후엔 고교 수학정석을 풀었다. 하지만 중학교에 올라가자 정씨의 수학 성적은 급전직하했다. 80~90점대는커녕 50점을 못넘을 때도 있었다. 부모는 도무지 이해가 안갔다. “10년 넘게 수학에 올인하고 있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열받은 부모는 더 비싸고 유명한 과외 교사를 들였다. 강남가 최고의 학원도 찾았다. 그러나 백약이 무효. 정씨의 수학 성적은 올라가지 않았다. 수학 덫에 걸린 정씨는 결국 서울을 떠나 지방의 작은 대학으로 진학했다. 지금은 휴학하고 삼수 중이다. #풍경 2 이정린(가명·15)양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1등을 독차지했다. 공부는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다. 부모는 특목고에 진학할 것을 권유했다. 이양은 6학년 2학기 때부터 중학과정 선행학습에 들어갔다. 과외교사로부터 일주일에 2번 3시간씩 특강을 들었다. 지난해말부터는 특목고를 많이 보낸다고 소문난 학원에 들어갔다. 그런데 학원에서는 고교 과정까지 모두 끝낸 반에 자신을 배정했다. 그리고 경시대회 문제만 끊임없이 풀게 했다. 학원에 다닌지 6개월 정도 지나자 이양은 공부가 질리기 시작했다. 세상에 어려운 것만 죄다 모아놓은 것 같은 공부를 왜 하는지 회의가 들었다. 성적도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2학기 들어 이양은 학원을 그만뒀지만, 아직껏 공부 노이로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
“특목고에 안가도 좋아요. 그냥 예전처럼 공부하는 재미, 학교 다니는 재미를 느꼈으면 좋겠어요.”
요즘 학생들은 무슨 학교 다니느냐고 묻기보단 무슨 학원 다니느냐고 묻는다. ‘**학원 특목고 선행1반’ ‘00학원 서울대 목표 수학2 선행반’ 등에 다니는지가 학생 수준을 결정한다. 공부 잘하는 학생만 선행학습을 하는 게 아니다. 웬만하면 다 한다. 학생들 말을 종합하면 50% 이상의 학생들이 선행학습 학원에 다닌다.
선행학습 과외도 성행이다.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면 서울대니, 연고대니 하는 식으로 목표대학을 정한 뒤 거기에 맞춰 앞선 과정을 미리 공부한다. 학부모 김정순(45)씨는 “중학교 졸업 전까지 고교 과정을 마쳐야 서울대를 갈 수 있다는 게 요즘 부모들의 정서”라고 전했다.
선행학습은 기본적으로 특목고나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한다. 따라서 일찌감치 과정을 마친 뒤 반복학습을 통해 성적을 높이 수 있다는 게 많은 학생들과 부모들의 생각이다. 또 어려운 부분을 미리 배움으로써 아이의 공부 능력을 키울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과연 그럴까? 서울 한성여중 고춘식 교사는 “교육 과정은 수십년간의 현장 적용과 교육 이론을 바탕으로 만들어놓은 것인데, 그보다 의도적으로 앞서 갔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 생각해보라”고 충고한다. 실제로 학원 중심으로 이뤄지는 대부분의 선행학습은 단기간에 많은 진도를 나가야 하기 때문에 어설픈 문제풀이식으로 진행된다. 개념이나 이론의 배경 설명은 겉핥기식으로 이뤄진다.
강미선수학연구소의 강미선(37)씨는 “공부란 모름지기 생각하는 훈련인데, 내용만 열심히 쑤셔넣는 선행학습이 생각하는 힘을 길러줄 수가 없다”고 일갈했다. 당장은 공식을 좀 더 많이 알고, 지식은 늘 수 있지만 실제 ‘실력’으로 연결되진 않는다는 얘기다. 특히 요즘처럼 사고력을 요하는 문제의 출제 비중이 높아가는 시점에서 생각하지 않는 공부는 하나마나다. 유치원 때부터 줄기차게 선행학습을 해온 정길동씨가 성적이 좋게 나오지 않은 이유는 여기서 설명된다.
주입식 선행학습은 되레 공부에 대한 기초 개념조차 흔들리게 한다. 서울 동대부고 김용진(34) 교사는 “기초 개념이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자꾸 어려운 과정을 공부하면 단계적 개념 형성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고, 잘못된 개념이 머릿속에 자리를 잡아 고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따라서 초등학교 단계에서 무리하게 중고등학교 과정을 앞서 나가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짧은 시간에 집어넣기식으로 진행되는 선행학습은 결국 학생들이 공부에 대한 자신감을 잃게 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민족사관학교 진학을 목표로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딸에게 선행학습을 시켰던 박선희(가명·44)씨는 “고교과정을 미리 배운 게 민사고 입시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딸 애가 헛공부했다, 앞으론 공부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며 잘못된 결정을 후회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서울 용산고 최수일 교사는 “선행학습이 가능한 아이들은 전교 10등 안에 드는 학생들로 전체 학생의 1~2% 정도에 불과하다”며 “대부분의 학생들은 효과가 의문스러운 선행학습에 매달리기보다는 창의력이나 집중력 개발 프로그램을 듣거나, 현재 학교 진도에 맞춰 보충학습이나 심화학습을 하는 게 훨씬 더 현명하다”고 말했다.
박창섭 기자 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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