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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문제 토론방

거꾸로 사는 엄마 서형숙씨의 교육철학

함영기 | 2005.11.14 08:57 | 조회 3493 | 공감 0 | 비공감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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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꾸로 사는 엄마\' 서형숙(47)씨는 대학에서 국문학을, 대학원에서 한국고대미술사를 전공했다. 1989년 한살림공동체 운동을 시작하여 소비자 대표를 거쳐 현재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환경상‘ 개인 및 단체 부분을 수상했다. 농업, 환경, 공동체, 자녀교육에 대해 신문, 잡지에 글을 쓰거나 TV등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서씨의 교육관은 특별할 게 없다. 그저 아이 말에 귀 기울이는 따뜻한 엄마되기에 충실했다고 한다.
[관련기사]
아래의 글은 서형숙씨가 2004년 9월 스스로 정리한, 두 자녀를 기르는 서씨의 교육철학에 관한 글입니다. 200자 원고지 75매에 이를 정도로 긴 글이지만, 이 시대 일반적인 부모들의 자녀 교육방식과 차이가 분명해 이를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거꾸로 사는 엄마의 행복한 자녀교육
서 형 숙

이 땅에서 우리 아이와 천국처럼 살며 지.덕.체를 겸비한 최고의 아이로 키우기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엄마들은 누구나 내 아이가 남에게 칭찬 받고 좋은 대우를 받기를 원합니다. 아이는 세상에 나가면 유치원에서는 20대 1, 학교에선 40대 1입니다. 아무리 칭찬을 받아도 엄마처럼 일대 일은 아닙니다, 남에게 기대하는 것 엄마 먼저 하다보니 절로 잘 크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스무 살, 열여덟 살 우리 아이들이 지덕체를 겸비했다고 합니다. 서울 강남에서 살고 있는 두 아이는 전인교육으로 학생이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론대로 만끽하고 있습니다. 자유롭게 자란 아이들은 스스로 행복하고 부모를 기쁘게 하고 선생님들이 감탄하고 이웃에서 감동하며 친구, 선후배들에게 인기가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한국청소년의 이상인 심신이 건강한 청소년이며 성실하고 정직하며 풍부한 문화감성을 갖추었으며 다양성과 전문성 및 자기 주도적 생활태도를 갖춘 청소년입니다.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청소년이며 공동체적 질서와 예절을 존중하고 인권을 중시하는 청소년입니다. 또 통일을 준비하며 동북아시대와 세계화를 지향하는 청소년으로 자랐습니다.

새 학년이 되면 전 담임선생님이 문제집을 싸들고 집을 찾기도 합니다, 학교에서 마주하는 선생님들마다 우리 아이들의 엄마가 누구냐며 거꾸로 절 찾으시고 궁금해 합니다. ‘태경이가 선생님하고 제가 학생 해야 되겠어요.’ 라는 큰 아이의 윤리 선생님에 ‘홍원이 엄마는 밥 안 먹어도 배부르겠어요. 아이가 이렇게 잘 크는데요.’ 라는 작은 아이 담임선생님도 계십니다. 열쇠고리에 우리 홍원이 사진을 달고 계신 아이의 6년 전 담임선생님도 계십니다.

한번은 서초구 사랑의 편지쓰기대회에서 금상을 받은 편지가 제게 날아왔습니다. 큰 아이의 친구가 쓴 편지였습니다. 천사가 이 땅에 내려오더라도 태경이 만큼 착할 순 없다며 그런 좋은 친구를 자신에게 준 어머니께 감사드린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학년 초가 되면 저를 따라다니는 엄마들도 있습니다. 그간 지켜봐왔는데 어떻게 하면 아이들 하고 싶은 것 다 하게 할 수 있으며 아이들이 잘 노는데 공부와 부대활동을 이상적으로 꾸려 유학생도 부러워하는 생활을 하는 비결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더구나 온 가족이 날마다 천국처럼 사는 비밀은 무엇인지 더욱 궁금해 합니다.

딸인 큰 아이는 2004년 성적우수자, 수시입학으로 수능시험은 물론 면접도 치르지 않고 원하는 학교 원하는 과에 들어갔습니다. 아이는 예비 고3일 때, 태국에서 열린 제20회 세계잼버리 대회에 가서 IST(international service team) 즉, 운영요원으로 19일간 봉사하고 왔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나이 어린 요원이었습니다. 고 3 입시기간에도 그간과 별 다르지 않게 일상을 즐기고 봉사하며 공부하여 입시기간도 힘들지 않게 잘 지냈습니다.

아이는 9년간 스카우트 활동을 하였고 스카우트 최고 영예인 범 대원(tiger scout)입니다. 청소년협의회 청소년위원으로, 문화관광부 청소년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했습니다. 제1회 한 일 유-스 포럼에서 부의장으로 결의문을 낭독하고 제2회 세계 청소년 문화축전에서는 청소년 대표로 대회개막선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세계의 평화를 꿈꾸는 청소년이 이제 통일을 생각하는 어엿한 젊은이가 되어 대학 신입생으로 북한대학생들과 금강산에서 만났으며 학기 중에는 중국에서 열린 [유엔환경센터] 수자원 탐사계획에 한국대표로 참가했으며 여름에는 아태잼버리 국제부운영요원으로 일했으며 일본, 아시아 태평양 스카우트 포럼에서 한국을 대표하여 발표를 했습니다.

아들인, 작은 아이는 현대고등학교 2학년으로 초등학교, 중학교에 이어 학생회장을 하고 있습니다. 제28회 전국소년체전, 800M 금메달리스트(서울에서 딴 유일한 육상부문 금메달)이며 서울 소년 체전 대회신기록 보유자입니다. 육상선수가 아닌 놀며 체력을 다진 어린이였습니다. 운동장에서 잘 놀더니 운동도 다 잘 하는 것은 물론 다른 교과목도 모두 흥미로워하며 아주 잘 합니다. 중학교에서는 20년 만에 처음으로 학생들끼리 축제를 꾸려 전교생이 하나가 되게 했습니다. 축제사회를 보고 노래와 춤을 공연했으며 중3 때 스카우트에서 배운 사물놀이를 친구들에게 전수하여 ‘안홍원 사물놀이패’를 만들어 학교 축제에서 공연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중1 때는 여수에서 서울까지 국토 종단을, 고1,2 때는 연천에서 강화까지, 다시 강화에서 당진까지 국토 횡단을 했습니다. 이번 교내 체육대회에서는 1학년 축구시합의 주심으로 활약하기도 했으며 지금은 제 2회까지 진행된 ‘현대고 안홍원 배’ 교내축구대회를 열고 있습니다.

저는 아이를 사육하지 않고 교육이론대로, 자연 그대로 키우고 싶었습니다. 많은 엄마들이 옷 살 때 혼용율 살피고, 좋은 학원 고르느라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저는 우리 아이의 행복이 무엇일까를 꼼꼼히 살피는 데 시간을 썼습니다. 아이의 행복이 그 무엇보다 우선이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진정으로 사랑하며 무엇이든 아이 스스로 하도록 오래도록 기다려주고 칭찬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제대로 된 먹을거리를 찾아 제대로 먹였습니다. 그렇게 하니 엄마도 편하고 아이도 편하여 이 땅에서 천국에서처럼 잘 지낼 수 있었습니다.

첫째 다정한 엄마가 되려했습니다.

내 곁에서 숨쉬고 있는 아이에 늘 감사했습니다. 심신이 건강하게 잘 크는 것만으로 만족했고 그 이상은 덤이라 여겼습니다. 엄마를 보면, 엄마 목소리만 들어도 엄마 생각만으로도 온갖 시름이 다 사라지는 이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엄마가 되려했습니다.

1. 언제나 아이를 웃으며 맞았습니다.

언제 어디에서 만나더라도 함박웃음으로 두 팔 펴고 아이를 환하게 맞았습니다. 잠에서 깰 때, 집에 들고 날 때, 전화를 할 때도 아이를 처음이며 마지막 맞는 듯 정성으로 맞았습니다.

아침에는 아이에게 볼을 비비며 ‘잘 잤어?’ 하고 귓속말을 하여 깨웁니다. 뭐든 스스로 하지만 아이 기르는 기쁨을 만끽하기 위해 그리 했는데 아이들 역시 행복한 미소를 띠우며 눈뜹니다. 이렇게 시작한 아이들의 하루는 행복할 것이고 한달이 되고 일년이 되며 인생이 될 것입니다. 이제 처녀 총각이 다된 두 아이지만 아직도 제게 처음 왔던 신비한 작은 생명체의 모습이 보입니다. 저 역시 아주 행복한 시간입니다.

2. 아이가 원하는 것은 다 하게 해주었습니다.

남을 해코지 하는 일이 아니라면 무엇이든 다 하게 해주었습니다. 화장대에서 화장품을 살피고 찬장 그릇을 다 꺼내 탑을 쌓고 성을 만들고 그 안에 들어가 놀고 이불장에 들어가 잠을 자도 그대로 두었습니다. 싱크대를 잠그고 화장품을 위로 옮기는 대신 무엇이든 만지게 하여 일상생활용품이 장난감이 되게 했습니다. 아이가 늘어놓은 그릇에 물을 담아 다양한 색을 보게 하고 나무 막대기로 또는 쇠 젓가락으로 두드려 서로 다른 소리가 나는 것을 즐기게 했습니다. 화장품 향기를 맡아보고 색을 칠해보게 했습니다. 아이들은 어느 정도 호기심이 충족되면 더 이상 만지지 않아서 우리 집은 어린 아이와 함께 살아도 서랍이나 싱크대를 묶어놓거나 화장품등이 다른 곳으로 피신가는 경우와 다르게 뭐든 다 제자리에 놓고 살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이런 경험을 하며 호기심이 늘 충족되었으므로 뭐를 빨거나 껴안고 사는 집착이 없었습니다.

아들은 누나 원피스 입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도 맘껏 누리게 두었습니다. 그러고 할아버지 댁에 가면 어른들께서 ‘사내를 계집애로 키운다’며 혀를 차도 ‘커서도 저러겠어요?’ 하며 아이편이 되어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해 주었습니다. 간혹 벌레를 가지고 놀아도 그도 그대로 두었습니다. 다 놀고 난 후에 꼼꼼히 손을 씻기는 일은 신경을 썼습니다.

걸레질 하는 엄마에게 ‘말이다’ 하며 달려와 등에 타면 저는 아이들의 말이 되었습니다. 집을 깨끗이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다. 달리다가 폭신한 데가 나타나면 히힝 하며 아이를 바닥에 떨어뜨리기도 하며 작은 방에서 말 한필을 키우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아이가 신이 나서 ‘이랴이랴’ 하면 더욱 속도를 내어 달리기도 했습니다. 두 아이는 엄마와 승마장에 있는 듯 즐겼지요.

전철에서 아이가 잠이 들면 더 멀리 갔다가 되돌아왔습니다. 아이는 달콤한 잠을 자고 천국에 있는 듯한 아이를 보는 엄마의 마음 역시 천국이었습니다. 약속이 있어 아이를 꼭 깨워야한다면 함께 일어나서 전철 문이 몇 개인지 살피던지 머리 위 손잡이에 아이를 달아주면 잠이 달아났습니다. 전철 안이 놀이터가 아니므로 조용히 그런 일을 하면 아이는 기뻐하고 그것을 보는 주변 어른들도 이해하여 아이에게 미소를 보냈습니다. 눈을 반짝 뜨게 된 아이 역시 행복해 했습니다. 아무데서나 잠이 드는 아이를 충분히 이해하고 다정하게 풀어냈습니다.

학교 안 가려고 울던 아이, 운동장에만 세우면 축구 싫다고 도망가던 아들이 초등학교 3학년부터는 축구 재미에 빠져 온갖 시합장을 두루 다녔습니다. 대회비를 지원하고 짐 싸들고 따라가서 하루 종일 응원하였습니다. 뾰족한 골 맛도 보여주진 않았지만 공부엔 관심도 없었지만 아들이 즐기는 경기라 열심히 함께 했습니다.

예비 고1 딸은 한 달 동안 고교 학업 준비는 않고 털 천을 끊어다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달린 토끼모양 옷을 손으로 꿰매 날마다 조금씩 만들었습니다. 저는 동대문 시장에 같이 가고 재단을 해주고 지퍼를 달아 마무리를 도왔습니다. 예비 고3 소녀는 태국, 세계잼버리에 가서 봉사하고 돌아왔습니다. 다들 정신 나갔다고 혀를 찼지만 아이가 원하는 일이라 보냈습니다.

두 아이 다 월드컵 때는 지방 경기장에 축구를 보러 다녔습니다. 평생에 한 번 밖에 없는 세계축제에 빠질 수 없다며 학교를 결석하고 갔습니다. 세계적인 축구 선수들과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을 만나 즐거움을 만끽하며 지내게 했습니다.

3. 아이를 원 없이 놀게 했습니다.

아이들은 노는 것이 일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원 없이 충분히 놀았기 때문에 무슨 일에나 흥미를 갖게 되었고 활력과 창의력이 넘치는 아이로 자랐습니다. 엄마로서 여유를 갖고 언제나 노는 것 자체를 칭찬했습니다.

아들은 유치원도 한 학기를 다녔을 뿐 학원 한 번 다니지 않고 초등학교 내내 운동장을 지키는 아이였습니다. 학원 다니며 사이사이 짬을 내서 운동장에 나오는 아이들과 잘 놀기 위해 있는 머리를 다 짜냈습니다. 지금 놀고 있는 아이들과도 잘 놀아야 하고 새로 온 아이와도 놀이의 맥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논다고 눈감고 귀 닫고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머리가 쌩쌩 돌아가 누구와도 잘 놀고 어디서도 장난감을 찾아내며 훗날 어떤 행사기획도 다 할 수 있게되었습니다.

고교생이 되어서야 가끔 학원을 찾았던 딸 역시 초등학교, 중학교 내내 노는 시간이 넘치는 아이였습니다. 5학년 때 이정향 영화감독(집으로)께 한 달간 무료 연극 지도를 받았는데 학원 때문에 빠지는 보통 아이들과 다르게 매일 출석하는 아이는 감독의 칭찬과 사랑을 듬뿍 받을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제가 오히려 감독께 감사인사전화를 받는 처지가 되었고 훗날 아이는 여러 큰 행사를 기획하며 발표를 잘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많으니 책도 많이 보았고 중3 때는 컴퓨터로 혼자 수화와 점자를 배워 친구들에게 전파시키기도 했습니다.

둘째 영리한 엄마가 되려했습니다.

늘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했습니다. 어린 아이는 병원이 싫고 무섭습니다. 이비인후과에서 입 소독을 안 하려는 아이 곁에 앉아서 노래를 부르면 아이는 노는 줄 알고 노래를 따라 불렀습니다. 자연스레 소독 액이 아이의 입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아이에게 강요하지도 않으면서 일을 잘 풀었습니다. 좁은 의자에서 예닐곱 시간을 보내며 여러 선생님을 시간 마다 맞아야하는 아이들, 많은 친구들과도 안테나를 일일이 맞춰야하는 아이들이 집에 돌아오면 웃음으로 반겨 맞았습니다. 그런 것들이 숨쉬듯 자연스럽겠지만 긴 시간을 밖에서 보낸 아이는 집에 들어오면 무조건 쉬게 했습니다.

1. 칭찬을 하며 아이 스스로하게 기다렸습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탯줄에서 분리되어 스스로 숨을 쉬어야 아이가 살 수 있듯이 스스로 하게 했습니다. 아이는 성취감을 맛보고 저는 자녀가 자라는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네 살 아이를 혼자 신발 끈을 묶게 하면 기다림의 진수가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어디를 가려고 길을 나서다가 현관에 앉아 느리고 어설프기 그지없는 신발 끈 묶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기다렸습니다. 아이도 처음 하는 일이고 엄마도 처음 보는 일이니 보잘 것 없는 성과에도 크게 칭찬하였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이 되면 자연스레 제 책가방은 스스로 싸게 하였습니다. 숙제 역시 스스로 하게 했습니다. 좀 부족해서 당장은 선생님께 꾸중을 들어도 그건 자기의 일이라는 것을 인식시켰습니다. 엄마는 오후 9시가 되면 퇴근한다며 더 이상은 집안에서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아이는 어려운 숙제가 있으면 초저녁에 들고 와서 봐달라고 했습니다. 아이의 책가방과 숙제로 엄마가 골머리 앓을 일은 없었습니다. 학교 환경미화도 스스로 하게 했습니다. 좀 못해도 스스로 하게 하여 시간이 지나니 어떤 장식도 다 할줄 알게 되었습니다. 미술과외 따로 시키지 않아도 아이가 실력을 갖추게 되어 수행평가며 옷 입는 감각까지 뛰어나 아이에게 손 갈 것이 없었습니다. 스스로 하는 아이의 수행평가를 참견할 일도 없었고 시험 때라도 매달릴 일도 없었습니다. 아이가 시험 중이라도 우리 부부는 어버이 날이라면 부산 시댁에 가는 등 보통 때처럼 지낼 수 있습니다.

칭찬만큼 좋은 묘약은 없습니다. 조그만 일에도 칭찬을 했는데 5학년이 되도록 공부에 취미가 없던 아들에게는 공부가 아닌 다른 것들을 찾아내 늘 칭찬했습니다. 축구공을 잘 몬다든지 하다못해 대변을 아주 잘 보는 것도 칭찬을 했습니다. 해서 아들은 자신이 못하는 아이란 생각을 하지 않고 자신감 이 넘쳐 밝고 명랑하게 잘 자랄 수 있었습니다.

2. 공교육을 우선한 적기 교육을 시켰습니다.

6월 15일은 콩을 심는 날입니다. 빨리 수확하려 그 이전에 심으면 덩굴은 무성한데 콩이 열리지 않습니다. 제 날에 심은 콩은 풍성하게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또 제철 음식을 먹이면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자랍니다. 제철음식이 양분도 많지만 철에 맞게 작용을 하기 때문입니다. 여름에 보리를 먹으면 몸이 시원해져서 더위가 겁나지 않습니다. 선풍기 아니라 부채를 쓰지 않고도 여름을 잘 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아이들에게 적기교육을 하여 최고의 효과를 보았습니다.

글자를 늦게 깨치게 했습니다. 글자는 일종의 기호입니다. 약속으로 익히는 것이기 때문에 글자를 미리 익히지 않은 아이들은 그만큼 창의력이 뛰어납니다. 일곱 살이 되도록 글자를 못 익힌 아들은 제 이름의 홍자를 히읗이 두개라는 것을 찾아내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영어 교육 역시 학교에서 배우기 때문에 미리 가르쳐보내려 하지 않았습니다. 내 나라 말을 잘 하면 내 나라 문화를 잘 알면 나중에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딸은 영어는 중학교에 가서야 학교에서 배웠습니다. 그래도 중1에 처음만나 6개월 만에 미국으로 돌아간 원어민 선생님과 아직까지 교류하며 영어를 즐겨합니다. 중 2에야 사설학원에 다니며 회화를 배웠습니다. 얼마 후에 본 미국 8학년 교과서에 한국의 공용어가 영어와 한국어인 오류를 보고 그 출판사로 메일을 보내 그런 그릇된 정보를 얻게 된 이유와 사과메일을 받았습니다. 영어를 배우기보다는 그 안에 채울 것을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2,3년간의 영어회화를 제외하곤 학교교육만으로 아이들은 다른 나라 사람과 의사소통이 가능합니다. 아들은 언어에는 관심이 적지만 아쉽지 않습니다.

유치원을 다니지 않은 두 아이는 처음 학교에 가서 발표력이 많이 부족했습니다. 선생님들께서 아이가 발표만 시키면 모깃소리를 낸다고 하셨습니다만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학교에서 말하기를 배우므로 자연히 하게 된다고 아이도 선생님도 안심시켰으며 이제부터 시작하자고 부탁했습니다. 닦달하지 않아도 칭찬하며 긴 시간 기다려주니 세계청소년 축제에서 개막선언을 하고 전교생을 데리고 축제 사회를 보는 아이들로 자랐습니다.

뭐든 아이가 절실히 필요로 할 때 가르쳤습니다. 큰 아이의 수영은 효과만점이었습니다. 물을 무서워하던 큰 아이는 중 2 때 여름 바다 캠프를 가기 전 수영을 배우고 싶다고 했습니다. 한 달간 개인교수를 했는데 자유형까지 배웠고 주변 사람들이 구경 할 정도로 수영 틀이 잡혔습니다. 특히 선행학습을 하지 않아 선생님들께 인기있는 학생이 되었습니다. 수업시간에 집중해서 듣는 아이 앞에 와서 수업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아이는 학원 등 사교육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시간이 많아 충분히 쉬었으므로 새로 운 것을 알게 하는 수업시간이 흥미진진한 놀이 자체였습니다.

3. 갈등은 오래 끌지 않았습니다.

적당한 갈등은 삶의 보약입니다. 그것이 해소되었을 때 성취감, 해방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너무 오래되면 아이가 짜증스러워집니다.

동생이 태어나자 누나는 열병을 앓았습니다. 혼자만 사랑을 독차지하다가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엄마의 보살핌을 받는 낯모르는 아이가 고울 리 없습니다. 뭐든지 혼자 해내는 누나를 칭찬하고 아무것도 못하는 6개월짜리 작은 아이를 거짓으로 꾸짖었습니다. ‘누나는 옷도 혼자서 잘 입는데 너는 못 입는구나. 누나는 화장실에서 일보는데 너는 기저귀에 다 싸고 누나처럼 예쁘게 말로 하지 못하고 울기만 하네.’ 그랬더니 오래지 않아 누나가 오히려 ‘엄마, 얘가 아기라서 그래요.’ 하며 동생을 돌보게 되었습니다. 20년이 다 되가는 지금까지 두 아이는 연인처럼 사이가 좋습니다.

장난감에 흥미를 갖게 되면 길가다가도 그것 사려는 아이와 전쟁을 벌여야 했습니다. 인형, 자동차 같은 장남감은 아이와 의논하여 얼마 만에 한 개를 살지 미리 결정하여 참고 지켜나갔습니다.

4. 일상에서 동기유발을 하여 재미있게 가르쳤습니다.

보고 배우게 했습니다. 아이는 어른 등을 보고 자랍니다. 도덕공부를 10여년씩 해도 도덕적인 사람을 만나기 어려운 것은 말로만 배우기 때문입니다. 제가 행할 뿐입니다. 인사를 잘 했습니다. 택시를 타며, 버스를 타며 ‘안녕하세요?’ 하고 늘 인사를 하니 아이가 따라 해서 우리 아이들은 어디를 가도 어리지만 대접받고 살게 되었습니다.

바른 말을 썼습니다. 지지, 찌찌, 빠방 같은 아기가 쓰는 말 대신 완벽한 표준말을 썼으며, ‘~하면 안돼’ 같은 부정적인 어휘 대신 긍정적인 말을 썼습니다. 어른답게 행동하며 빈말은 안했습니다. 전철에서 잠들려는 아이에게 ‘잠들면 두고 내릴 거야’ 같은 협박성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또 거짓말이기 때문입니다. 길에서 떼쓰는 아이에게 ‘저 아저씨가 혼내준다.’ ‘의사가 주사 놓는다.’같은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잠깐이면 지나칠 그 사람이 뭐 무섭나요. 또 이유 없이 다른 사람에게 적의를 갖게 하면 아이 정신건강에 좋지 않습니다. 의사가 주사 준다는 것은 거짓이지요. 주사는 간호사가 놓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의사는 떼쓴다고 주는 게 아니라 치료를 위해 꼭 필요한 때 주사를 놓습니다. 저는 아이가 열린 마음으로 살게 했습니다.

생명성을 알게 했습니다. 두 아이가 두 돌, 네 돌 때부터 먹기 시작한 유기농산물에 무당벌레가 따라오자 책을 가져다가 함께 살폈습니다. 진딧물을 먹는 무당벌레는 새끼를 위해 진딧물이 많은 곳에 알을 낳는답니다. 아이들은 그럽니다. ‘무당벌레도 엄마처럼 아기를 사랑해.’ 그 무당벌레를 위해 장미나무에 데려다 주고 기뻐하는 아이들이 점점 다른 벌레들을 살피며 모든 생명체는 나처럼 귀한 존재라 여기게 되었습니다. 만지면 아플 수도 있어 함부로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화단 밖으로 나온 지렁이를 흙으로 돌려보내는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과 사이가 나쁠 수가 없습니다. 전교생과 세계의 어린이들과 자연스레 함께 하나가 되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고하는 분을 알게 했습니다. 기차역에 일찍 도착하면 역무원에게 부탁하여 기차 기관실을 보게 했습니다. 객실이 따로 되어 있어서 저절로 가는 줄 아는데 아이들은 이런 살피기를 통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쓰는 누군가의 노력으로 편안하게 갈 수 있는 것에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아이들은 집 앞 경비 아저씨와 청소 아주머니께도 고마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유기농 생산지에 가서 일손 돕기를 하며 아이들은 농부의 고마움을 알게도 되었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먹다가 생산자에게 고맙다며 전화를 하자고도 하고 선물을 하기도 하고 편지를 쓰기도 했습니다.

직접 해보게 했습니다. 아이들이 대 여섯 살 때 함께 식혜를 만들었습니다. 재료를 사며 방앗간에서 떡만 파는 줄 알았는데 보리가 싹을 낸 엿기름도 파는 것을 알게 되면 어느 가게에서나 생각지 않았던 다른 무엇을 파나 살피게 됩니다. 만들면서 엿기름물이 가라앉는 것을 본 아이들은 기다릴 줄 알게 됩니다. 빨리 가라앉으라고 소리쳐도 두드려도 가라앉지 않는다는 것을 아이들이 실감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든 잘 기다리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현금자동인출기는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자료 입니다. 기다리는 사람이 없다면 아이들에게 번호를 하나씩 눌러서 작동시키게 합니다. 가정 경제를 이해하고 기계를 다루는 법을 알게 됩니다. 기계는 소리 지른다고 서 두른다고 빨리 처리해주지 않습니다. 사람은 기계가 원하는 속도로 따라 움직여야 합니다. 아이들은 남의 말에도 귀를 잘 기울이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어떤 친구, 어느 나라 아이와도 눈높이를 맞출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미술관, 박물관에서는 쓰지 않고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끼게 했습니다. 욕심내서 많은 것을 보게 하는 대신 한 두개만 집중해서 즐기게 했습니다. 시립 미술관에 가면 그림을 보다가 지루해지면 아예 뜰에 나가 그림을 직접그리기도 하였습니다. 고1 아들은 수학여행에서 울주 반구대 암각화를 만지며 전율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청동기 시대에 그것을 새겼을 사람과 같은 곳에 손을 대고 있다는 것이 가슴 터지는 감동이었다고 합니다. 시간은 다르나 같은 공간에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여. 작품을 오래 즐기더니 이제는 시공을 초월한 대화를 하게도 된 것입니다.

5. 옳지 않은 것은 단호하게 혼냈습니다.

\'떼\'란 제 생각이 생겼다는 증거이므로 귀하게 여겼습니다. 떼쓰면 껴안고 소곤 거려 아이의 마음을 가라 앉혔습니다. 그런데 지속적으로 말로 하지 않거나 억지를 쓰는 떼는 단호하게 바로 잡았습니다. 길가다가 예정에 없던 장난감을 사달라고 떼쓰면 낮은 말로 ‘살 날짜가 아직 안되었는데’ 하고는 지나옵니다. 아무리 우겨도 엄마는 그 이상 말을 않기 때문에 아이는 따라오기 마련이지요.

어렸을 때 다른 아이를 꼬집기에 똑같이 해주며 ‘아퍼’ 했더니 몇 번 하다가 다시는 않더군요. 그래서 아이들은 별로 손가지 않고 잘 자랐습니다. 그래도 정 안 되면 회초리를 든 적도 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아들은 혼자 이기지 못해 울그락 불그락 화를 내곤 했습니다. 사춘긴가 보다 하고 좀 두었으나 문을 거세게 닫는 등 주변을 불편하게 하기에 말로 하라고 했습니다. 개선되지 않자 회초리를 구해와 아이를 때리고는 잘 못 가르친 저도 책임이 있다며 함께 맞았습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셋째 대범한 엄마가 되려했습니다.

소설의 주인공처럼 멋있어지려 노력했습니다. 큰 문제가 생겨도 대범하게 행동하다보니 시간이 지나면서 그게 습관이 되어 나 자신이 되어있었습니다. 처음에는 통 큰 엄마가 아니었는데 지금은 통 큰 엄마, 연구대상 엄마가 되었습니다. 하루는 한 엄마가 제게 전화를 했습니다. “그 집 아이 꼴등이랑 노는 것 알지요?” 저는 ‘그 아이가 우리 아이와 놀아 좀 나아지겠네요.’ 하고 받아넘겼습니다. 그 아이는 이제 아주 공부 잘 하는 학생이 되었습니다.

작은 딱지로 엄청나게 큰 딱지를 땄다며 아들이 큰 소리로 엄마를 부르며 집에 들어왔습니다. 함께 무척 기뻐했는데 다음날 아침 학교에 가려고 보니 자전거가 없었습니다. 딱지 딴 것이 너무 기쁜 나머지 자전거는 놀이터에 두고 온 것입니다. 새 자전거가 무척 아까웠으나 기쁨을 엄마와 나누고자 달려온 아이의 마음을 우선에 두었습니다. “너 마음이 아프지? 그래도 홍원이가 엄마한테 제일 먼저 딱지 들고 와서 엄마는 기뻐”라며 자전거 아까운 마음을 뒤로 했습니다.

1. 아이를 온전히 믿었습니다.

저는 제 아이를 온전히 다 믿고 무슨 말이든 그대로 받아주었습니다. 어렸을 때 아이들에게 ‘남을 속일 수는 있어도 나를 속일 수는 없다. 내가 거짓말을 했는지 나는 알기 때문에.’라며 거짓말을 해서 나 자신을 속이지 말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그 말을 이해해 거짓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아이들에게 밖에 나가면 엄마에게 전화하려고 애쓰지 말고 있는 곳에서 잘 하라고 했더니 어느 곳에서나 최선을 다하고 옵니다. 믿음이 있어서 두 아이는 고2, 중3에야 휴대전화를 마련하였습니다.

중 3딸은 친구 싸움을 말리다가 거꾸로 뺨을 흠씬 맞고 왔습니다. 발단이 되었던 아이 엄마와 아빠는 당장 학교에 가자며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 역시 매 한번 들지 않고 귀하게 기른 딸이 아까운데 아이는 ‘그 아이는 나쁜 아이가 아니라 좀 노는 아이인데 오늘 뭔가 오해가 있은 것 같아요. 제가 반장이니 한번 풀어볼게요.’ 해서 기다려주었습니다. 훗날 그 아이는 오히려 미안해하고 서로 잘 지내게 되었습니다. 속은 상했지만 뺨은 이미 맞은 것이고 그 아이를 혼낸다고 맞지 않은 상태로 돌아오는 것도 아니어서 그리했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더욱 중요하지요.

2. 세상의 아이들을 돌보았습니다.

아이 친구들이 집으로 전화하면 내 아이에게 하듯 사랑스럽게 받았습니다. 아이 친구들은 하소연을 제게 하기도 합니다. 또 아무 때나 자녀처럼 우리 집에 와서 잡니다. 저는 제 아이처럼 밥그릇에 남긴 밥풀도 긁어 먹이며 돌봅니다. 이제는 아이들이 다 제 아이 같습니다. 필리핀의 한 소년은 어머니날이면 제게 편지를 보내기도 합니다.

길에서 만나는 욕하는 아이들을 타일렀습니다. 20여년을 했는데 한번도 사나운 아이를 본적이 없습니다. 집에서 칭찬 못 받는 아이, 밖에서도 그러니 욕밖에 더 나올게 있나싶기도 합니다. ‘잘 생긴 사람이 왜 욕을 하니? 너 얘에게 욕했으나 그건 네 거다. 네 입에서 나왔으니까. 자신은 자기가 깎는 조각상이야, 이렇게 멋진데 함부로 다루면 너무 아깝잖아’ 칭찬과 사랑으로 그리고 진심에서 우러나온 참견을 들은 욕쟁이 길가 아이들은 다 제게 선의로 다가와 인사를 하고 헤어졌습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아이들을 내 아이로 여기는 부모가 많아진다면 내 아이도 어디를 가도 많은 다른 낯모를 부모의 보살핌을 받아 행복할 것입니다.내 아이가 살 터전, 내 아이와 같이 살아갈 모든 아이가 행복하게 잘 살아가게 가꿉니다. 마치 전철에서 내릴 때 빨리 타기위해 내릴 사람에게 길을 잘 터주듯이 말입니다. 내 아이만 기를 살려 키워내면 훗날 잘 자라 지도자가 되었을 때 내 아이가 기죽었던 다른 사람 이끄느라 고될 것입니다. 또 내 아이보다 잘난 아이는 훗날 어느 나라 지도자가 되건 내 아이가 앞으로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 존재이므로 더 잘 자라도록 칭찬해주었습니다. 그것은 그 아이를 위한 것이지만 내 아이를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3. 내가 크는 만큼 아이가 크므로 저 자신을 키웠습니다.

어른 되는 법을 익히고 화가 나도 참는 법을 터득했습니다. 아이가 어떤 문제를 일으키든 아이를 잃는 것보단 좋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문제가 생겨도 화가 나지 않았습니다. 또 아이는 아이가 원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제가 원해서 낳았습니다. 아이는 충분히 사랑받고 자랄 권리가 있고 엄마에게는 그럴 의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부질없는 말은 하지 않도록 노력했습니다. 아침에 학교로 가는 아이에게 ‘공부 잘해’, 용돈을 주며 ‘아껴 써’, 시험보고 온 아이에게 ‘잘 봤니?’ 등입니다. 아이가 공부하러 학교에 가고 용돈은 아껴 써야 한다는 것을 더욱 잘 압니다. 시험도 학생인 본인이 더 잘 보고 싶습니다. 해서 시험을 보고 오면 ‘긴 시간 애 썼네. 좀 쉬어야겠다.’, 학교에 온 아이에게 ‘오늘 즐거웠니?’ 라고 말합니다. 아이는 하루 종일 있었던 재미있는 일을 봇물 터뜨리듯 말합니다.

16년 째 도시에서 농업운동을 하며 세상 키우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처음엔 먹을거리만 알았는데 차차 농업문제 환경과 생산의 분배까지 알게 되었습니다. 엄마의 사고 폭이 넓어질수록 아이를 기르기가 수월했습니다. 엄마가 열심히 사니 자연 아이들도 보고 배웁니다. 아무리 바빠도 아이들의 중요한 행사는 빠짐없이 챙겼습니다. 낮에 아이들 작품 전시회에 가지 못하면 오후에라도 학교에 들러 선생님께 잠긴 전시장 문을 열어 달라 부탁하여 살피곤 했습니다. 한 가지 일에 집중하여 한살림 일 이외의 다른 일을 하지 않았으며 동창회도 가지 않았습니다. 낮에는 한살림 일에 매달리고 밤에는 아이들과 지내야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이 스스로 뭐든 하기 때문에 손 갈 일은 없었으나 아이가 자라는 것을 지켜봐 주는 게 엄마의 역할이라 그 일에 충실했습니다. 유일하게 밤늦게까지 머문 날은 쌀값 결정회의 날 정도였습니다.

남편을 정말 사랑하며 천국에 버금가는 행복 넘치는 가정을 만들었습니다. 행복한 가정에서 행복한 아이가 자라므로 있는 힘을 다해 행복한 가정을 꾸렸습니다. 행복은 넘쳐나면 이웃으로 전염이 됩니다.

어떤 결과보다 중요한 것은 오늘입니다. 미래도 중요하지만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현재를 망치는 일은 어리석기 때문입니다. 입시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인 오늘이 소중하여 날마다 즐겁고 의미 있게 살도록 했습니다. 언제나 천국에 사는 우리 가족, 돈도 명예도 학식도 부럽지 않습니다.

사실, 많은 것을 갖춘 남들이 부러워하는 아이로 기르기, 쉬운 일이었습니다. 그냥 좋은 음식 먹이고 아이 스스로 하게 두어 작은 일에 칭찬하며 아이와 행복한 오늘을 지내면 되었습니다. 아이와 이 땅에서 천국처럼 살기,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기사등록 : 2005-10-10 오후 02:18:53

 

“아이가 하고싶을 때까지 기다린다”
특별하지않은 서형숙씨의 ‘별난 교육관’
권복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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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형숙씨의 둘째 안홍원(19)군은 올해 수시모집에서 연세대에 들어갔다. 누나인 태경(21)도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다.
[관련기사]
서형숙씨는 주위로부터 부러움 섞인 칭찬을 많이 듣는다. 둘째 안홍원(19)군은 올해 수시모집에서 연세대에 들어갔다. 누나인 태경이도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다. 특별나게 과외를 시킨 것도 아니다. 사람들은 두 아이가 고교 시절 하고 싶은 일 다하고 놀고 싶은 대로 다 놀고 대학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알며 더욱 놀란다.

고3병에 시달리지도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미루지도 않았다. 수시모집에 합격하기 전 수능시험을 앞두고도 홍원이는 <웰컴 투 동막골>을 봤다. 집에 와서는 아버지와 탁구를 치고, 애완견 ‘깜깜’의 목욕도 자주 시켜준다. 7월에는 국토순례를 떠난 진행을 맡은 후배 열 명에게 편지를 썼다. 시간을 꽤 투자한 ‘암호편지’였다.

홍원이는 ‘고3병’을 몰랐고, 가족들도 수험생 때문에 숨죽이고 살지 않았다. 더구나 홍원이네 가족은 고3 아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먼 강북으로 이사를 했다. 뜰이 있는 집에 살고 싶어서다.


▲ 홍원이는 중1때 여수에서 서울까지 국토종단을, 고1때 연천에서 강화까지 204㎞, 고2때는 강화에서 당진간 212㎞의 국토순례에 참여했다. “친 형제 자매같은 친구들이 많이 생겼고 조국강산에 대한 사랑과 통일에 대한 염원을 키울 수 있었다”고 기억했다.

친구들과 선,후배들은 홍원이를 ‘신화’라고 부른다. 그는 3년 내리 학년 대표와 학생회장을 했다. 3학년이면 입시 때문에 학생회 일에서 손을 떼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는 고3 1학기 전반부를 개교 20주년 축제 준비에 바쁘게 보냈다. 그럼에도 성적은 3학년 1학기 전교 1등을 하는 등 최상위권이다.

홍원이는 운동을 잘한다. 초등학교 6학년때인 1999년 그는 28회 전국소년체전 800m 달리기에 서울 대표로 나가 육상부문에서 유일하게 금메달을 땄다. 중학교때는 서울시 대회에서 200m, 400m, 800m를 휩쓸었고 고교에서도 입상했다. 길거리 농구대회 2위를 하기도 했다. 육상과 운동으로 그는 “지구력이 생겨 마음먹은 일은 포기하지 않게 됐다”고 한다. 고3생활에 대해서도 “더 재미있는 일이 많지만 공부도 참 재미있다”고 말했다.

홍원이네 가족에게 고3 시절은 평소와 다름없는 나날이다. 연세대 사회학과 2학년인 누나 태경(21)이도 그랬다. 수능 한달 전에도 집에 오신 나눔의 집 할머니들 저녁식사 시중을 자연스럽게 들 정도였다. 스카우트 활동을 8년 동안 한 태경이는 고3을 앞둔 2002년 겨울 제20차 세계 잼버리에 국제봉사대로 한달 동안 봉사활동을 했다. 주위에서는 고3인데라며 혀를 찼지만 그는 “봉사는 특별한 게 아니라 일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태경이는 외국어에 소질이 있다. 다른 나라에 가면 그 나라 말을 쉽게 배워서 쓴다. 중3때 필리핀에서 열린 아·태 잼버리에서는 타갈로그어를 익혀서 쓰고, 타이에서 열린 세계 잼버리대회에선 타이 말을 배워 미국과 타이 요원 사이에 ‘통역사’로 구실했고 타이어로 방송 인터뷰까지 했다. 그 나라 말을 배워 다가가는 태경이는 인도네시아, 타이, 필리핀, 네덜란드, 이탈리아 등 여러 나라에 친구들이 있다. 아쉬운 점도 있다고 한다.


▲ 스카우트 활동을 8년 동안 한 태경이는 고3을 앞둔 2002년 겨울 제20차 세계 잼버리에 국제봉사대로 한달 동안 봉사활동을 했다. 주위에서는 고3인데라며 혀를 찼지만 그는 “봉사는 특별한 게 아니라 일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여러 언어를 조금씩 알지만 깊이 있는 대화나 토론이 어려워 이제는 몇 개 언어를 깊이 배워보고 싶어요.”

태경이는 중3때 유일하게 다닌 영어 회화 학원에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교재로 쓰던 미국 8학년 교과서에 우리나라 공용어가 영어와 한국어라고 쓰인 것을 보고 곧바로 출판사에 메일을 보냈다. 관광지나 교통안내판에 영어나 한자어를 덧붙여 쓸 뿐 어떤 공식문서에도 영어를 쓰지 않는데 어떻게 이런 오류가 발생했는지 앞으로 어떻게 조처할 것인지를 조목조목 따져 묻는 편지였다. 출판사는 즉시 회의를 열고 사실을 확인한 뒤 이를 바로잡겠다는 편지를 사과글과 함께 보내왔다고 한다.

홍원이는 초등학교부터 고교때까지 전교 학생회장을 하면서 남에 대한 배려가 몸에 뱄다. 중학교때는 축제를 꾸미며 공부때문에 주눅든 친구들을 주로 무대에 세워 자신감을 갖도록 했다. 고교 1학년때는 지휘자로 반 합창단을 이끌어 남학생반 최초 1등이라는 기록을 세웠고 지역 대회에서도 최우수상을 타는 데 역할을 했다. 중1때 여수에서 서울까지 국토종단을, 고1때 연천에서 강화까지 204㎞, 고2때는 강화에서 당진간 212㎞의 국토순례에 참여했다. “친 형제 자매같은 친구들이 많이 생겼고 조국강산에 대한 사랑과 통일에 대한 염원을 키울 수 있었다”고 기억했다. 그는 친구가 많다. ‘범생이’도 있고 ‘꼴찌’나 ‘부적응 학생’도 있다.

두 남매는 어머니 서씨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입을 모은다. “남을 해코지하는 일이 아니면 어떤 일을 해도 이해해주셨어요.” 서씨는 아이들의 미래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맡겨두고 있다. 태경이의 꿈은 동양 사상을 접목한 사회학을 계속 공부하는 것이다. 홍원이는 쑨원같은 “정치가”가 꿈이다. ‘인민의 안위만을 위해 공산당, 국민당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를 끌어안은, 대의를 위해 자신의 지위까지 버릴 수 있는 인품’에 매료됐다고 한다. 두 남매의 10년 뒤가 궁금하다. <한겨레> 문화부 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

서씨의 교육관은 특별할 게 없다. 그저 아이 말에 귀 기울이는 따뜻한 엄마되기에 충실했다고 한다. 서씨는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오늘 행복한 일을 미루지 않아야 한다고 믿는다. 아이들도 지금 보는 이 순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 여기고 대하려 노력했다는 것이다.

 그런 ‘철학’ 아래 그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언제나 웃으며 대하고, 남을 해치지 않는 일이라면 하고 싶은 일은 하도록 하고, 마음대로 놀도록 하며, 겁을 주는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이가 어떻게 바뀌기를 바란다면 그런 쪽으로 행동할 때 칭찬을 잊지 않았다. 태경이는 다른 사람 앞에서 말하기를 어려워했는데 병원에 갈 때 의사에게 자신이 아픈 데를 설명하도록 하면서 조금씩 고쳐나갔다. 운동하기를 싫어하던 홍원이는 운동장에서 하루 종일 놀도록 뒀더니 어느날 ‘선수’로 바뀌어 있었다.

서씨는 이와 함께 아이가 배우기를 바라는 것은 몸소 행동으로 보여줬다. “내 아이는 우리 아이로, 우리 아이는 내 아이로 돌보려 노력하다보니 아이들도 사람을 구별하지 않고 소중히 대하는 사람으로 컸다”고 한다.

집에 ‘문제아’ 친구를 데리고 와도 변함없이 대했고, 길에서 욕하는 아이의 친구를 만나도 좋은 점을 보고 칭찬하려고 했다. 홍원이가 초등학교 6학년때 학생회장이 됐을 때 한 말은 “큰 형이 됐으니 여린 아이를 잘 돌보라”고 격려했고, 중2때 운동과 공부 사이에서 어떤 길을 선택할까 고민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겠다고 했을 때도 선선히 보내줬다.

공부에 대해서도 아이들이 하고 싶을 때까지 기다렸다. 그는 조기교육보다 적기교육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배우고 싶어할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는 것이다. 태경이도 홍원이도 스스로 필요할 때 찾아서 공부했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늘 하는 얘기가 있어요.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오늘 행복하기를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거지요. 행복한 하루하루가 모여 행복한 인생이 되는 것 아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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