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컴지기 칼럼
교육의 주체가 그들의 언어로 미래교육을 상상하는 이야기
문학적 상상력과 사회적 정의
배움과 가르침의 관계가 성립돼야만 학습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학습은 누군가 애써 가르치지 않을 때도 일어나는 내면의 독특한 작용이다. 우리가 남의 글을 읽는 것은 그가 나를 가르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읽는 중에 떠오르는 영감, 또 읽은 후에도 남아 있는 잔상 등의 느낌이 귀하기 때문이다.
누스바움이 쓴 시적 정의(poetic justice)는, 우리가 타인의 삶을 통해 학습을 경험할 수 있음을 말한다. 이것이 문학적 상상력이다. 물론 이는 문학 작품만을 통해 제공되는 것은 아니다. 흔히 '분위기를 읽는다'고 말하는데, 이때 분위기는 텍스트도 영상도 아닌 현상 그 자체이다. 이는 여러 사람의 삶이 얽혀 형성되는 살아 있는 텍스트이다. 이렇게 현상을 읽고 해석하며 자기의 삶 속에 용해하는 행위,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문학적 상상력이다.
이 문학적 상상력이 사회와 만나면 비로소 삶은 상상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 참여'의 형태로 결합한다. 정의가 없는 사회적 참여는 타인에게 고통을 준다. 사회를 개인의 욕구 실현의 장으로만 보는 경우 그 사회는 긴장이 넘친다. 경쟁이 일어나고 사람들의 관심은 경쟁의 룰을 정하는 쪽으로 쏠리게 마련이다.
사회의 품격은 점진적으로 진화하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어떤 계기를 만나면 진화의 폭이 매우 크다. 남북미 관계의 진전은 결코 쉽게 목도할 수 없는 세계사적 전환이다. 물론 이를 추동하는 동기는 '경제적 이익'이다. 이익의 추구는 때로 사회 변동을 가속화한다. 세계사 속 큰 전쟁의 동기는 모두 '경제'였다.
경제적 기대는 사람을 가장 잘 설득할 수 있는 동인이다. 만약 남북 관계의 진전이 경제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고, 그저 민족 동질성 회복과 통일을 향한 열망만으로 이뤄진다면? 결론적으로 그런 일은 '전혀' 가능하지 않다. 다른 말로 하면 경제적 이익 기대 없이 남북관계가 진전될리도 없고, 설사 무엇인가 합의가 된다해도 이를 이끌어갈 추동력은 마련되지 않는다. '먹고 사는 일'의 엄중함은 이렇듯 역사를 바꾸어 가는 가장 중요한 삶의 문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이 국면에서 문학적 상상력과 사회적 정의를 말한다. 경제적 이익에 대한 기대가 마음을 움직이는 요인이라 해도 여기에 들어 있는 맥락과 관계들이 형성되는 과정에 풍부한 상상력이 깃들어야 한다. 시작과 끝이 명확하고 인과관계가 뚜렷한 대화를 즐기는 사람은 상상을 말하는 사람을 피곤하게 여긴다. 그러나 사회진화의 바탕에는 늘 무엇인가에 대한 상상이 있었다.
상상은 기존의 질서와 관습에 대한 의심과 회의로부터 시작한다.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은 끊임없이 기성의 문법을 해체하고 재구성한다. 누구의 구속도 받지 않고 오로지 자유의지에 기반하여 세상을 해석하고자 하는 주인된 마음이 바로 창조적 지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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