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교육 현장을 찾아서
(29) 서울 영남중 이민표교사의 ‘스포츠교육모형’
농구수업 10시간중 기본기능 연습은 딱 2시간
남은 시간은 팀별로 경기. 운동할 틈없는 아이들
함께 어울려 뛰다 보면 건강도 협동심도 쑥쑥

수업이 시작되자 아이들은 미리 짜여진 대진표에 따라 팀별로 돌아가며 농구경기를 펼친다. 두 팀이 경기를 하는 동안 두 팀은 경기장 옆에서 연습을 한다. 나머지 한 팀은 경기 운영을 맡는다. 주심과 부심, 경기결과 기록 등은 모두 경기 운영팀의 몫이다. 팀 점수 말고도 개인별 득점과 리바운드, 가로채기 횟수 등이 꼼꼼히 기록된다. 교사는 각 팀을 제때에 경기장에 불러 들이고 경기 종료를 알리는 등 경기가 매끄럽게 진행되도록 돕는 구실을 한다. 실수가 잦거나 조직력이 떨어지는 팀에게는 때때로 코치 구실도 해준다.

서울 영남중 이민표 교사의 체육수업의 ‘주인’은 늘 학생이다.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게임 위주의 수업을 이끌어간다. ‘스포츠교육모형’을 적용한 수업방식이다. 스포츠교육모형은 1980년대 초반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연구되기 시작한 대안적인 체육수업 모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90년대 후반 학교에 도입되기 시작했다. 스포츠교육모형의 수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들의 참여다. 학생들이 스포츠에 직접 참여해 즐기면서 그 스포츠와 관련된 모든 경험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이 수업모형의 목적이다. 팀 편성에서부터 규칙 정하기, 심판, 기록, 아나운서, 경기 준비와 경기장 관리 등 수업의 대부분을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해나간다.

스포츠교육모형에서는 기본 기능 익히기보다는 실제 경기를 직접 해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농구를 예로 들면, 전통적인 체육수업은 드리볼과 패스, 슛 등 기본 기능을 따로 따로 연습시킨 뒤, 자세와 슛 성공 횟수 등을 평가해 점수를 매기고 단원의 맨 마지막에 가서야 ‘맛보기’로 게임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스포츠교육모형을 적용한 이 교사의 농구수업은 많이 다르다. 10시간 중 기본 기능을 익히는 시간은 처음 2시간 밖에 안된다. 세번째 시간부터는 게임이 이뤄진다. 기본 기능 활용과 경기 운영 연습을 위한 연습게임을 2시간 동안 한 뒤, 5개 팀을 짜 각 팀이 돌아가며 맞붙는 리그전 경기를 5시간 동안 펼친다.

팀을 짤 때에는 연습게임 경험을 바탕으로 가장 잘 하는 학생 5명을 뽑아 선수선발위원회를 구성한다. 5명이 차례로 한 명씩을 지명해 팀을 짠다. 이 5명은 맨 마지막에 무작위로 각 팀에 한 명씩 배정된다. 팀 사이의 실력차를 줄이기 위해 고안해 낸 방법이다. 리그전을 벌이는 5시간 동안 경기 운영팀 학생들이 돌아가며 누가기록표에 기록한 개인 성적과 팀 성적을 종합해 수행평가를 하기 때문에 따로 날을 잡아 실기 평가를 하지 않아도 된다. 이 교사는 “경기가 끝날 때마다 학생들이 기록석으로 와 확인할 수 있는 데다, 학교 홈페이지에도 곧바로 공개하기 때문에 평가에 대한 불만은 전혀 생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10시간 중 마지막 한 시간은 수준별로 팀을 새로 구성해 평가와 상관없이 비슷한 실력을 가진 학생들끼리 경기를 즐길 수 있게 한다.

“한 때 일부 체육교사들이 애용하던 수업 중에 ‘아나 공!’이라고 불리는 게 있었습니다. 교사는 그늘에 앉아 공 하나 던져주고 아이들끼리 알아서 놀게 하는 수업방식이죠. 그러나 ‘아나 공!’ 수업에서는 운동을 못하는 아이들은 철저히 소외될 수 밖에 없습니다. 또 스포츠교육모형을 통해 기를 수 있는 동료의식, 협동심, 책임감 등의 교육효과를 기대할 수도 없습니다.” 이 교사는 “기본 기능 위주의 수업과 ‘아나 공!’ 수업 둘 다 학생들에게 스포츠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 교사는 지난 99년부터 체육수업에 스포츠교육모형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전국체육교사모임과 한국스포츠교육학회가 공동으로 연 워크숍에서 스포츠교육모형 이론을 처음 접하고 곧바로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적용해 본 것이 계기가 됐다. 이 교사는 그동안 핸드볼, 소프트볼, 농구, 축구 등 구기 종목은 거의 스포츠교육모형으로 수업을 해왔다. 올해에는 농구에 이어 배드민턴 수업에 적용할 계획이다. 이 교사는 “학교체육은 청소년들의 건강을 위한 최후의 보루이자 평생체육의 근간”이라며 “재미있는 체육수업을 통해 학생들에게 운동의 생활화를 위한 태도를 길러주고 싶다”고 말했다.

글·사진 한겨레 이종규 기자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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