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학습이 필요한 건지, 학습에서 협력이 필요한 건지 이것은 학습의 목표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르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기법위주의 수업을 상당히 싫어하는 편이다. 이런저런 수업기법을 적용해 보긴 했으나 내가 무지몽매한 탓인지 아니면 뭔가 그 수업기법에서 말하는 매뉴얼에 덜 충실해서 그런 것인지 크게 효과를 보지 못하였다. 학습의 목표가 '협력하는 과정' 그 자체가 아니라면 기법과 매뉴얼을 중심으로 협력학습에 접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본다.  

협력은 그 자체로 소중한 덕목이다. 특히 경쟁적으로 학습이 이루어질 수 밖에 없는 우리교육 현실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협력이라는 덕목이 하나의 틀로 자리잡는 순간 그것은 미미 협력이 아닌 '기능'이 되고 만다. 그래서 나는 '수업에서의 협력'을 중시하는 편이다. 어떤 절차와 규칙에 따라 협력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일상적이며 자연스런 협력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마련하고 유도한다. 

아래 사진은 체험학습에 나간 학생들이 보고서를 쓰는 모습이다. "내가 너의 등을 빌려 보고서를 쓸 때, 나 또한 내 친구에게 내 등을 빌려주지"란 제목을 달아 보았다. 협력은 이와 같이 유기적이며 순환적이고 상호작용을 동반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그것은 누군가 이미 개발해 놓은 모형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며 학생들의 삶과 경험 속에서 자연스럽게 체화되는 것이다. 협력의 절차를 모르더라도 학생들은 협력의 과정이 즐겁고, 유익하면 스스로 협력하는 다양한 모습들을 연출한다.

난 교실수업에서 학생들의 자세나 태도 등에 대하여 지적하지 않는 편이다. 지나치게 경직된 자세는 자연스러운 협력을 방해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대신 학습대화는 무제한 허용된다. 물론 협력을 위해 뒤로 돌아 앉거나 자리를 이동하는 것은 교사의 허락없이 이루어진다.(아래 사진)

결국 협력을 위해서는 교사의 전문지식이나 협력을 위한 매뉴얼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열린마음으로 서로 돕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분위기를 위해 교사가 조력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협력이라는 것은 교사의 지시에 따라 수행되는 과제가 아니라 자신들의 필요와 조건에 따라 일상적으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과정인 것이다.  

내 경험으로 보면 아이들은 어떤 형식, 모둠, 역할분담이 지탱하는 협력학습보다는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필요와 이해에 따라 움직일 때 더 큰 학습효과를 보였다. 교사의 지시와 규제에 따라 협력하는 아이들은 그 당시에는 협력의 모습을 보일지 모르지만 협력하는 마음을 내면화하지 못하여 다른 일상적 삶으로 전이하지 못한다. 

사실, 수업에 조금 관심을 갖고 자료들을 찾아 본 교사라면 우리나라에는 웬 '수업모형'이 이렇게 많은지 놀라게 될 것이다. 모형은 매뉴얼과 절차를 필요로 하고 수업을 기능화시킨다. 하나부터 열까지 꼭 짚어줘야 목표에 이를 수 있다고 보는 교사들의 해묵은 신념이 수업을 자꾸 기능화시킨다.

어떤 모형을 선택한다는 것은 이미 검증됐다는 점, 사례가 있다는 점, 적용이 쉽다는 점 때문에 피할 수 없는 유혹이긴 하지만, 사실 따져보면 특별한 모형에 의지하지 않고도 교실일상을 창조해 가는 교사들이 훨씬 많다. 그들이 게을러서가 아니라 수업 자체가 역동적이고 예측가능하지 않으며 교사의 경험과 교실 환경, 아이들과의 교감 속에서 이뤄지는 수업이 더 즐겁고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교실상황을 감각적으로 반영하지 못하는 온갖 모형들, 그리고 그것들의 기계적 활용과 성과를 우선하는 형식적 관점들이 오히려 교사들을 탈전문화의 길로 이끈다고 생각한다. 협력학습 절차 속에서는 협력하지만 실제 삶 속에서는 전혀 협력하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협력은 기법이 아니라 생활과 삶 속에서 우러나오는 일상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 마땅히 수업도 그러해야 한다.

교컴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