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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컴지기 칼럼
교육의 주체가 그들의 언어로 미래교육을 상상하는 이야기
모호함을 견디기
이번 주에만 큰 행사 두 가지를 연거푸 치루고 나니 정신이 없다. 어제는 비가 왔고 오늘 아침 출근길엔 안개가 자욱하다. 본청으로 자리를 옮긴지 한 달이 넘었지만 마음의 여백을 가져본 일이 없었다. 그게 길어지면 위험하다는 것을 안다. 억지로라도 시간을 내어 책을 들여다보고, 사람을 만나고, 업무와 관련없는 대화를 나누며, 또한 걸으면서 신선한 공기를 몸속으로 넣어야만 머리와 가슴과 몸통이 순환한다. 특히 나와 같은 부류의 인간은 외부 세계와 어떤 방식으로든 호흡을 연결하지 않으면 질식할 가능성이 있다.
큰 행사 두 가지 중 하나는 서울교육발전자문회의와 서울교육정책자문회의 위원장들의 연석회의를 주관하는 일이었다. 다른 하나는 교육청에서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서울미래교육추진협의체 발대식이었다. 모든 행사에는 형식과 의전이 있기 마련이다. 요즘 교육청에서 누구도 요구하지 않고 오히려 과잉의전을 하면 경고를 받지만, 그래도 외부 인사들이 들고 나는 과정에 최소한의 안내와 예를 갖추는 것만으로도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이럴 때 형식보다 내용에 집중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지만 낯선 풍경들 자체만으로도 머릿속이 복잡한 것은 사실이다.
모든 정책, 모든 사업은 초기 모호함의 과정을 거친다. 어떤 이는 사업의 경로(이른바 로드맵)를 더 명확히 보여 달라고 하고, 어떤 이는 ‘정확한 목표’를 요구한다. 또 다른 이는 모든 장에서 동시에 적용할 매뉴얼을 요구하기도 한다. 좀 더 정교하게 짜인 정량 평가와 목표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전문가도 있다.
정확한 목표와 잘 짜인 경로가 텍스트나 말로 설명된다 해서 이게 반드시 좋은 정책이라 할 수 있을까? 물론 통념은 이래야 한다는 쪽이다. 그것이 행정이다. 그래서 그것을 완전히 무시하고 또 다른 접근법이 있다고 우기는 것은 순진한 일이다. 이해하되, 개선을 추구하는 것과 무시하는 것은 다르다.
공무원과 전문가가 만나는 회의 풍경을 보자. 한쪽에서는 실행계획을 말하는데 한쪽에서는 원론적인 철학을 말하는 것만큼 대화를 겉돌게 하는 일이 없다. 대화의 얼개를 맞추어 가는 일, 그래서 공통된 인식에서는 합의에 도달하고 그렇지 못한 부분에서는 이견을 확인하고 존중하며 다음 과제로 넘기는 일, 이 과정이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스런 문화로 형성되는 일이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이른바 ‘모호함’이 생기는 것이다.
이것에 대하여 불편함을 호소할 수 있지만 앞서 언급했듯 몇 줄의 글이나 말로 이 모호함이 설명될 수 없다. 이때 우리는 더 많은 시간과 대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것을 견디며 기다리는 일, 발효와 숙성의 과정을 믿는 여유로움이 없다면 늘 행정은 제 자리에서 맴돌거나 퇴행한다. 많은 공무원들은 사업과 돈을 묶고 여기에 사람을 붙이는 과정에 익숙하다. 그래서 그 세 가지 요소가 아니라면 매우 답답해한다. 있는 돈은 써야 하고 돈을 쓰기 위해 필요한 사업을 구상하며 여기에 사람이 붙는다. 사람이 소비되는 과정은 이러하다.
구성원들을 정확히 묶어서 요소요소에 배치하고 그의 책임을 확실하게 묻는 방식으로(이른바 관료주의다) 그 수혜를 제공받는 사람들의 행복과 안전, 성취를 보장할 수 있을까? 모든 사람들이 이 물음에 부정적이지만 수백년 동안 이 구조는 개선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행정 패러다임을 고민한다. 그 기준의 변화 중 하나는 행정을 하는 사람의 눈이 아니라 최종 수혜자의 시선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교육으로 말하면 교육부나 교육청의 관점이 아니라 현장의 시선을 기준에 두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빠른 시간에 이룰 수 없다 해서 ‘역시 관에서 하는 일엔 희망이 없어’라고 체념하는 일, 아니면 차라리 내 적응도를 높여 그 안에서 소모의 한축을 담당하는 일 모두 경계할 일이다. 지금 당장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해서 매일을 스트레스로 보낼 수야 없는 노릇이다. 시스템을 개선하고 재구조화하며 그 조건을 마련하는 일이야 말로 현재의 구조를 더 잘 파악해야 하는 과정을 선행 조건으로 한다. 이런 모든 일들이 뚜렷한 인과관계를 바탕으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상식이다. 앞뒤가 뒤바뀌고 멀리 있던 것이 연결되며 각 요소가 흩어지고 합일하는 과정에서 새로움이 나온다.
이른바 ‘내공’은 단지 축적된 지식이나 경험으로만 나오지 않는다. 내공이란 단적으로 말하여 ‘모호함을 견디는 힘’이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내 책임 한계가 명확한 일’을 기다린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범위와 목표와 성과가 확실할 때 안심하고 그 일에 성실하게 몰입한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협업을 가로막는다. 모호함이 주는 불편함을 견디기, 시간을 두고 관계하며 내용을 채워가기, 이 속에서 경험은 축적되고 재구성되며 새로움을 향한다. 미래교육은 현란한 첨단 기술의 잔치이거나 인프라의 경연을 넘어 관계를 회복하고 구성요소들의 연결을 통해 새로움을 추구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함영기(서울특별시교육청 정책연구 장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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