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컴지기 칼럼
교육의 주체가 그들의 언어로 미래교육을 상상하는 이야기
센 척하지 마세요
가끔 불면증에 시달린다는 글을 어제 올렸더니 순식간에 수십 건의 댓글이 달리며 다양한 처방이 쏟아졌다. 그 중에서 적용해 본 것은 두 가지인데 잠자기 전 꿀 한 스푼, 그리고 4-7-8 호흡법이었다. 꿀을 한 스푼 떠먹고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들어 4-7-8 호흡을 했다. 생각보다 호흡법은 쉽지 않았다. 몇 번 반복하다가 이내 잠이 들었는데 깨어보니 새벽 4시다. 여섯 시간을 연속으로 깨지 않고 잠을 잔 셈인데 최근 10년만의 기록이다.
꿀 처방을 알려주신 채희영 샘, 호흡법을 알려주신 Claire FS 샘께 감사드린다. (복받으실 겁니다.^^) 물론, 다른 샘들의 아이디어 역시 소중하게 받아 드린다. 사실 내가 잠을 잘 수 있었던 것은 특정 처방이 아니라 자기 일처럼 함께 염려해준 벗들 덕분이다. 이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집단지성이고 미래지향적 지식 플랫폼이 아니던가...(좀 오버인가?)
그런데 정작 이런 지식교류가 일어난 데에는 더 의미 있는 원인이 있다. 바로 '약함을 드러내기'인데 <선생님의 심리학>을 쓴 토니 험프리스는 '약함을 드러낼 때 조력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자존심 구겨지기 싫어 센 척 하다가 골로 가는 것 보다 잠시 자존심을 내려놓고 도움을 청하면 뜻하지 않은 조력이 답지 한다. 자존심 대신 지킨 것은 자존감이다.
인간 모두에겐 '강해지고 싶은 욕구'가 있다. 더 강한(명석한) 머리, 더 강한 몸, 더 많은 부에 대한 선망은 오랜 역사를 통하여 인간들이 가져왔던 근원적 욕망이었다. 한편으로 이러한 인간의 욕망이 사회의 에너지를 만들었다. 정치경제와 사회문화 활동은 모두 욕망을 에너지로 만든 인간들의 중단없는 노력 때문에 가능했다.
두뇌와 몸은 경쟁에서 우위에 설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육과 훈련의 대상이 되었다. 혁명 후 러시아에서 교사와 교장으로 활동했던 수호믈린스키도 건강한 몸과 명석한 두뇌를 강조한다. 그런데 그는 여기에 더하여 정서 능력을 꼽는다. 정서 능력이 뒷받침돼야 윤리적, 미학적 역량까지 기를 수 있다. 이름하며 '전인적 발달'이다. 전인적 발달은 교육의 근본 목적이기도 하다.
회복하기 힘든 지경까지 몸을 혹사하는 데는 사회적 압력이 있다. 우리 사회에선 강한 몸 자체가 중요한 경쟁 수단이기 때문에 몸에 이상 신호가 와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아울러 이 과정에서 정신이 피폐해져 정서 파탄이 올 때까지 견디다가 몸과 정신이 한꺼번에 힘들어지는 경우가 있다.
몸 자체를 물신화하는 풍토가 만연하다 보니, 건강을 지키는 것을 넘어 더 강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게 됐고, 오히려 요즘은 미디어가 나서서 노골적으로 부추기고 있다. 한마디로 몸이 경쟁력인 시대를 살고 있다. 이런 사태에서 내 약함을 드러낸다는 것은 곧 '내 자신 경쟁력이 취약함'을 동시에 드러내는 행위요, 앞으로 열심히 일하기 힘들 수도 있다는 상황을 타인에게 공표하는 행위로 받아들여 진다. 여기서 자기착취가 일어난다.
사소한 사례로부터 심각하고 긴 글을 쓰게 돼 민망하지만, 아무튼 여기 페북을 사용하실 때 센 척하다가 자뻑에 빠져 관종력을 시전하다가 흑화의 길으로 빠지지 말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자는 말이다. 그런 정도의 인간적 연대감도 없다면 왜 공연히 시간을 투자하여 머리 아픈 페북에 에너지를 쏟나. 이곳에선 즐거움을 얻는 만큼의 좌절감과 질투, 그리고 소비되는 시간이 있다
결론적으로 센 척보다 약한 척이 유익한 조력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많아진다. 의심되시면 실험을 해보시라. 센 척으로 얻는 찬사는 순간적이며 이내 공허함을 선사하고 다시 센 척할 거리를 찾게 만들어 시간을 소모한다. 진지하게 약한 상황을 드러내는 것은 연대감을 불러온다. 그때 느끼는 감정이 감수성이다.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사회적 정의에 입각하여 내 수준에서 참여하려는 마음은 누스바움이 말했던 '시적 정의(poetic justice)'의 내용이기도 하다. 차별과 배제가 횡행하는 이 사회에서 지금 필요한 것은 '강함에 대한 선망'이 아닌 타인의 고통에 눈감지 않는 '감수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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