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삿일이 그리 많지 않은 겨울이 되면, 동네 어르신들께서 마을 회관에 모여 회의를 한 후 그 결정대로 동네 부역을 자주 했습니다. ‘부역’(負役)이란 집집마다 남자 한 사람씩 삽이나 괭이, 리어카 등을 가지고 나와서 마을 공동일을 함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역이 있는 날은 동네 이장 어르신이 아침 일찍 방송으로 몇 시까지 마을 회관 공터에 모이라고 방송을 하셨습니다. 마을 회관 공터에 빨리 나오지 않으면 이장님께서 택호를 부르며 빨리 나오라는 재촉 방송도 하였습니다.

 여름철 홍수 때 무너진 하천 제방을 보수하거나 마을을 관통해서 흐르는 개울에 버려진 쓰레기를 모아서 태우고, 개울 바닥을 상류부터 하류까지 고르게 삽으로 파내어 물이 막힘 없이 잘 흐르도록 하는 일, 동네 안길 여기저기 비만 오면 물이 고여서 사람들 다니기가 불편한 곳에 흙을 리어카로 실어다가 붇고 다져 물이 고이지 않게 하는 일, 동네 공동 우물들을 양수기로 다 퍼내고 우물 안에 있는 진흙이나 찌꺼기 등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일, 집집마다 나오는 생활 하수가 흐르는 마을 골목에 있는 여러 개의 작은 도랑의 바닥 파내는 일 등이 마을 부역의 주된 내용이었습니다.

 면사무소에서 어느 정도의 자금이 지원되면 꼬불꼬불한 농로를 바르고 좀 더 넓게 확장하는 일도 하였습니다. 저수지 관개 수로에서 떨어진 논의 군데군데 파 놓은 물웅덩이도 물을 양수기로 퍼내고 바닥의 쓰레기나 진흙을 삽으로 퍼내어 깨끗한 샘물이 잘 솟아오르도록 해주었습니다. 논에 있는 물웅덩이를 청소하는 날은 웅덩이에 있던 물고기를 잡을 수 있기 때문에 큰 통 4~5개에 고기를 모두 모은 후, 집집마다 골고루 나누어 집으로 가져갔습니다. 매운탕을 얼큰하게 끓여 먹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