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 5 사람사랑 2013.06.07 11:21

다시 한 번 읽고 정신을 가다듬어야겠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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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 5 노유정 2013.06.08 10:21
저도요... 6.25 이후 가난한 나라의 학자는 미국 교육사절단의 원조국 교육제도 추진에 굉장히 힘들었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우리의 교육전통에 무지하므로 제로에서 출발했기에 더욱 근본을 찾자고 외친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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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 5 노유정 2013.06.08 13:24
엘리트주의를 통한 교육회복운동(예로 오푸스데이)이 교과를 그 원래의 의미와 가치로 되돌릴 수 있다는 주장은 조금 억지스럽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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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 7 교컴지기 2013.06.08 15:23
'엘리트주의를 통한 교육회복운동'... 정확히 보신 겁니다. 다른 논문들을 보면 저자의 교육관이 좀 더 적나라하게 드러나죠. 즉, 희랍시대에도 노예는 노예로서 직분에 충실했고, 지배계급은 먹고 사는 일과 하등 관계없는 공부를 해야 했다. 이들에게 공부는 선택이 아니라결코 쉽지 않은 운명 같은 것이었다... 우리들의 조상들도 마찬가지로 양반들이 하는 공부가 진짜 공부였다. 출세를 위한 지식습득이 아니라 오로지 심성함양을 위한... 뭐 등등...
레벨 7 교컴지기 2013.06.09 18:03
그렇다 하더라도 이분들이 가진 '학문에 대한 진정성' 하나 만큼은 존중합니다. 이런 저런 근거를 들이대며 비판할 수록 한편으로 조심스러워지는 지는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죠. 한국의 교육학계에서 거의 유일하다시피 한 '학문적 일가'를 이룰 수 있었던 배경, 저는 그것에 경의를 표합니다.
레벨 3 히말라야시타 2013.06.12 01:28
아, 오푸스 데이가 엘리트주의적 개념이 내포되어 있다고 이해될 수도 있었군요.
레벨 6 별이빛나는밤 2013.06.10 17:44

1. 심성함양과 문제해결, 혹은 이해와 기술은 ‘근본과 지말’ 식의 위계적 관계가 아니라 유기적이고 통합적인 관계로, 즉 이 둘은 함께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적절한 예가 될지 모르겠는데 제 영어수업을 잠깐 예로 들면, 외국 학생의 하루일과를 찍은 유튜브 동영상(실생활과 관련된 자료)을 보여주고 아이들에게 영어로 질문을 던져서 본 내용에 대해 영어로 답하는 활동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동영상을 본 아이들이, 제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자신의 삶과 비교를 하면서 거기서 어떤 심성을 찾아야 할 것인지 발견해 내더군요. 영상 속의 자연이 아름답다, 학원을 다니지 않으니 행복하겠다, 친구들이랑 매일 놀 수 있어서 좋겠다 등.

 

2. 문제 해결학습에 대한 옹호 및 저자의 주장에 대한 반론.

배움이 우리의 실생활과 긴밀하게 연관될 때 그 공부를 통한 심성함양도 잘 되는 것 아닐까요? 국어나 영어가 타인과의 의사소통이라는 실생활적 목표를 지향할 때 언어예절, 경청 타인에 대한 배려 등이 길러지고, 과학이 생활 속 환경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질 때 학생들은 환경과 자신들과의 관계를 인식하여 생명에 대한 감수성도 풍부해지겠지요. 사회과를 통해 우리주변의 여러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토론의 기회를 가짐으로써 학생들은 사회 문제를 바라보는 합리적인 사고와 윤리성을 함양할 수 있다고 봅니다. 물론 주제를 중심으로 교과간 통합이 이루어지는 프로젝트 학습이라면 학습과 학습동기와의 관계가 보다 긴밀하고 자연스러워지므로 심성함양에도 더욱 좋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심성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생겨나는 이타적인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생활에 근거한 학습동기나 목표의식이 결여된 교과 학습은 오히려 엘리트주의 학습으로 빠질 우려가 크고 그런 수업에서는 윤리성이 결여될 가능성도 크지 않을까요. 실생활과 유리된 암기 위주의 공부를 한 기성세대 엘리트들의 상당수가 각분야에서 범죄를 저지르거나 대국민 사기를 치고 있다는 사실은 학문을 실생활의 문제 해결과는 연결되어서는 안 될 순수의 결정체로 바라보는 저자가 다시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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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 7 교컴지기 2013.06.10 18:54
공감합니다. 실제로 저자는 상당 부분 '엘리트교육'에서 심성함양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죠. 제가 생각할 때 저자는 '실용적 교육'에 극도의 반감을 가지고 있지요. 그래서 고대 희랍에서도 노예계급이 아닌 엘리트계급에서 하는 교육을 옹호했고 조선시대에도 먹고사는 것, 혹은 생활의 필요와 관계없이 심성함양에 매진한 부분으로 사대부를 꼽습니다. 이 정도면 대단한 엘리트 교육 옹호자라 볼 수 있는데... 아마도 교육의 외재적 목적을 하위 개념으로 정의하는데서 오는 경향이라 생각됩니다.
레벨 6 별이빛나는밤 2013.06.11 13:29
흠.. 플라톤이 말하는 철인통치, 국가론과 흡사하네요. 공부할 자격이 있는 계급이 공부를 해서 심성함양도 하고 나라도 다스리고. 나머지들은 대충 실생활에 금방 써먹을 수 있는 기술교육이나 받고.. 2000년 전에 플라톤이 이렇게 말한 건 이해가 되지만, 지금 이렇게 말하는 건 문제해결 교육에 대한 과잉 반감일 뿐더러 사회계층 옹호론자로 오인받을 소지가 다분하네요...
레벨 7 교컴지기 2013.06.10 19:38
많이들 바쁘시죠? 원래 공부란 것은 바쁜 와중에도 틈틈히 시간 쪼개어 하는 것이 제맛이죠. 그런 의미에서 전쟁터에서 하는 공부가 진짜 공부의 완성...(맞나?) 토론을 촉진하는 의미에서 저도 제 생각의 대강을 한 번 써 볼게요.

저자는 교육의 개념을 근본(심성함양 혹은 이해)과 지말(문제해결 혹은 기술)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구분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근본과 지말 상호 간의 연관이 드러나고 그들의 유기적 관계에 대한 통찰이 앞서야 합니다. 단순히 교육의 목적 중 심성함양을 옹호하기 위한 방편으로 근본과 지말의 대립구도를 상정했다면 공감하기 힘든 대목이죠. 교육은 당연히 인격을 완성하는 과정이며(저자의 표현으로는 근본) 또한 먹고 사는 방편(지말)입니다. 그러나 이 둘을 따로 떼어 사고할 수 없어요. 바로 이 대목 때문에 학문중심주의를 말하는 사람들이 현실세계와 동떨어져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죠. 그것에 더하여 이 분은 '조선시대 고고한 선비가 하는 공부'쯤으로 교육의 과정을 생각하고 있죠. 

이미 밝혔던 오푸스 데이는 미스 포커스라 생각됩니다. 지금도 저자가 오푸스 데이에 대한 인식을 그렇게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핵심은 오푸스 데이의 활동방식이 아니라 그 문제의식이죠. 즉, 각자가 제 위치에서 교육의 근본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면 되는 것, 그것이 성실하게 이뤄지면 확산될 것이라는 다소 이상적인 생각에 빠져 있죠. 거의 모든 저술에서  저자는 '교과를 교과답게'를 강조하면서 그러나 이 방법 만큼은 함부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앞으로 1세기가 걸리지, 2세기가 걸릴지 모르는 일이다라고 하죠. 그렇다면... 이는 심성함양을 극단적으로 이상화한 나머지 금세기에 해결 불가능한 난제를 놓고 시비를 가리는 꼴이 됩니다. 글쎄, 아무리 '가치'를 중심에 놓는 고고한 '심성'으로 접근하고자 하여도 이는 '시대착오적'이거나 현재와 호흡하지 못하는 저자의 '심성'을 보여준다고 밖에는...

저자의 생각이 견고하게 굳어진 배경 속에는 '구성주의'의 출현이 있습니다. 좀더 거슬러 올라가면 저는 듀이의 생활적응교육,아동의 흥미, 사회적 상호작용 같은 것이 썩 내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한 가지죠. 이런 논의들은 '교육의 내용'을 중심에 놓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든 교육의 논의에서 '내용(인류가 쌓아온 문화유산의 총체)'을 핵심에 놓고자 하는 시도 그리고 이것은 인류가 존속하는 한 변해서는 안된다는 당위적 논리가 저자가 주장하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결국 교육내용도 교육방법도, 심지어 교육의 목적이나 철학도 변합니다. 결론적으로 공부에 임하는 저자의 자세가 '진중하고도 성실함'을 보여주고 있다고 해서 그가 교육이라 말하는, 지식이라 말하는 것들의 실체까지 고정불변일 수는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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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 6 별이빛나는밤 2013.06.11 13:36
저자껜 죄송한 말씀이지만 '교과를 교과답게', 저자가 주장하는 대로 실생활 따위와 지저분하게 접목하지 않고 가르치려면 1세기 혹은 2세기가 걸리는 것이 아니라 1세기 혹은 2세기를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야 가능할 것 같네요.. 이 분은 조선시대에 태어나셨더라면 학자로 더욱 이름을 날리셨을 텐데..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동시대와 호흡하지 못하는 저자의 관점이 안타깝네요.
레벨 3 히말라야시타 2013.06.12 01:36
왜 소통하라고 하시는지 글 올리고 다른 글들을 읽다보니 알겠습니다. 제가 이해한 방향은 지나치게 긍정적인 측면인 것 같습니다. 저는 전반적인 상황에서 먼저 교육을 연구한 학자가 제자와도 같은 교사들이 처한 상황을 안타까워하고, 조금은 극단적인 단체까지도 들먹이며 역할을 제시하는 글로 읽혀졌었습니다. 다른 글들을 읽어보니다양한 관점들이 있어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드네요. ^^;
레벨 6 별이빛나는밤 2013.06.12 22:34
히말라야 시타 선생님~ 맞아요.. 다양한 관점.. 여러 선생님들 의견 보면서 제 생각에 균형을 잡아가는 과정에서 선생님의 의견 또한 큰 도움이 되고 있죠.*^^*
레벨 7 교컴지기 2013.06.13 08:16
그렇습니다. 재희샘, 저자의 의도는 샘의 말씀대로 "전반적인 상황에서 먼저 교육을 연구한 학자가 제자와도 같은 교사들이 처한 상황을 안타까워하고, 조금은 극단적인 단체까지도 들먹이며 역할을 제시하는 글"로 쓴 것이죠. 그래서 많은 교사들은 이것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려 하겠죠. 우린 조금 더 분석적으로 읽고 비판적 시각으로 보려 노력한다는 것이 다른 점이죠...
레벨 5 노유정 2013.06.11 09:10

로마시대 노예제도 하에서 귀부인들이 자녀 교육의 수발까지 노예에게 맡겼지요.

하지만 카이저의 어머니는 직접 자녀 교육을 했다고 하네요.

노예가 정신 교육을 한 결과 로마가 망했다는 우스개소리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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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 7 교컴지기 2013.06.11 09:21
맞아요... 저자 역시 희랍시대 상황을 예로 들어 노예는 노예로서 할 일이 있고, 엘리트가 했던 공부가 진짜 공부였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조선시대 역시 마찬가지고... 말하자면 관직에 욕심이 없는 선비가 고고하게 오로지 심성함양만을 위해 공부하던 모습을 진짜 공부라고 생각했지요...(저자의 다른 논문 이십일세기 학교교육의 과제, 2000)
레벨 5 노유정 2013.06.11 16:37

  그리고 플라톤...철인정치? 아내까지도 공유해야 한다? 즉 사유재산을 물려 줄 내 자식이 없어야 한다.

  지금 시대와는 간극이 너무나 큰 학문에 대한 관점이 우리로 하여금 도대체 우리가 찾아야 할 교육의 전통과 뿌리가 무엇인지 오히려 길을 잃어버리게 만듭니다. 공부는 목적과 수단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교육을 근본과 지말을 대비할 수도 있으나 양분법적 사고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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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 5 노유정 2013.06.11 15:55

유학의 학이사, 사서삼경을 읽고 외우고, 그것이 학문의 완성과 심신수양의 잣대가 되었던 조선시대.

저자는 그런 시대를 동경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신자유주의 물결이 세계를 흔들고,

21세기 대한민국 교육은 미국의 한 주처럼 대학 강단을 시카고학파들을 비롯한 유학파들이 주를 이루고 있지요.

조심스럽지만 이렇게 배운 학문과 관점에서 우리의 인식과 가치 체계도 내가 알고 배운 기준과는 너무나 이질적인

저자의 학문적 입장을 배척하지는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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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 7 교컴지기 2013.06.11 16:14

... 토론 단계에서 비판적 읽기가 완성되는 느낌이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실용성을 강조하는 현재 제도권 교육의 문제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말하자면 어떻게 양 극단의 편향을 극복하고 균형된 시각으로 통찰할 것이냐가 중요한 과제라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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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 3 히말라야시타 2013.06.12 07:01

매번 두 보 뒤쳐서 겨우 따르는 형국이되어 죄송합니다. 요즘 글이 잘 읽히지 않는지라 걱정했는데, 의외로 정돈되어 한 눈에 들어와 역시 대가답다는 말이 와닿았습니다.

1. 교육의 개념 : 저자는 교육의 개념을 양분하여 근본과 지말로 양극단화 시켰습니다. 명백히 밝히지는 않았으나, 이 구분은 평소 수업에서 실천하는 문제해결학습이 아닌 원론적인 차원의 수업방법으로 저는 이해했습니다. 즉, 두 개념에 대해 교사의 개입이 적극적으로 일어나는 수업과 교사가 진행만을 돕는 수업이라고 정리할 때 저는 저자의 견해에 따르는 입장입니다.

2. 문제해결학습 : 교육방법론의 원론적 차원에서 문제해결학습은 가장 적극적인 학습자 중심의 수업방법입니다. 즉, 텍스트 보다는 교사 또는 학생에 의해 제시된 문제를 학습자 중심으로 풀어나가는 방법을 다양하게 시도하여 현실 세계에서의 대처능력을 높이자는 방법인것입니다. 여기에 교사의 개입은 극히 절제가 필요하고, 학생들이 학교의 범주를 넘나들며 세상과 조우할 수 있는 장면을 적극적으로 만들어야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수업장면에서의 문제해결학습은 서구의 그 것과는 확연히 다른 특징을 지닐 수 밖에 없습니다. 텍스트를 중심으로 하여 입시를 대비하는 상황에서 학생들은 스스로 찾아서 공부하는 경험이 극히 적고, 학생들 중심으로 해나가는 과정에 대한 두려움이 매우 큽니다. 이런 상황에서 문제해결학습을 수업장면에서 실천하는 교사는 고도의 수업설계력과 철학을 지녀야합니다. 학생들이 스스로 해나갈 수 있도록 루트를 만들되 강제하지는 않고 이끌려나갈 수 있도록 구성하는 과정은 교과에 대한 확실한 파악과 학생들과의 유대가 전제되지 않고서는 불가한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저자의 양극단에 치우친 판단은, 교육현장의 실천적 측면을 간과하고, 이론에 치우쳐 이루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3. 저자가 의도한 교과란, 절대적인 지식이 아닌 표준화된 지식입니다. 중요한 점은 사회에서 왜 그 교과를 필요로 하는지, 학생의 인생에서는 그 교과는 어떤 의미가 될 것인지에 대한 고찰이 우선되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사의 철학적 사고 과정을 거쳐 이루어지는 수업 장면에서 교과는 새로운 의미가 되고, 학생들의 본성적 측면과 맞닿아 감응하면서 교과를 통해 심성을 함양할 수 있다는 요지로 이해됩니다.

저자가 교육의 근본 회복 방안으로 제시한 오푸스 데이의 사례는 학교와 교육이 정체성을 상실하는 상황에서 교사의 역할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보입니다. 초단기적인 간격으로 격변하는 교육정책은 예전 것과 새로운 것들이 정리되지 않고 표류하는 교육현장의 혼란을 가져왔습니다. 한 가지를 장기적으로 실천해도 성과 측정이 어려운게 교육인데, 정치적인 목적에 맞물려 실행되는 각종 사업들의 끝은 가늠하기조차 두려울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런 시점에서 교사들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막중하게 작용합니다. 사실 교육정책이나, 교과라는 것은 사람다운 마음과 행동, 변화하는 상황에 대처능력을 지닌 인재를 키우는데 그 핵심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두뇌와 마음이 따로일 수 없는 것입니다. 교사는 ‘교육’ 본래의 목적을 다시 한 번 자각하여 중심을 만들어 내야하고, 이것은 개개인이 아닌 학문적 바탕을 공유하는 이들 간에 이유있는 중심이 만들어야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일부 공감하면서도 중요한 부분을 간과한 느낌이 큽니다. 교육에서 구조적 측면은 간과할 수 없는 거대한 부분이고 과거에 비해 그 영향은 점점 더 강해지는 느낌입니다. 단순히 교사들만들의 학문적 노력에 의해 중화 시키기에 그 흐름이 너무도 크지 않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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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 7 교컴지기 2013.06.12 08:58
재희샘, 바쁘다고 하시더니 꼼꼼하게 읽으셨네요... 맞습니다. 이번 논문은 그 주장이 비교적 선명하게 드러나 있죠. 2. 문제해결학습에 대한 샘의 의견에 주목합니다. 문제해결학습에 투여되는 교사의 이해능력을 저자가 소홀히 생각하고 있다는 판단이신거죠? 아마도 저자는 순수한 심성함양의 목적이 아니라면 그 어떤 사고력교육도 창의력교육도 성이 차지 않았나 봅니다. 3.에서 절대적(객관적) 지식과 표준화된 지식은 종종 같은 맥락으로 쓰이곤 하는데... 아마도 상대적(주관적) 지식의 오기인듯... 나머지 사항에 대하여는 적극 공감합니다.^^
레벨 5 노유정 2013.06.12 22:33
저자의 논지를 잘 파악해서 선생님의 생각과 비교 분석해주니 이해가 잘 되네요.
또한 정부의 근시안적인 교육정책과 전시행정도 교육의 본질을 회복하는 발목을 잡는다고 봅니다.
레벨 5 노유정 2013.06.13 10:03

"지나치게 실용성을 강조하는 현재 제도권 교육의 문제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는 노릇" 교컴샘의 논지에 대한 단상.

client... 고객. 이전 간호학부에서 배울 때 사용했던 용어입니다.

그런데 사회복지학을 배우니 사회복지사의 전문성에 맞는 을의 명칭이 client라고 합니다(미국 유래).

올 해 성균관대에서 춘계 학술대회 시 이 명칭 말고, 이제는 다른 측면으로 접근하여 좀 더 다양하게 불리어야 된다는 논문 발표가 있었지요. 몇 해 전부터 교육계에서도 학부모 만족도를 평가 척도로 하더니만, 고객 만족? 을 외치며 client가 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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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 7 교컴지기 2013.06.13 11:07
쉽게 말하면 필요에 따라 요청하는 의뢰자이죠... 제가 가끔 하는 컨설팅에서도 의뢰자를 client라 부르죠.
레벨 5 노유정 2013.06.13 22:28
실용성을 요구하는 client, 교육의 본질과 교과를 통한 심성함양에 어떻게 녹아들게 해야할까요?
레벨 5 노유정 2013.06.13 22:24
과거로의 회귀를 꿈꾸는 건 동서양이 비슷한가봅니다.
"그런가 하면 민주당의 대척점에 있는 공화당은 문화와 가치관에서 과거로의 회귀를 외치고있다. 아직 유니버설TV가 나오지도 않았고, 피임약이 시판되지도...중략...1950년대의 가치관과 도덕성으로의 회귀 말이다."
Creating a New Civilization(정치는 어떻게 이동하는가)-앨빈 토플러&하이디 토플러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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