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 7 교컴지기 2013.10.21 12:45
리뷰 잘 보았습니다. 바로 이러한 비판적 리뷰의 과정이 공부모임 구성원의 성장에 기여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좋은 리뷰를 하기 위해서는 '깊이 읽기'를 해야 할 것이고 비판하기 위해서는 본 텍스트 외에 다른 것들을 참고하여 근거를 제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비판적 리뷰는 그 주제에 대한 공부의 일차적 완성 형태라 볼 수 있습니다. 몇 가지는 해명이 필요하고, 또 몇 가지는 해명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앞으로의 과제가 될 것입니다.  

우선 핀란드에서 '교육이 정치로부터 독립되었다'. 그것이 핀란드 교육개혁의 성공 요인이 되었다는 것은 에르끼아호의 핀란드 교육개혁 보고서를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만, 그 자신 핀란드 교육개혁의 가장 중요한 주체였다고 할지라도 그 여정에서 주류였음을 감안한다면 그 역시 다른 한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입니다. 저는 에르끼아호가 핀란드 교육의 성공 요인으로 든 여섯가지 모두 (종합학교, 교사, 지속 가능한 리더십, 혁신에 대한 인정, 평가보다 배움에 초점을 둔 정책, 신뢰) 정치와 예민하게 얽힐 수 밖에 없는 것들이라 보았고 그것을 잘 헤쳐나온 과정이 이 분 혼자의 능력은 아니라고 보았기에 확실히 그 부분은 핀란드인 특유의 국민적 저력으로 인정해줄만하다고 보았지요. 그러나, 전에도 제가 한 번 언급했듯이 피사라는 '평가'로 인해 확실하게 추인받는 계기가 되었다고 봅니다. 그 이후의 문제들은 내외적 도전을 받아가며 (특히 외부로부터의 경제논리) 이겨나가는 과정이었을 것이라 보는데 이미 그 부분에서 내성과 국민적 합의가 축적돼 있어 적어도 우리와는 판이하게 다를 것이다 생각해요.

비고츠키와 듀이의 연관성을 저는 '조심스럽게 추측'했지만 여전히 어려운 부분입니다. 그 부분을 규명하기는 1) 둘은 체제가 다른 국가에 살았고, 2) 비고츠키가 단명했으며, 3) 구소련의 학문적 폐쇄성 때문에 접근이 어렵습니다. 다만 학문적 경험에 따라 맥락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뿐이지요. 그런데 '나의 교육신조'에서 듀이가 구소련식 사회주의를 맹렬하게 비판하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느 편이든 듀이는 교육이 국가적 이데올로기 전수의 방편으로 쓰이는 것을 경계했던 것이고, 그것은 자연인인 학습자의 삶 속에 뿌리내리는 민주성 시민성을 위해 좋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이 부분 여전히 연구해야할 과제 중의 하나입니다. 한편, 비고츠키는 마르크스 심리학의 영향을 많이 받죠. 그래서 양자간의 학문적 성립 및 전개과정은 사뭇 다르게 나타났는데... 21세기의 한국의 혁신교육 접목 과정에서 동시에 대안으로 주목받으며 필연적으로 양자간 맥락을 검토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죠. 저는 문제의식을 드러냈고, 또 누군가는 좀더 깊이 들여다 볼 것임을 믿습니다.

아울러 진보교육철학(예를 들면 듀이 철학)이 한국 교육 혁신의 중심에 서야 하는 이유를 세계관의 대립 혹은 전환이라는 측면에서도 언급해 주었더라면 좀 더 친절한 설명이 되지 않았을까라는... 이 부분... 당위적으로는 수긍이 가나, 이것을 세계관의 대립 혹은 전환이라는... 이렇게 접근하기에는 '당위적으로 시원하지만 현실적인 것은 아닌' 쪽으로 글이 작성될 위험이 있어요. 결국 이것은 근대교육의 조종이 울렸다고 한 탈학교론자들의 주장보다도 앞서나가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교육관의 균형과 중심을 갖기에 어려운 요소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치다타츠루의 이야기를 빌면, "교육개혁이란 마치도 고속으로 달리는 자동차를 멈추지 않고 수리하는 것과 같다."는 것인데, 현실에 바탕하지 않는 교육개혁논리가 공허한 것임을 암시합니다. 결국, 그것 역시 장구한 교육의 역사와 그 영향으로 조금씩 전환되어야 함을 말하는 것이겠죠. 

마틴 드워킨(1959). ‘존 듀이 교육론(황정숙 역, 2013), 씨아이알'에 보면, 듀이를 둘러싼 양 편의 왜곡이라는 말이 많이 등장하는데 진보교육자들은 듀이에게서 흥미와 관심만을 따로 떼내어 방법과 절차 위주로 접목하면서 듀이를 추앙하는 오류를 범했고, 전통주의자들은 또 그들 나름의 입장에서 듀이를 증오했죠. 듀이는 그래서 늘 양쪽을 향해 비판했어요. 이것이 현대에 들어서서도 듀이를 해석하고 접근하는데 있어 여전히 어렵고 조심스러운 부분이 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 이 부분에서는 겸손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듀이는 난해하고 어려운 것 같아요. 결국, 제 몫이란 확증하고 주장하는 것이기보다 많은 연구자들이 관심을 갖고 더 공부하도록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것이겠죠.  
비밀글
레벨 6 별이빛나는밤 2013.10.21 11:41
일요일 새벽에 이렇게 섬세한 댓글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자가 직접 코멘트를 해주시니 너무 좋네요. 싸인 받는 느낌? ㅋㅋ
말씀하셨듯이 핀란드가 종합교육을 고수함에 있어 피사라는 국가간 주지교과 학력 평가, 비교,경쟁 시스템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긴 했지만 핀란드 사회의 합의나 의식수준은 우리가 높이 사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에르끼 아호, 파시 살베리, 요우니 벨리야르비 등 핀란드 교육과 관련하여 국내에 소개된 핀란드 교육전문가들은 국가교육청이나 핀란드 피사 위원회 인사, 즉 자국의 교육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인 쪽으로 말씀해 오신 분들이었죠. 그 분들의 설명에도 어느 정도의 주관이 들어가 있고 국내에 소개되는 과정에서 과장된 측면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핀란드 교육에 대해 우려의 견해를 내비치는 핀란드 전문가들도 있고 그런 면 또한 존재한다는 걸 알리고 싶었어요. 사실 지식인들의 역할이란 그런 거라고 생각했기에 뚜르꾸나 헬싱키 대학 연구자, 교수들의 글이 저는 인상 깊었지요. 핀란드 사회가 일종의 대리만족이나 판타지 같은 유토피아가 아니라, 이 곳 교육 역시 대내외적인 문제와 고민을 안고 있는(고등교육에 교육시장화정책 도입, 학생들의 낮은 학교만족도, 권위적이고 전통적인 교수학습방법을 선호하는 핀란드 교사들의 성향), 하지만 좀 더 현명하게 문제를 풀어가려고 하는,, 핀란드와 한국의 관계는 전수와 전달이 아닌, 교류와 상호 배움의 관계여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선생님도 같은 시선에서 핀란드를 언급하신 거라고 생각합니다.

듀이의 철학을 프레네와 비고츠키를 아우르는, 보다 큰 줄기의 진보주의 교육철학의 토대로 조심스레 주장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본문에서도 밝히셨듯이 아직은 추측이고, 앞으로 누군가 연구해야 할 부분이겠지요. 사실 사람마다 교육적 관심사가 조금씩 다를 것이고, 어떤 계기로, 어떤 친밀감을 가지고 어떤 학자의 이론을 접했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주관적 취향의 문제 같기도 합니다. 저는 선생님이 개인적으로 듀이 할아버지의 사상을 선호하시는(혹은 좋아하시는) 이유가 궁금하네요.

우치다 타츠루의 말처럼 교육개혁이란 이상을 꿈꾸면서도 현실적인 감각을 지닌 채 진행해야 하는 고난이도의 예술적인 작업이라는 생각에 동감하면서,, 요즘 제가 질적연구방법론을 조금 배우면서 각 연구방법이 철학(세계관)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에 생각을 거듭하다 보니 좀 신경이 날카로워(?)진 것 같습니다. 겨우 조금 알아가는 단계라서 그런가 봐요.^^
레벨 7 교컴지기 2013.10.21 12:49
"저는 선생님이 개인적으로 듀이 할아버지의 사상을 선호하시는(혹은 좋아하시는) 이유가 궁금하네요."... 이것에 답하기에 저의 지식은 너무 짧고 옹졸하며, 이것을 표현하기에 제 글은 너무 조악하고 거칩니다. 그리고 저 자신도 몰라요. 그저 조금씩 알아가고 있을 뿐.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죽을 때까지 열심히 알고자 하여도 그의 사상적 궤적에 10분의 1에도 다가서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레벨 7 교컴지기 2013.10.21 12:54
교육학을 공부한 지 꽤 됐어도, 그동안 내 글에서 듀이의 철학을 제대로 인용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두려웠던 것이지요. 심지어 학위논문의 저변을 흐르는 관점이 듀이의 교육학에 바탕하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면서도 자신있게 관련성을 드러내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듀이는 누구에게나 열려있지만 다가서기 힘든 존재이기도 합니다. 누구는 쉽다하고 누구는 어렵다 하는데 쉽고 어려운 문제는 아닌 것 같고, 그는 넓고 깊습니다. 그의 학문적 여정은 인간의 삶이라 할 수 있는 모든 것에 녹아 있습니다. 경험으로부터 시작하여 교육, 문화, 예술, 정치, 참여, 지식, 민주주의, 시민, 학교, 사회 그를 상징하는 키워드로 손색없는 것들이죠. 지금도 사실 두렵습니다. 듀이에 대하여 공부하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한 가지는 듀이 말고 듀이 철학에 대하여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 정도지요. 그러므로 듀이에 대하여 선호, 비선호조차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냥 공부하고 알아가는 거죠. 단지, 그것 뿐.
레벨 7 교컴지기 2013.10.20 08:04
주제 글이 듀이-프레네-비고츠키-배움의공동체의 연관의 근거를 밝히는 것이 주 목적은 아니지만... 몇 가지 부분 보완해서 다시 작성을 해 보았습니다. 아래 보시면 "초기 혁신교육이 지나치게 절차와 방법에 매몰되어 생명력을 잃게 되었다는 비판을 받게 된다면 그 절반은 배움의 공동체의 몫이다." 부분은 제가 써 놓고도 공감합니다...^^

(전략)
혁신교육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활동가들이 말하는 내용에는 공통점이 두 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지적 전통주의와 효율성에 기초한 경제논리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로 이는 교육본질을 회복하고자하는 긍정적 방향이다. 다른 하나는 지나치게 방법론과 절차적 지식에 비중을 두는 혁신교육의 추진 과정에 대한 우려이다.
 
배움의 공동체를 '신봉'하는 어떤 교사의 경우 몇 개의 키워드로 자신이 적용하는 수업방법을 명확하게 정리해 낸다. 협력적, 활동적, 표현적 배움/수업평가회/점프/책상배치가 수업의 방법이고 이를 지탱하는 철학은 동료성, 공공성, 민주성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것은 사토마나부의 독창적 철학이라기보다 (그 자신도 인정하듯) 이미 100년 전 듀이가 실험학교를 열면서 대부분 적용했던 민주적 원리들이다. 배움의 공동체가 가진 탁월한 이식성은 그 방법에 있다. 이것이 축복이자 독이 되고 있다. 듀이가 흥미와 관심에 매몰되는 학습방법과 절차에 비중을 두는 민주주의 실천을 경계하고 늘 비판하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배움의 공동체는 ‘방법’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일부 한국 교사들에게서 나타나는 이 수업방법에 대한 ‘과잉 신념화’ 역시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이다. 조심스럽게 진단하건대, 초기 혁신교육이 지나치게 절차와 방법에 매몰되어 생명력을 잃게 되었다는 비판을 받게 된다면 그 절반은 배움의 공동체의 몫이다.
 
아울러 프레네 교육 지지자인 경우 아동의 흥미, 자연적 방법, 탐구수업, 노작교육의 중요성을 거론한다. 프레네가 듀이보다는 조금 늦게 교육적 소신을 펼쳤다는 것을 상기하면, 듀이의 철학이 자연스럽게 프레네 교육에 스며들어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초기 프레네 교육의 동기를 보면 혁명을 완수하기 위한 과정으로 교육을 사고했다는 점(물론, 나중에 브르주아적 개인주의에 빠진다고 비판을 받았지만)이 있지만 전반적으로 듀이 철학을 적용하고 있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특히 권위적 학교에서는 자율과 책임, 협력의 능력을 갖춘 능동적인 시민을 길러내기 힘들다는 문제의식은 듀이가 ‘삶의 방식으로서의 민주주의’를 말한 것의 연장선 위에 놓인다. 학교의 모든 구성원들이 평등한 권리로 참여하는 집회에서 공동의 삶을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은 듀이의 민주적 시민성의 핵심 과제와 일치한다.
 
비고츠키는 피아제와 대비되며 마치도 피아제는 개인적 지식 구성에 비중을 두었고 비고츠키는 지식 구성의 사회성을 강조한 것처럼 알려지고 있지만 초기 비고츠키는 피아제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야 맞다. 다만, 그의 사회문화발달 이론을 완성해 가는 여정에서 지식이 언어라는 경로를 거쳐 고등정신기능으로 내면화되는가를 보다 상세히 밝혔다. 그 점에서는 피아제를 극복하였다. 구소련의 심리학자였던 비고츠키는 38세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하는데, 폐쇄적인 소련 사회에서 서방 학자들의 이론을 접하기란 쉽지 않았다. 비고츠키의 서적들이 당시 소련에서 판매 금지된 이유로 서방학자들의 이론을 연구, 적용했다는 말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심스럽게 듀이의 사회, 문화에 대한 문제의식을 연구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사실 우리가 비고츠키를 알게 된 것은 서방의 구성주의 학자들이 비고츠키를 '사회적 구성주의자'로 분류하면서이다. 많은 교사들이 피아제를 개인적 구성주의자로, 비고츠키를 사회적 구성주의자로 도식화하지만, 정작 비고츠키는 이른 나이로 생을 마감했기 때문에 그는 구성주의라는 말을 들어보지도 못했고, 쓰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그를 구성주의로 도식화하는 것에는 신중함이 필요하다. 그래서 사회문화발달이론으로 부르자는 말, 사회문화역사발달이론으로 명명하자는 의견들이 있다. 그 어떤 경우로 보더라도 아동과 사회와의 상호작용과정에서 언어를 매개로 지식을 내면화하는 과정이 고등정신기능을 축적, 구성해 가는 과정이라고 볼 때 이는 듀이의 '아동과 사회와의 관계'의 연장이거나 (언어를 매개로 한) 구체화라 추측해 볼 수 있다.
 
비고츠키 이론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마르크스 심리학, 피아제의 발생적 인식론, 자넷의 사회심리학, 소련의 신경생리학 정도를 꼽는데 자넷이 '인간 정신은 계통발생적으로 진화한다', '정신기능은 사회적 산물'이라고 한 점에 비추어 진화론적 관점과 정신과 사회의 연결 관점을 강하게 견지했던 듀이 관점과 상통한다. 직접 관계하지 않았더라도 심리학적, 진화적, 발생적으로 같은 맥락 안에 있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결국 혁신교육의 과정에서 방법적, 이론적 기반으로 적용된 배움의 공동체, 프레네교육, 비고츠키 심리학은 듀이의 철학, 혹은 그 연장선 위에 있다.
(후략)
비밀글
레벨 6 별이빛나는밤 2013.10.21 11:44
보완해서 올려주신 글 역시 잘 읽었습니다*^^* 글 쓰는 분들은 본인이 쓴 글 읽으며 공감하고, 감탄하고, 단어 하나에 안절부절, 고민하기도 하고 그런 것 같습니다..^^
레벨 5 노유정 2013.10.21 09:38

별이 빛나는 청명한 밤에 선생님의 머리 속에서 가지런하게 정리되고 리뷰된 글, 잘 읽었습니다.

저자의 글에서 문제의식으로 드러낸 부분들은 연구과제로,앞으로 문건들이 나오리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교육 혁신에 대한 방향성을 듀이의 방대한 교육 철학을 바탕으로 다시금 재정립한 것에 큰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핀란드 교육개혁이 피사의 결과에 따라 더욱 확고해진 사실은 그 나라나 우리나라나 실용주의자들 주장이 같은 배경으로 있었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됩니다. 정치경제적 힘의 논리로 교육부가 일관성이 없는 우리나라.

그래도 북유럽은 단일 종교와 철학의 배경이 있는 사회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졌지만,

우리나라는 언제쯤 하나(진정한 사회적 합의)가 될까요? 

비밀글
레벨 6 별이빛나는밤 2013.10.22 21:54
그럼요. 지금까지 혁신학교 및 교육 혁신이 다양한 진보적 교육철학과 관심사를 바탕으로 진행되어 왔는데,그런 움직임들을 교육과정 재개념화라는 교육과정사의 흐름 속에서 이해하기 쉽게 정리해냈다는 점, 교육혁신을 좀 더 폭넓은 철학과 전망을 바탕으로 내다보아야 현존하는 그리고 앞으로 닥쳐올 진보교육에 대한 정치 공세에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제시했다는 것만으로도 아주 가치가 큰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공부 덕분에 새롭게 알게 된 것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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