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 7 교컴지기 2014.07.13 18:18
언제 토론글이 올라오는지 매일 목빼고 기다렸는데 동글이샘이 가장 먼저 올려주셨군요. 우선 그 부분 깊이 감사드리고...
아무래도 교수학습의 실행과정에 비중을 두는 실천을 해왔던 우리 교사 입장에서는 문헌분석을 주로 하는 이론기반의 논문은 뭔가 좀 거리감 있게 다가오는 것이 사실이죠. 게다가 해석학이라는 것이 눈에 딱 보이는 것을 넘어 눈에 보이지 않는 의미 추적에까지 이해의 눈을 들이대고 그것으로부터 지평을 넓혀보자는 학문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할 것 같습니다. 그렇긴 해도 논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간결하면서도 핵심을 잘 잡아주신 듯 합니다.

올려 주신 글 중 저에게 무겁게 다가온 부분은 "지금 내 현실에서의 교육실천은 어떤가. 당장 내 옆에 있는 후배 선생님에게도 교육과정 재구성, 재개념화, 본질적인 교육이 이래야 하지 않느냐는 이야기는 하기가 어렵고 꺼내려면 무척이나 생뚱맞다. 왜? 당장 학교 현장에서는 그 때 그 때 닥치는 업무 해결에도 시간이 급급하다. 어떤 변화가 필요한 것일까." 여기였는데요.

사실, 이것이 현재 한국의 교사들이 처한 현실 그대로이죠. 저 역시 올해 학교를 옮기면서 지난해까지의 독서량에 10분의 1도 미치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요청하는 것은 "한 걸음 더"입니다. 사실 우리 스스로 지식에 대한 음미,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오는 희열을 경험하지 않고 타자를 설득하거나 나아가 감동시킨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죠. 

아마도 어딘가에 있을 그 몹쓸 이론가들은 교사들은 단순 실행에 더 바빠야 하고, '구체적 실천'에서 교사의 의미를 발견해야 한다고(그 정도에서 머물러야 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해야 그 되도 않은 그들의 '이론'을 더 어려운 경지로 끌어 올리고 교사들이 범접할 수 없는 세계에 고결하게 모셔둘 수 있으니까요. 결국 우리가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공부를 하고자는 목적은 이렇듯 소수에게 독점돼 있는 이론을 해체하고 재구성하여 삶과 실천과 유리되지 않는 살아있는 지식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 아닐까요? 어쩌면 지금보다 더한 치열함이 우리에게 필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여전히 이론은 그들의 것이요, 교사들은 눈앞의 폭주하는 업무를 처리하다가 종국에는 탈전화된 기능인이 될 것입니다.

지금 형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공부 자세, 저부터 견지하겠습니다. 깔끔한 토론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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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 6 동글이샘 2014.07.20 23:54
댓글 감사드려요 선생님. 제 답글이 너무 늦은 데 대해 죄송하고요..
선생님 말씀처럼 '한 걸음 더'와 이전과 비교해서 얼마나 나아졌는가를 봐야 나아갈 힘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저같은 경우는 성급하게 결과를 보고 싶어하고, 너무 높이 멀리 잡은 이상적 기준에 빗대어서 현실을 보는 경향이 있어서 실망, 좌절도 잘 하는 것 같아요. '우리 스스로 지식에 대한 음미,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오는 희열을 경험하지 않고 타자를 설득하거나 나아가 감동시킨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 '지금보다 더한 치열함이 우리에게 피요한지도 모르겠다' 는 말씀에 많이 공감하고, 저 역시 그런 태도를 잃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는 마음을 다잡게 됩니다. 다른 공부 모임에 있는 샘들께도 퍼뜨리고(?) 싶은 말씀이에요. ㅎ.
참, 다른 공부모임에서 느꼈던 것들을 좀 추가해서 썼습니다.
레벨 7 然在 2014.07.17 21:45
저는 개인적으로는 이 논문을 참 반갑고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막연해보이는 고민(?)과 궁금증에 대해 이런 식의 연구가 진행되어오고 있다니! 라는 반가움이랄까요. ^^
그러나 샘의 말씀처럼
우리가 하고 있는 교육 활동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기에,,
동료든 학생들이든 또는 학부모이든.. 함께 공감하고 이해하지 않으면 실행되기 어렵지요.. 그래서
어떻게 이 고민을 함께 나누고 진행해나갈 수 있을까... 라는 문제에 봉착하지 않을 수 없네요. ^^;
정말 동료들과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거든요,,

허나..
제 자신에 배어있는
뿌리깊은 타일러주의를 깨는 것도
절대지식을 믿는 지식관을 극복하는 것도 쉽지 않고,
"그래서 어쩌라는 것이냐!" 라는 동료의 질문에 답을 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지만,,,

그것조차도
뚜렷하고 분명한 목표가 아닌
함께 고민하고 만들어가는 해체적 재구성을 통해 우리가 늘 새로이 만들어갈 수 밖에 없다고...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물론 현재의 제 수준에서.. ^^;;)
다만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를 지속적으로 고민하게하고 공부하게 만든다는 것이 저는 오히려 더 매력적이고 옳다는 느낌과 생각이예요. ㅎㅎ
이런 생각에서는
한 발 더 앞서 고민하거나,
조금 더 다른 시각에서 고민한 사람은 있으나
절대자는 없는 것이니
개개인이 주체로서,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해 나가는게 좋은 동기가 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구요. ^^;

개인적으로는... 그저 계속 고민하고,
외형적으로는 별로 달라보이지도 않는 이런 저런 수업들을 해 가며
또 이렇게 좋은 공부 마당에서 샘들과 함께 공부해가며.. 그렇게 꾸준히 놓지않고 가겠다는 정도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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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 6 동글이샘 2014.07.20 23:53
댓글 감사해요 선생님. 말씀대로 내 자신에게 배어있는 것이 무엇인지 다른 눈으로 되돌아볼 수 있는 것이 우리가 하는 공부의 출발점이자 근본이지 싶어요. 정해지고 주어진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해체적 재구성, 정답이 없다 (혹은 여러 개일 수 있다)는 게 오히려 더 공부하게 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도 수용적으로 들을 수 있게 하는 태도이겠지요. 저 역시 정답을 요구하고 찾는 것에 익숙해져서 뭔가 깔끔하게 떨어지지 않는, 소위 열린 결론을 보면 조급증을 느끼고 불안감을 느끼는 것이 아닌가 반성해 봅니다. 조급해하지 않고 꾸준히 가는 게 새삼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과정에서 힘을 얻는 것은 이렇게 선생님들과 함께 나누는 이야기들에서인 것 같습니다.
레벨 3 수양리 2014.07.21 13:18

글을 읽으면서 새로운 함정에 제 자신이 빠져 버리고 살아가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보다는 잘 가르치는 것에 핵심을 두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고민없이 새로운 교육방법을 받아들이고 다른 교사의 모든 것을 그대로 copy하여 적용하고 그것이 학생들에게 잘 가르치는 것으로 인식된 교사로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교사로서 교육과정을 재구성하여 동료교사와치열한 토론을 하고 그것이 현장에서 적용되는 방안을 마련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인데 그러지 못하는 교사의 생활을 긴 시간동안 하고 있었다는 반성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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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 6 동글이샘 2014.07.25 09:49
동글이샘 2014.07.25 09:48
저도 '무엇을' 보다는 '잘'에 훨씬 더 많은 초점을 두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무엇'이 위에서 결정되서 내려오는 데에도 그것이 맞는지 별 생각이 없었었구요. 많은 교사, 관리자들도 그건 우리가 할 일이 아니라고 은연중에 생각하는 것 같고요.. 과연 그럴까 하고 의구심을 갖고 자기 반성을 하는 것 자체가 이미 변화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
레벨 6 별이빛나는밤 2014.09.25 19:37
토론글 잘 읽었습니다. 해석학에 관한 이번 논문이 매우 이상적이고 추상적으로 느껴졌다는 말씀, 정작 현실에서는 교육과정 재구성은 차치하고서라도 주어진 교육과정이라도 제대로 연구해서 가르쳐 보고 싶은 것이 솔직한 소망이라는 말씀에 동감합니다. 이론기반의 논문 중에서도 특히 지식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인식론와 관련된 교육철학 논문이라서 더 추상적으로 느껴진 것 같아요. 올려주신 내용 중에 ‘잘 가르치는 것과 무엇을 가르치느냐의 문제가 언제나 대립항인가’라는 주제가 마음에 들어오네요. 교사들이 하는 수업 행위의 본질에 맞닿아있는, 그러면서도 많은 교사들이 가능하면 피하고 싶은 질문이기도 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자도, 동글이샘도 결국 ‘잘’과 ‘무엇’이 대립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추구해야 할 것으로 바라보고 계시지요. 샘께서 말씀하셨듯이 하루에 몇 시간씩 교실 수업 장면에서 아이들을 만나야 하는 교사들에게 잘 가르치는 것은 전문성의 아주 큰 축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이 둘의 관계일텐데요. 저는 저자가 말한 것 처럼 ‘무엇’에 대한 교사의 철학과 고민이 있는 상태에서 ‘잘’가르치기 위한 교수-학습 방법이 결합되었을 때 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학창시절 선생님들을 떠올려 보면, 그 분들이 당시 학생이었던 저의 눈높이에 맞춘 수업 방법으로 수업을 잘 가르쳐주셨는가 하는 것은 기억에 거의 남아있지 않고(제가 수업을 들었던 그 순간에는 그것이 더 중요했겠지만), 대신 그 분들이 수업시간에 던진 메시지는 아직까지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어요. 심지어 어떤 선생님은 아주 단조롭고 지겨운 영어 수업으로 유명했던 선생님이었는데도 그 분이 평소처럼 읽고 해석하는 단조로운 수업을 하시다가 갑자기 수업 중에 ‘어떻게 살아야 한다’라고 던지신 메시지는 아직까지도 잊혀지질 않아요. 저는 그것을 ‘무엇을 가르쳐야 할 것인가’에 대한 메시지가 갖는 힘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다른 이들의 기억 속에는 ‘잘 가르쳐 주신’ 선생님이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을 수도 있겠지요. ‘무엇을’ ‘어떻게 잘’ 가르치고 배울 것인가’. 저부터 자신을 되돌아보고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중요한 주제를 던져준 좋은 토론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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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 6 동글이샘 2014.10.01 11:37
댓글 감사합니다. '무엇'에 대한 교사의 철학과 고민이 있는 상태에서 '잘' 가르치기 위한 교수-학습 방법이 결합되었을 때 의미가 있다는 말씀에 동감합니다. 현장에서는 전자에 대한 부분이 훨씬 약한 것이 사실이지만, 다른 선생님들과 이야기하다보면 '이 아이들에게 영어 단어 하나 더 가르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이런 얘기들을 할 때가 있어요.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는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고민도 어떻게 잘 가르칠까를 궁리하다 보면 결국 따라나오는 것 같아요. 교사들이 바쁜 일상 속에서도 현실을 개선시키기 위해 공부하고 함께 나누는 풍토를 (더디게라도) 만들어 나간다면 '무엇'을 어떻게 '잘'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에 한 걸음 더 가까이 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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