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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학_이론과 실천

<공부후기> 부르디외? Bourdieu! (수정본)

별이빛나는밤 | 2013.10.07 18:21 | 조회 5678 | 공감 2 | 비공감 0

*아래 글은 제가 속한 교육학 박사과정 세부프로그램(교육정책, 평생교육, 비교교육연구)에서 주최한 부르디외 읽기 세미나에 참석한 다음 읽기 자료와 토론내용, 그리고 부르디외의 이론과 교육현실에 대한 저의 미흡한 이해 및 의견을 바탕으로 쓴 공부 후기입니다.

 

“자, 그럼 부르디외의 핵심개념과 미리 내준 읽기 자료에 대해 질문과 토론을 시작해 볼까요?”

부르디외 읽기 세미나를 맡은 교수가 강의실 안으로 들어와 본인의 맥북을 켠 다음, 앞으로 이어질 세미나의 개요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고서는, 일말의 분위기 전환용 인사치레조차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방문 교수로 핀란드를 여러 번 방문하시면서 이 곳 문화에 너무 완벽하게 적응하신 것 같다. 그녀는 특유의 불어 억양이 강하게 섞인 영어로 부르디외의 생애를 간략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귀여운 프랑스식 발음 탓에 처음에는 20세기의 저명한 사회학자의 이름이 무슨 요리 이름인 줄 알았다. 빠리의 시앙스뽀(빠리정치대학) 교수라고 해서 굉장히 어려운 말을 늘어놓을 줄 알았는데 그녀가 쓴 학술원고도, 강의 내용도 현학적 수사 없이 적절하고 명료했다 (내가 큰 어려움 없이 알아들을 정도였으니). 프랑스, 영국, 미국 등 다양한 나라의 사례들을 끌어와 부르디외의 이론을 중심으로 교육을 통한 계층간 불평등이 어떻게 재현되고 있는지를 설명할 때마다 질적연구를 오랫동안 해 온 사회학자의 노련미가 돋보였다.

“부르디외의 이론은 결코 어렵지~ 않아요.” 그녀가 한 말이다.

그런 것 같다. 사회학이란 결국 우리들이 일상 속에서 스쳐가듯 경험하고 지나가는 사회의 단면들을 좀 더 세밀한 관찰과 구조적인 분석을 통해 잘 풀어낸 흥미로운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상대적 자율권 – 너무나 정치적이어서 슬픈 교육

자율권이면 자율권이지 앞에 ‘상대적’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다니. 이것이 바로 교육이 지금까지 짊어져왔던 한계이자 숙명이었다. 언뜻 보면 독자적인 권위와 전문성을 행사하는 영역인 것 같지만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치나 경제와 같은 영역(field, 장)의 논리, 즉 기득권의 이해관계를 충실히 대변하는 노릇을 해왔다는 것이다. 즉, ‘(교육의) 상대적 자율권(Relative autonomy)’이란 그 입지가 굉장히 좁거나, 실제로는 자율권이라 불릴 수도 없는 허구일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 부르디외의 이 개념에 대한 프랑스 사회의 일반적인 해석이라고 한다. 이렇게 ‘상대적 자율권’이라는 변장술에 힘입어 교육기관에서 일어나는 온갖 선별과정(대표적으로 시험)은 마치도 공정한 절차인 것처럼 둔갑하였고, 따라서 대부분의 노동자 계층 출신 학생들이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교육 실패의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여 기득권의 논리와 입지를 재생산(reproduction)하는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해 왔다. 나는 가끔씩 세계 각국에서 일제고사로 인해 벌어지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섬뜩한 기분을 느낀다. 성취도 평가 평균을 잣대로 학교 재정을 차등 지급하게 되자 교사들이 문제풀이 수업에 내몰린다는 이야기부터, 시험칠 때 교사들이 부진학생 곁에 가서 다시 생각해 보라는 식으로 답을 넌지시 가르쳐주거나 그런 학생들을 아예 등교하지 못하게 했다는 이야기까지 그 전개양상이 어쩜 그리 똑같은지.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에 자율권과 영혼을 함께 뺏겨버린 현대 교육의 섬뜩한 이야기는 세계 곳곳에서 반복 재생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학교 차원 뿐만이 아니라 교사 개인이 지닌 가치관이나 아비투스(무의식적으로 몸에 밴 습관이자 취미. 계급에 의해 영향을 받음)를 통해서도 기득권의 논리가 전파되어 신분 재생산에 기여하고 있음을 어떤 학생이 지적하였다. 이 똑똑한 친구의 말을 들으니 더 오싹해진다. 그 동안 내가 교사라는 명찰을 달고 아이들에게 무슨 말을 어떻게 했나 싶어서. 나를 포함한 많은 교사들은 말(칭찬)이나 글(학생생활기록부)을 통해 ‘성실, 우수, 맡은 역할을 잘 함, 질서를 잘 지킴, 교우관계 원만’이 그저 좋은 것이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학생들에게 심어주었다고 생각한다. 좋은 뜻으로 건넨 한마디 말 안에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효율성이나 합리성이 담긴 것은 아니었던가 되돌아본다. 평교사라는 낮은 직위도 학생들 앞에선 하나의 권력이기 때문에 교사로서 내가 지닌 아비투스를 극복하기 위해 더더욱 노력하는 수 밖에. 그래서 이를테면 ‘권위와 기성 질서에 저항할 때 사용하는 논리력이 점점 풍부해지고 있어 장래희망으로 예술가나 언론인을 추천함’이라거나 ‘무조건 성실하기보다 여유의 중요성을 깨닫고 이를 몸소 실천하고 있으므로 앞으로 창의적인 직업에 도전할 것을 권유함’이라던지,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 주로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보아 내면에 대한 고민이 깊고 자의식이 강하다고 판단됨. 앞으로 이 장점을 잘 살리기 바람’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 만인이 경쟁하는 게임의 공간에서 연대의 공간으로 거듭났으면

자본주의 사회의 ‘장’이라는 공간에서 인간은 경쟁한다. 그 경쟁을 통해 다양한 형태의 자본을 획득한다. 하다못해 윷놀이도, 부루마블도 공정한 규칙의 적용이 생명인데, 이 게임은 절대 공평하지 않아 보인다. 게임에서 이기는데 절대적으로 유리한 다양한 요술봉을 손에 쥐고 태어나는 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게임을 하면 할수록 이 소수의 인간들이 점점 더 많은 자본을 획득하게 되는 구조로 흘러간다. 그래서 게임의 결과로 승자와 패자 사이에는 지배하는 자와 지배당하는 자 사이의 수직적 권력 관계가 성립한다.

그렇다. 우리는 이 말도 안 되는 게임에 뛰어들었다. 부르디외의 이론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운명이 우리의 현재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음을 알리는 결정론적 관점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오늘 아침에 눈을 떠 인터넷이라는 창 너머로 바라본 이 세상의 계층 피라미드는 너무나 견고하여 작은 균열을 내는 것 조차 버거워 보인다. 거기에다 이 신자유주의 세계 경제 시대를 맞아 가진 것들은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자가생식을 거듭한다. 대표적인 것이 정치와 경제, 그리고 언론 ‘장’의 연합이다. 한국의 사례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듯이 집권자들은 한 손에는 ‘경제적 효율성’의 논리를, 다른 한 손에는 ‘보수언론’이라는 무기를 들고 교육현장을 황폐하게 만드는데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힘있는 ‘장’들이 연합하는 이 시대의 흐름이 결코 힘 없는 자들에게도 불리하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교통과 정보기술의 비약적 발전을 통해 우리는 과거에 비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현저하게 줄어든 신기한 세상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블로그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와 같은 새로운 언론매체(new media)의 출현으로 누구나 여론을 생성할 수 있는 세상이다. 그 덕분에 이 시대의 언론은 생성하는 자에서 수용하는 자로 전달되는 일방통행 구조가 아니라 댓글이나 좋아요, 공유를 통해 적극적인 소통을 할 뿐만 아니라 독자가 언론을 확대 재생산할 수도 있는 형태로 진화해가고 있다(그들만 댓글을 다는 게 아니다. 우리도 댓글을 달고 있다. 아주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우리는 누군가의 고객이자 서비스 수혜자인 동시에 누군가를 위한 노동 제공자 혹은 제품 생산자이기도 하다. 90%의 지배당하는 자들이 그 안에서 자기보다 좀 더 약해보이는 누군가를 밟고 지배하려는 욕망을 품는 대신 서로 연대한다면, 그리고 그 연대의 과정에 언론과 교육 영역을 전략적으로 잘 활용한다면 공고한 ‘장’의 질서에 균열을 만드는 일이 훨씬 쉬울 것 같다.

 

어떤 자본을 얼마나 갖고 계시나요?

마르크스가 자본을 경제적 자본의 개념으로 한정하여 설명한 반면, 부르디외는 자본을 여러 유형으로 나누어 설명함으로써 사회계층구조를 바라보는 폭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는 학자이다. 즉, 사회 계층을 구분하는 데 있어서 자본을 얼마나 소유하고 있는가(volume)도 중요하지만, 어떤 유형의 자본을 가지고 있는가(type)도 중요한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부르디외는 자본을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관계) 자본으로 구분하고, 문화적 자본을 다시 세분화하여 말투처럼 몸에 밴 자본, 책이나 미술품같이 대상화된 자본(물건), 그리고 학위나 자격증처럼 제도화된 자본으로 나누고 있다.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분들 중 다수는 경제적 자본이 그만그만하거나 빈약한 수준이지만(돈 버는데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은 분들이라 짐작되기 때문에), 문화적 자본은 제법 소유하고 계신 것 같고, 특히 막강한 사회적 자본의 소유자들이 많은 것 같다. 가령 페이스북의 친구가 500명, 1000명 이상 되는 분들 말이다. (페이스북은 사람들의 문화, 사회적 자본을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아주 흥미로운 매체이다). 그런데 사회적 자본을 가늠하는 데 있어 숫자가 제일 중요한 기준은 아니다. 다양한 장과 계층에 속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수록, 그리고 직접적으로 아는 사이를 뛰어넘어 한 다리 건너 건너의 보다 넓은 간접적 관계망을 보유한 사람일수록 그 사람이 소유한 사회적 자본의 가치는 점점 더 올라간다고 한다. 비록 경제적 자본을 적게 소유한 우리들이라도 이미 가지고 있는 이 다양한 유형의 자본을 우리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드는 데 창의적으로 활용한다면 공고한 지배의 질서에 작은 구멍을 내는 일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 본다.

 

부르디외 읽기, 내 자신을 알아가는 사회적 분석의 시간

교수님의 설명이 끝나자 한 학생이 슬쩍 고백을 한다. 이번 세미나를 통해 자신이 어떤 아비투스와 어떤 자본을 소유한 사람인가 하는 분석을 하게 됨과 동시에 어떻게 하여 지금 바로 여기에서 부르디외 세미나까지 참여하게 되었는지 되돌아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들 얼굴 표정을 보니 그 동안 자기 분석을 하고 있었다는 눈치다. 교수님이 미소를 지으시며 말씀을 덧붙이신다.

“맞아요. 여러분 자신을 사회적으로 분석(socio-analysis)하는 계기가 되었을 겁니다. 부르디외 자신도 그랬죠. 프랑스의 아주 작은 시골 마을에서 노동자 계층의 아들로 태어나 프랑스 명문대학의 교수가 되기까지 많은 사회적 차별과 난관을 경험했을 겁니다. 부르디외의 저작들은 바로 그가 자신을 사회적으로 분석해나간 일대기라고 보시면 됩니다.”

순간 내 머리 속에도 십 수 년의 시간들이 슬라이드처럼 지나갔다. 고3때 아버지가 IMF 경제위기로 해고를 당하시는 바람에 대학 원서를 쓰기 전까지는 그 존재조차 몰랐던 국립교육대학에 눈물바람으로 원서를 썼던 일이 생각난다. 4년 후에는 주위로부터 빨리 임용고시를 치지 않고 무슨 한가한 소리냐는 핀잔을 뒤로 하고 졸업하자마자 아르바이트 한 돈을 들고 넉 달 동안 아시아 배낭여행을 하기도 했다. 3월 초임 발령을 앞두고 신규교사 연수를 받으면서 전교조에 가입을 하게 되었는데 교사들의 노동조합에 가입한다는 것은 내게 퍽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2년차엔 사회 불평등의 제일 밑바닥에 내몰린 가난한 동네 학교의 6학년 담임을 맡았는데 그 아이들이 가정과 사회에서 받아온 폭력과 상처가 그대로 나에게 쏟아지는 것을 견디기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었던 적도 있었다. 그 후 지부의 여성위원회 선생님들과 독서토론모임을 했고, 자발적으로 휴직을 하면서 핀란드로 공부를 하러 오게 되었다. 고 3때 겪었던 인생의 좌절은 내가 한국 사회에서 발 딛고 서 있는 위치가 어디인지 더하고 뺄 것도 없이 적나라하게 보여주었기에, 이후 내가 구축했던 인생관과 정치적 성향은 이런 나의 배경과 의지에서 비롯된 당연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특히 심리학이 그렇겠지만, 공부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것, 그래서 열등감에 사로 잡힌 자기 부정 대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자존감과 현실 개척의 에너지를 양 손에 쥐게 되는, 고통스러우면서도 의미 있게 행복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부르디외가 주장하듯이, 노동자 계급은 ‘끊임없는 자기 부정’(자신이 속한 계급과 자신을 동일시 하지 않고, 머리 속에 설정된 주관적 계급에 의거하여 정치적 의사 표현을 하기 때문에 실제 계급과 투표결과가 일치하지 않는 현상이 나타난다)을 통해 결국 그 위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역설을 경험한다. 이 90퍼센트에 속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연대를 통한 긍정의 에너지를 모을 수 있도록 돕는 길에 언론과 교육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을 다시 해본다.

 

핀란드, 하나의 희망으로 그 자리에 있어 주길

사흘 간에 걸친 세미나에서 우리는 부르디외가 말년에 그토록 경고하면서 저항을 촉구했던 신자유주의의 광풍이 교육 현장을 어떻게 황폐화시켰고, 계층간의 불평등이 얼마나 더 단단해졌는지 영국, 미국, 프랑스, 한국 등 다양한 사례를 통해 확인하고 토론했다. 물론 이런 나라들에 비한다면 대단히 평등하고 건강한 사회이긴 하지만, 핀란드라고 해서 전세계적인 신자유주의의 흐름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특히, 고등교육을 중심으로 구조조정과 성과 위주 시스템이 착실하게 진행중이다. 교수 한 사람이 맡아서 지도해야 할 학생수나 업무가 예전보다 늘었고, 펀딩이나 각종 연구지원비가 경제적 성과로 쉽게 치환되는 생명공학과 같은 IT분야로 집중되고 있다. 게다가 대학은 졸업생 수나 발표 논문 수와 같은 양적 지표에 부쩍 신경을 쓰는 모양새다. 마치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결과로 OECD 회원국의 의무교육이 저울질 당하듯이 대학간 국제평가 및 순위표를 통해 대학들이 양적 지표로 끊임없이 비교를 당하면서 각국의 정부가 재정을 차등 지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헬싱키나 에스뽀, 뚜르꾸와 같은 큰 도시를 중심으로 교육 불평등 현상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이들 지역에서는 영어를 사용하는 유치원도 생겼고, 특히 소말리아 등지에서 온 난민과 이민자가 부쩍 늘면서 그 지역에 원래 살고 있었던 핀란드인들이 다른 동네로 떠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이 곳 뚜르꾸의 바리수오라는 동네에서도 이민자의 비율이 35퍼센트를 넘어서자 핀란드 현지인들이 이사를 나가는 추세가 이어졌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지역 학교에 근무하는 교사의 질과 교육의 질이 낮아지고 있다고 말할 순 없다. 뚜르꾸 대학 교육학부의 부속기관인 뚜르꾸 교생실습종합학교가 이 곳에 있다. 그래도 사회,경제, 문화적으로 다양한 배경을 지닌 학생들이 더불어 배우는 종합학교의 정신에 어긋나는 건 사실이다. 아무튼 좀 더 지켜볼 일이다. 이런 불평등 현상은 최근 들어서 하나 둘 씩 나타나기 시작했고, 아직 다른 사회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지만 (핀란드인들이) 주목하고 있다고 핀란드 학생이 말해준다. 이렇게 신자유주의의 확산과 세계경제위기 속에서 북유럽형 복지사회를 지향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핀란드를 향해 프랑스인(교수)과 한국인(나)은 우리의 염원을 담아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I really hope that Finland wouldn’t follow the same steps.”(핀란드가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를 간절히 바래.)

We are looking at your society!”(우리가 핀란드를 주목하고 있어!)

내년에는 미셸 푸코의 이론을 가지고 다시 들르겠다는 교수님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학생들 몇 명이 푸코는 너무 어렵다며 다른 주제로 만나면 안되겠느냐는 귀여운 탄식을 쏟아낸다. 그래도 이렇게 해마다 교수님의 사회학 강의를 듣는 독특한 학생들이다. 요즘은 프랑스에서도 사회학을 전공하겠다고 말하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너한테 무슨 일 있는 것 아니냐는 반응을 얻게 된다는데 말이다. 경제적 환산 가치가 높은 전공과 수업을 좇게 만드는 이 시대의 현실 때문인지 교육학부 박사과정 학생이면 누구나 수강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해두었지만 많은 수가 참여하진 않은 이 꼬장꼬장한 세미나에 열정적으로 임하여 나의 배움에 큰 보탬이 되어 준 학생들이 고맙고 든든하다. 

 

<참고문헌>

홍성민. 피에르 부르디외와 한국사회. 살림

Lingard, B., Rawolle, S. & Taylor, S. (2005). Globalizing policy sociology in education: working with Bourdieu. Journal of Educational Policy 20 (6), 759-777

Reay, D., Davies J., David, M. & Ball, S. (2001). Choices of degree or degrees of choice? Class, Race and the higher education choice process, Sociology 35 (4), 855-874

Zanten, A, V. (2005). Bourdieu as education policy analyst and expert: a rich but ambiguous legacy. Journal of Educational Policy 20 (6). 671-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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