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여러분들이 과학자들에게 연구비를 지원할 수 있다면 다음 두가지 과학기술 연구과제 중 어떤 것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지난달 24일 오전 오스트레일리아 캔버라에 있는 연방과학산업연구소 부설 전시장인 디스커버리 센터에서는 세인트 에드먼스 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사회속 과학 발견하기’라는 교육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었다. 강사로 나선 스테판 스피어 연구원이 학생들에게 제시한 두가지 연구과제는 오스트레일리아 일부 지역에서 나타나고 있는 ‘소금화’(땅 속의 소금이 지표면으로 스며나오는 현상)의 확산을 막기 위한 방법에 대한 연구와, 철분이 많이 든 쌀을 개발하기 위한 유전공학 연구였다. 소금화 현상이 생기면 땅이 황폐해져 나무와 풀이 말라죽고 강물이 소금물로 변하는 등 환경문제가 발생하며, 쌀로 끼니를 때우는 가난한 나라 국민들이 철분 부족으로 고통받고 있는데 철분 함유량을 높인 쌀 종자를 개발하면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간단한 설명이 끝나자 학생들은 전시장 곳곳을 누비며 연방과학산업연구소의 최근 연구결과들을 살펴보고 전시물을 이용한 실험과 관찰 등 다양한 체험활동을 즐겼다. 전시장에 소금화와 유전공학과 관련된 연구결과들이 전시돼있음은 물론이다. 전시장에서 만난 이 학교 학생 마일스 켈리(10)는 “무엇보다 직접 손으로 뭔가를 해볼 수 있어서 무척 재미있다”며 “학교 과학공부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런 체험활동을 거친 뒤, 학생들은 자기가 더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연구과제에 투표를 하게 된다. 스피어 연구원은 “90분 동안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은 과학이 얼마나 중요하고, 얼마나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 과학교육 프로그램은 다양한 ‘학교 밖 과학활동’을 통해 학생들의 과학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북돋우려는 오스트레일리아 정부의 노력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학생들의 과학기술 기피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과학기술 관련 단체 등이 나서 과학기술 대중화와 과학문화 확산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최대의 과학기술연구단체인 연방과학산업연구소는 이를 위해 디스커버리 센터 이외에 전국에 9곳의 자체 과학교육센터를 두고 있다. 과학교육센터는 일종의 과학실험실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해마다 전국에서 21만여명의 학생과 교사들이 이 곳에서 운영하는 과학실험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캔버라의 과학교육센터인 ‘그린 머신’ 연구원 자넷 리처드슨은 “이 곳을 방문하면 학교 교과과정에 포함된 다양한 과학실험을 통해 과학을 깊이 있게 배울 수 있다”며 “학교를 방문해 실험을 하는 ‘이동과학교실’ 프로그램도 운영한다”고 말했다.

△ 국립과학기술센터(퀘스타콘)에서 한 학생이 모형 롤러 코스터가 움직이는 원리를 담은 게시판을 바라보고 있다.

연방과학산업연구소는 이밖에 △1만5천여명의 청소년과 5천여곳의 학교가 회원으로 가입한 전국적인 규모의 청소년 과학클럽인 ‘이중 나선’(더블 헬릭스) △초·중·고교 학생들이 나름의 과학기술 관련 주제를 정해 연구를 수행하면 등급에 따라 상을 주는 ‘과학기술 분야의 창의성’ 시상제도 △고등학교 2, 3학년 학생들이 과학자들의 지도를 받으며 전문적인 연구 경험을 쌓는 ‘학생연구계획’ 제도 등을 통해 청소년들이 다양한 과학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과학관인 국립과학기술센터(퀘스타콘)도 빼놓을 수 없는 학교 밖 과학교육 시설이다. 퀘스타콘의 과학교육 프로그램의 목표는 한 마디로 ‘재미있는 과학’이다. 퀘스타콘의 교육 프로그램이 거의 100% 놀이와 과학쇼, 체험활동으로 구성돼있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캔버라에 있는 퀘스타콘 건물에는 6개 전시관에 200여개의 과학 관련 전시물이 설치돼있는데, 모두 관람객들이 직접 만지고, 작동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곳에 전시된 전시물은 퀘스타콘의 전체 전시물의 30%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 70%는 ‘과학 서커스’ 프로그램 등 이동 전시를 통해 전국을 돌고 있다. 특히 과학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는 대학원생들로 팀을 이뤄 마치 연기하듯이 각종 과학실험을 선보이고 과학원리를 설명해주는 과학 서커스는 해마다 15만여명이 즐길 정도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퀘스타콘의 브렌튼 하니맨 국장은 “퀘스타곤의 철학은 ‘들으면 잊어버리고, 보면 기억하고, 직접 해보면 이해하게 된다’는 중국 속담에 바탕을 두고 있다”며 “우리 교육프로그램의 특징은 놀면서 과학적 원리를 깨닫게 하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시드니에 있는 파워하우스뮤지엄은 전문 과학관은 아니지만, 과학기술 관련 전시물을 과학교육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점에서 눈여겨 볼 만하다. 이 박물관의 교육 담당자인 마이클 반 티엘은 “해마다 연초에 수업에 활용할 수 있는 전시물 전시계획을 담은 교사용 안내책자를 만들어 교사들에게 보낸다”고 말했다. 캔버라,

한겨레 시드니/글·사진 이종규 기자 jk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