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2004-02-08 19:26:00]

[한겨레] 한 사회 민주주의의 질은 소수자가 어떤 대우를 받는지에 달려 있다는 말이 있다. 이런 점에서 덴마크는 매우 민주적인 교육제도를 세우고 있는 나라이다. 학부모 한 명, 한 명이 자녀 교육에 대한 선택의 기회를 폭넓게 누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어떤 선택에 대해서도 국가가 존중하고 지원해주는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덴마크 교육제도를 이해하는 ‘열쇳말’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런 다양성은 이 나라의 독특한 학교 형태인 ‘프리스쿨’의 역사와 맥이 닿아 있다.

프리스쿨-학생들 13%가 다녀 다양한 교육방법 제공 에프터스쿨-8~10학년 학생들 기숙생활 인생설계도 평민대학-원하는 과목만 배우며 나를 돌아보는 시간 프리스쿨은 국가 주도의 획일적인 의무교육제도에 맞서 민중의 삶에 기반한 자유교육운동을 주창한 니콜라이 프레데릭 세베린 그룬트비(1783~1872)의 교육사상을 좇아, 당시 교사였던 크리스텐 미켈센 콜(1816~1870)이 1852년에 처음 설립한 일종의 사립 대안학교이다. 15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이 프리스쿨은 오늘날 일반 공립학교들과 적당한 경쟁관계를 유지하면서 덴마크 공교육제도를 떠받치는 한 축으로 자리잡았다.

덴마크는 우리나라의 초·중학교에 해당하는 7살부터 15살까지의 9년 동안을 의무교육 기간으로 정하고 있는데, 전체 의무교육 대상 학생의 13% 정도가 프리스쿨에 다니고 있다. 프리스쿨과 공립학교 사이의 전학은 언제든지 가능하다. 린델세시에 있는 공립학교인 칼 닐센 초·중등학교의 이레네 라르센 교감은 “프리스쿨의 전통이 유난히 강한 이 지역에서는 30% 정도의 학생들이 프리스쿨에 다니고 있지만, 우리는 나름대로 우리 학교를 최고의 학교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부모들이 다양한 교육방법 중 하나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덴마크의 오랜 전통”이라고 말했다.

그룬트비와 콜의 자유교육운동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학교에는 프리스쿨 이외에도 애프터스쿨, 자유교사대학, 평민대학(포크 하이스쿨) 등이 있다. 지식만을 전달하는 학교가 아니라 ‘삶을 위한 학교’를 지향한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이 학교들은 모두 자유와 평등, 공동체 정신을 바탕으로 한 전인교육을 목표로 삼고 있다. 교육 방식에서는 대화를 통한 학생들과의 교감을 강조한다. 이 중 애프터스쿨은 공립학교와 프리스쿨을 졸업했거나 다니고 있는 8~10학년 과정의 학생들이 1년 동안 공부하며 인생을 설계하는 기숙형 학교이다. 1844년에 농민들의 손으로 처음 세워진 평민대학은 자유교육운동 역사에서 가장 먼저 생긴 학교인데, 보통 18살 이상의 학생들이 2~9개월 동안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자기가 원하는 과목을 골라 배운다.

오덴세 인근 마을에 있는 리슬링에 평민대학의 토마스 톰센 교사는 “9~10년 과정의 초·중등학교→대학 입학을 준비하는 3년 과정의 김나지움→대학교로 이어지는 표준적인 교육과정에서 잠시 벗어나, ‘내가 누구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얻기 위해 이 학교를 찾는 학생들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현재 덴마크에는 210개의 프리스쿨과 240개의 애프터스쿨, 85개의 평민대학이 있다. 5년 과정의 프리스쿨 교사 양성기관인 자유교사대학은 한 곳 뿐이다.

프리스쿨이 덴마크 공교육 제도의 일부로 뿌리를 내릴 수 있게 된 데에는 정부의 재정적 지원이 큰 몫을 했다. 프리스쿨은 시민들이 세운 학교이지만 교사 인건비를 포함한 전체 학교 예산의 75~80%를 국가가 지원한다. 나머지는 학부모가 내는 수업료와 지역사회의 기부금 등으로 충당한다. 학부모가 부담하는 몫은 15~20% 정도라고 한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의 경우 장학금 혜택도 주어지기 때문에 다른 나라의 사립학교와는 달리 학비 부담은 매우 적은 편이다. 나랏돈으로 학교 운영비를 지원한다고 해서 학교 운영이나 교육과정에 교육부가 간섭하는 일은 거의 없다. 공립학교에 견줘, 프리스쿨은 교육 내용과 방법, 설립 이념, 교사 채용 등에서 폭넓은 자유를 누린다. 칼 크리스티안 에기디우스 전 자유교사대학 교수는 “교육의 자유와 댜앙성을 국가가 최대한 보장해주는 덴마크 교육제도의 밑바탕에는 모든 사람이 자기가 원하는 교육을 잘 받는 것이 개인의 이익이 아니라 공공의 이익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고 말했다.

오덴세/글·사진 이종규 기자 jklee@hani.co.kr ⓒ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