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 구호가 적힌 피켓 옆에서 엄마, 아빠와 나란히 촛불을 들고 서 있는 어린이의 모습은 이제 반전·평화 집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풍경 가운데 하나가 됐다. 아빠의 무동을 탄 채, 연설에 귀를 기울이는 천진난만한 아이의 모습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꼭 집회 현장이 아니더라도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엄마! 저 사람들 왜 저래”라거나 “미국은 왜 이라크를 공격하려고 그래”라는, 뜻밖의 질문을 받고 당황했다는 부모도 적지 않다. 이렇듯 미국의 이라크 침공 준비와 북한 핵 문제를 둘러싼 북-미 갈등 등을 계기로 ‘전쟁과 평화’의 문제가 새삼 우리 삶의 문제로 다가오면서 어린이들에 대한 평화교육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평화교육은 차이와 다양성 인정을 바탕으로 아이들에게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심성을 길러 주는 교육이다. ‘전쟁과 폭력의 문화’에서 벗어나 ‘평화의 문화’를 꽃피우는 것이 평화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할 수 있다.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김정수 국제협력위원장은 “평화교육의 핵심은 일상적인 삶 속에 스며든 반평화와 폭력의 문제를 스스로 느끼게 하는 것”이라며 “남에 대한 배려, 생명 존중, 관용 등 평화의 가치들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어릴 때부터 ‘평화 감수성’ 훈련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평화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에게 평화적인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요즘에는 아이들이 너무 폭력적인 문화에 일상적으로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 남북어린이어깨동무 평화교육팀 최혜경 간사는 “아이들과 연극놀이를 하다 보면 아이들이 가해자 구실은 아주 잘 해내면서도,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데에는 취약하다는 것이 확연하게 드러난다”며 “이는 우리 아이들이 대중매체나 게임, 놀이 등을 통해 폭력문화는 너무 쉽게 받아들여온 반면, 평화문화를 접할 기회는 매우 드물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우선 집에서 총과 칼, 탱크 등 폭력적인 무기 장난감을 없앨 것을 권한다. 친구들을 향해 총을 쏘거나 칼을 휘두르면서, 무의식중에 폭력성을 내면화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충분한 설명도 없이 무작정 장난감을 빼앗기보다는 먼저 무기의 의미에 대해 대화를 해보는 것이 좋다. 전쟁에 관한 비디오를 함께 보면서 총에 맞아 다친 어린이의 고통스런 모습을 통해 자기들이 가지고 노는 것들이 실제로는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자연스럽게 느끼게 할 수도 있다.

주먹 센 사람을 영웅으로 미화하는 폭력 드라마를 즐기는 아이들에게는 맞는 사람의 처지에서 폭력을 생각해 보게 할 필요가 있다. 평화인권연대 최정현진 상임활동가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폭력 드라마를 보면서도 자기는 늘 때리고 이기는 주인공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폭력에 무감각해지는 경향이 있다”며 “내가 언제든지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다른 사람이 폭력으로 겪는 고통에 대해 자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요즘처럼 전쟁이라는 말이 뉴스 등을 통해 자주 오르내릴 때는, 아이와 함께 전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나름대로 평화적인 해결책을 찾아보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반전·평화 촛불집회가 있는 날이면 빠짐없이 다섯살 난 딸과 함께 참가하고 있는 이명희(39·경기 성남시 분당구)씨는 집회 현장에서 보고 들은 것에 대해 아이가 질문을 하면 아이 눈높이에서 설명을 해준 뒤, “너 같으면 어떨 것 같니” 하고 되묻곤 한다. 최근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반대하는 촛불집회에서 ‘미국이 석유 때문에 전쟁을 일으키려 한다’는 말을 듣게 된 아이와 이씨가 나눈 대화의 한 토막.

“엄마! 석유가 뭐야. 그게 뭔데 전쟁을 일으켜”

“석유는 사람들에게 아주 중요한 거야. 너에게 아주 소중한 장난감이 있는데, 너보다 힘 센 사람이 ‘나 좀 빌려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너는 이 장난감 갖고 놀 자격 없어. 너는 이미 충분히 갖고 놀았으니 이리 내놔’ 그러면 네 기분이 어떨가 속상하겠지 이라크 사람들 지금 많이 속상하대.”

이씨는 “아이와 전쟁에 대해 얘기할 때 ‘폭력을 쓰면 왜 안되는가’에 대한 설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이 때 가장 좋은 방법이 처지를 바꿔 생각해보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겨레 이종규 기자 jklee@hani.co.kr

<어린이 평화교육 단체 및 인터넷 사이트>

남북어린이 어깨동무 http://www.okedongmu.or.kr 초등학생 대상 순회평화교육
안녕 친구야! http://www.hifriends.org 온라인 평화교육 사이트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http://www.peacewomen.com 평화 인형극, 갈등해결 교육
평화인권연대 http://peace.jinbo.net 평화행진캠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