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북 경산 성암초등학교 이호철 교사가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반 아이들을 한 명씩 안아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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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교실.’

경북 경산 성암초등학교 이호철(52) 교사가 이달 초 펴낸 책 제목이다. 주로 농촌 지역 학교에서 30년 가까이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실천해 온 학급운영 사례를 모은 책이다. ‘살아 있는 교실’은 이 교사의 교육철학이 오롯이 담긴 말이기도 하다. 참된 삶을 가꾸는 살아 있는 교육이 그것이다. 이 교사는 “지식 중심의 교육이 아니라, 아이들 삶에 밑바탕이 되고 아이들이 아름답고 올곧은 마음을 기르도록 도와주는 교육이 살아 있는 교육”이라고 말한다. 살아 있는 글쓰기와 살아 있는 그림 그리기, 재미있는 숙제, 관찰 등이 이 교사가 살아 있는 교육을 위해 1년 내내 아이들과 함께 하는 활동들이다. 이 교사와 32명의 아이들이 가꿔가는 ‘살아있는 교실’ 속으로 들어가 보자.

있는 그대로 그리고 사물 꼼꼼히 기록하고
관찰잘해야 창조도 있죠
음식해먹기…신발빨기
재미있는 숙제하다보면
생활에 생동감 넘쳐요

지난 17일 오전 성암초등학교 6학년 2반 교실. 8시가 되자 아이들이 하나둘씩 들어선다. 이 교사가 미리 잔잔한 음악을 틀어놓고 아이들을 맞는다. 아이들은 이 교사와 반갑게 아침 인사를 나눈 뒤, 아침 활동에 들어간다. ‘친구 모습 보고 그리기’다. 이날 ‘모델’은 이은경(12)양이다. 이양이 앞에 나가 서자 아이들은 이양의 얼굴 표정과 서 있는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며 사인펜으로 그림을 그려 나간다. “몸 형태가 너무 직선이잖아. 그렇게 로봇처럼 생긴 사람이 어디 있어”, “팔 길이가 너무 짧다. 은경이 팔이 그렇게 생겼어”…. 이 교사는 아이들 책상 사이를 오가며 잘못된 점을 지적하느라 바쁘다. 이 교사가 그림 그리기 시간에 가장 강조하는 것이 ‘있는 그대로 자세하게 살펴보기’이다. 그래야 머릿속에 자리잡은 관념에서 벗어나 살아 있는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반 아이들은 늘 이렇게 살아 있는 그림 그리기로 하루를 시작한다. 매일 아침 자율학습 시간에 번호 순서대로 한 명씩 모델을 정해 30~40분 동안 그림을 그린다. 서 있는 모습 그리기에 익숙해지면, 앉아 있는 모습, 둘이 서 있는 모습, 얼굴, 꽃과 풀잎, 나무 등으로 난이도를 높여 나간다. 이 교사는 “자세히 본 것을 잘 살려 그릴 수 있어야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창조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다”며 “있는 그대로 볼 줄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낼 수 있겠느냐”고 말한다.

2교시 국어시간. 자투리 시간에 ‘재미있는 숙제’ 검사가 이뤄진다. ‘재미있는 숙제’는 베껴 쓰고 달달 외우는 숙제가 아닌 살아 있는 공부를 위해 이 교사가 매주 토요일마다 내주는 숙제다. 지난 주말에 내준 숙제는 ‘종이 위에 식구들 발모양 본뜨기’다. 발을 본뜨며 나눈 이야기도 적어 내도록 했다. 이 교사는 “‘재미있는 숙제’는 아이들이 몸으로 재미있게 하다 보면 저절로 삶이 가꾸어지고 창조성이 길러지는 숙제”라고 말한다. 식구들과 함께 등산하기, 봄나물 캐서 음식 해먹기, 실내화 빨아 오기 등이 그동안 내준 ‘재미있는 숙제’들이다.

3교시 과학수업이 시작되자 아이들은 관찰기록장을 꺼낸다. 관찰기록은 이 교사가 과학교육에서 가장 으뜸으로 삼는 활동이다. 일주일에 2~3가지씩 물건을 정해, 그 물건의 색깔과 모양, 크기, 촉감 등을 오감을 동원해 자세히 관찰한 뒤 관찰기록장에 적게 한다. 아이들이 가장 최근에 관찰한 물건은 컵인데, 이 교사는 컵을 손으로 만져 봤을 때의 느낌이나 빛깔 등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아이들이 제대로 관찰하고 있는지 꼼꼼하게 점검한다. 이날 5~6교시는 미술시간이다. 이 교사가 “이번 시간에는 생활그림을 그려보자”고 제안한다. 최근 겪은 일 중 기억에 남는 일 한가지씩을 떠올려 그림으로 표현하는 방식이다. 물론 살아 있는 그림 그리기 교육의 하나다.

정규 수업이 끝난 뒤에는 개별 글쓰기 지도가 이뤄진다. 학원에 가지 않는 학생들을 모아놓고 겪은 일 쓰기(서사문) 공부를 한다. 이 교사는 방과후 글쓰기 공부 이외에도, 재량활동 시간과 국어수업 시간을 이용해 일주일에 두 시간씩 살아 있는 글쓰기를 가르친다. 그동안 서사문과 시 쓰기 공부를 해왔고, 앞으로는 감상문과 설명문, 주장글 쓰기를 할 계획이다. 이 교사는 “아이들은 글쓰기를 통해 맺힌 마음을 풀고, 세상을 바로 볼 줄 아는 눈을 갖게 된다”며 “꾸며서 쓴 글, 관념으로 쓴 글이 아닌 아이들의 삶과 생각이 생생하게 드러나는 글이 살아 있는 글”이라고 설명한다.

“우리 선생님은 참 꼼꼼하고 자상해요. 특히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 지도할 때는 방법을 자세히 알려주고, 일일이 틀린 곳을 바로잡아 주셔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어요. 우리들에게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려고 하는 모습이 존경스러워요.” 이 반 김은정(12)양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