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저녁, 전주에서 순천으로 가다 눈을 만났다. 세찬 눈보라에 함박눈이 차창에 달라붙었다. 함께 가던 동료의 말이 멋있다. “11월 초에 이런 눈, 처음이네요.” 그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참 신기한 경험을 한 것 같아요. 특히 남쪽 지방에서요.” 동료는 그때 ‘창의여행’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11월 초순(12월이 아닌)에 큰 눈(싸래기 눈이 아닌)이 온다는 신기함과 그것도 남쪽 지방(북쪽 지방이 아닌)에서 이런 눈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을 자신의 상식에 비추어 차별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운전 중에 큰 눈을 만나면 귀찮아 한다. 안전한 운전에 지장이 많기 때문이다. ‘대상에 대한 차별적 인식’은 똑같은 장면과 상황을 경험한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나타나는 서로 다른 학습효과, 곧 ‘인지의 차별화’로 이어진다.

올해는 가을이 실종되었다고 한다. 이 또한 가을이라는 대상을 차별적으로 인식하려는 사람에게나 가능한 말이다. 단풍여행을 고대했던 사람들에게는 그저 실망만을 주었을 상황이 큰 의미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자꾸 가을이 짧아지고 있네’라는 느낌은 한 사람의 탐구욕(가을이 짧아지는 원인은 무엇인가)을 자극할 수도 있다. 이렇듯 사람들은 자기만의 관점으로 세상을 파악한다.

이번에는 관점을 형성하는데 영향을 주는 시점(視點)의 다양화, 곧 눈길이 머무는 곳의 다양화에 대해 다뤄보자. 관점은 ‘대상을 내가 보는 것’이다. 나의 해석과 나의 생각이 대상의 어떤 특성만을 보게 하는 것이다. 관점이 다양한 사람은 편협한 사람보다 여러 특성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관점이 아무리 다양해져도 그 대상이 보여주는 모든 특성을 다 볼 수 있게 만들기는 어렵다. 여기에서 발상의 전환이 요구된다. 대상이 보여주는 것을 해석하지 말고 그대로 보아야 한다. 그래서 대상에게 다가가야 한다. 시점의 다양화 훈련은 대상의 모든 특성을 보기 위해 ‘내가 부지런히 움직일 것’을 요구한다. 대상이 육면체로 이뤄져 있다면, 나는 여섯 방향으로 나의 몸을 움직여야 한다. 그래서 나의 눈길이 대상의 모든 특성에 머물게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새로운 것을 볼 수 있게 된다.

새로운 것을 얻는 경로는 크게 4가지가 있다. 먼저 새로운 정보를 접하는 것이다. 새로운 곳에 가거나 새로운 책을 읽거나 새로운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다. 두번째는 기존의 경험을 새롭게 해석하는 것이다. 자신이 이미 한 경험을 새롭게 해석할 때 새로운 의미가 형성된다. 세번째는 아예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것이다. 새로운 발상을 토대로 한 새로운 아이디어는 새로움을 선물로 준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산출물을 만드는 것이 있다. 새로운 물건을 만들고 이를 의미지우면 새로운 것이 된다. 이렇듯 새로운 것을 얻는 경로는 다양하지만, 사람들은 대체로 첫째의 새로운 경로를 택하는 경우가 많다. 이 중에서도 여행은 가장 보편적인 새로움의 경로이다.

창의여행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대상에게 다가가 나의 눈길을 구석 구석 비추는 것이다. 여행을 할 때 지금까지 알려진 것을 넘어서서 더 알아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바로 창의여행의 목적이다.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동일한 대상을 다른 대상들과의 차별화된 인식을 하는 기회를 얻는 여행이다.

필자의 선산에는 특이하게 자리잡은 조상의 묘가 있다. 9대 할아버지의 묘 위에 11대 할아버지의 묘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문중에 다툼이 있었다고 들었다. 이 다툼은 법정으로 비화되었고, 판결은 이랬다. ‘손자가 할아버지를 업고 있다.’ 법관의 판결은 두고 두고 집안 사람들에게 지혜로운 판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겨레 임선하/현대창의성연구소장 creman@creman.net

<함께 하기>

1. 경주 무열왕릉의 비석을 떠받치고 있는 거북이의 발가락은 몇개인가 앞발가락은 정상인 5개이지만, 뒷발가락은 4개뿐이다. 뒷발가락이 4개뿐이라는 특성을 보아야(시점 적용) 이를 해석해서 관점을 가질 수 있게 된다.

2. 특이하거나 새로운 느낌을 주는 대상물이 있는 곳을 조사하라.

3. 체험학습이나 수학여행을 통해 접한 대상의 일반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특성을 한가지씩 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