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제 여러분이 이곳 대방동에 주유소를 하나 차리는 거예요. 먼저 주유소의 전기시설을 수리할 전기기술자를 하고 싶은 사람…”.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이들이 일제히 손을 들며 “저요, 저요”하는 소리로 교실 안이 떠들썩하다. 제일 먼저 손을 든 석준이(12)가 가슴에 ‘전기기술자’라고 적힌 스티커를 붙이고는 싱글벙글이다. 차례대로 계산공, 수리공을 뽑은 다음 마지막으로 사장을 뽑는다고 하자 아이들의 얼굴이 뜨악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중에 손을 들 걸 하는 표정이다. 사장 역할을 맡은 수현이(12·여)는 계산공 역인 장석이(12)가 평소처럼 장난을 걸어오자 “너, 자꾸 그러면 월급 안준다”고 엄포를 놓는다.

지난달 29일 서울 대방초등학교 5학년 2반 교실.

이날 2교시 ‘경제교육’에 아이들은 온통 들떠 있었다. 경제강의를 맡은 김유경씨(38·한국산업은행 정보시스템부 차장)가 처음 교실로 들어설 때만 해도 주뼛주뼛하던 아이들은 각자 주유소에서의 역할이 정해지자 정말 자신이 주유소 직원이 된 것처럼 저희들끼리 희희낙락이다. 담임교사인 강수원씨(35)가 “경제선생님이 하신 말씀을 잘 들어야 어떻게 회사가 운영되는지 알 수 있다”며 몇 차례 주의를 줘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날 5학년 2반 아이들이 배울 경제공부는 기업활동과 기업의 종류에 관한 것. 역할극의 형식을 응용해 아이들에게 각자 역할을 정해주고 개인회사를 만들어보게 한 뒤 ‘이런 것이 개인회사’라고 설명하는 식이다. 이어 합자회사는 영등포동 주유소 사장인 한별이(12·여)가 대방동 주유소 사장인 수현이와 힘을 합쳐 만든 회사라는 설명이 뒤따르자 아이들이 한움큼 입을 벌려 “아”하며 탄성을 떠뜨린다. 하지만 주식회사에 대한 설명은 영 힘들어 보인다. 투자자 역을 맡은 다엘(12)은 “투자자는 좀 더 회사를 크게 만들려고 돈을 투자해 나중에 이익금을 돌려받는다”는 경제선생님의 설명을 듣고도 영 자신의 역할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한차례 40분 수업만으로 아이들이 이날의 경제강의를 정확히 이해하기는 무리인 듯 싶었는데도 첫날 경제수업의 소감을 말하는 아이들의 대답이 그럴싸하다.

“주식투자는 친한 사람들끼리 돈을 모아서 큰 빌딩을 만드는 것”이라는 장석이의 말에 윤하(12·여)는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예전에 몰랐던 것을 알게 돼 너무너무 재밌다”고 거든다.

대방초등학교는 지난달 26일부터 한달간 주 1회 40분씩 총 5회에 걸쳐 전학년을 대상으로 경제교육을 실시한다. 저학년은 가족의 직업, 우리 동네의 경제활동, 은행 등 초보적인 내용을, 고학년은 직업의 종류, 기업활동, 세계경제와 무역 등 좀 더 거시적인 내용을 교육한다.

오랫동안 경제교육을 준비해온 이정숙 교사는 “경제는 생활 속 습관과 체험”이라며 “잘못된 판단을 바로잡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경제를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이교사는 이어 “요즘 아이들은 잘못된 소비습관에 젖어 스스로 일을 해서 용돈을 벌고도 이를 제대로 관리할 줄 모른다”며 “경제교육은 5학년 사회과정에 잠깐 들어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그래서 이교사는 처음 경제교육을 시작하기 위해 국가경영전략연구원의 경제교육(JA－Korea)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았다. 이 프로그램은 자원봉사자들과 경제교육을 원하는 학교를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날 6학년 아이들을 대상으로 세계경제와 국가간 무역에 관해 가르쳤던 조창현씨(29·LG그룹 홍보팀)는 지난 4월 회사 홈페이지에서 자원봉사자 모집 광고를 보고 직접 경제교사를 자청했다. 조씨는 “교과서에서 배우는 딱딱한 경제공부 대신 직접 직업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자신의 체험을 들려주면 훨씬 생생하게 가르칠 수 있다”며 “금세 새로운 것을 깨우치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즐겁고 매번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자원봉사자들은 업무에 지장이 없는 한도 내에서 직장에 양해를 구해 1주일에 한 번씩 초등학교 교실을 찾는다.

하지만 JA－Korea 프로그램은 미국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교육과정을 그대로 수입했기 때문에 우리의 현실과는 약간 거리감이 있다. 이날 교실 뒤편에서 이런 문제를 꼼꼼히 기록하던 JA－Korea 최병미 연구원은 “IMF 외환위기 이후 학부모들 사이에서 경제교육 붐이 일었지만 마땅한 교육시설과 프로그램이 없었다”며 “경제교육을 통해 아이들에게 다양한 직업의 세계를 보여주고, 궁극적으로 우리사회가 더불어 사는 곳임을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JA－Korea 프로그램은 지난해 서교·염리초등학교 등에서 시범 실시된 뒤 올해 대방초등학교를 포함해 6개 학교가 추가로 참가를 신청했으며, 조만간 전국 초·중·고교를 대상으로 경제교육을 확대한다.

〈경향 신현기기자 nol@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