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희 수
(한양대학교 교수)

1. 아랍교육의 근간으로서 이슬람

아랍국가의 교육근간은 이슬람이라는 커다란 가치관에 몰입되어 있다. 정교일치적 성향이 강한 이슬람이 종교적 개념을 넘어서서 이제 삶의 양태인 문화의 모습으로 사회 구석구석에서 여전히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세의 화려했던 모습과는 달리 20세기 들어 아랍권의 이슬람세계는 서구의 가혹한 경제적 침탈을 경험하고 첨단과학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군사력 불균형이 심화되면서 새로운 가치관의 정립을 생존의 문제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것은 서구문화에 대한 수용과 교육이라는 당면과제였다. 동시에 서구적 가치관을 이슬람의 가치에 적대적인 대상으로 묶어두지 않고 어떻게 조화로운 협력과 절충의 틀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문제가 크게 대두되었다.

이처럼 20세기 아랍국가 엘리트들의 일관된 관심사는 '교육을 통한 서구화와 이미 전통가치로 굳어진 이슬람 문화와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하고 조화를 이루어 나갈 것인가?'였다. 그리고 그 힘든 과업은 지금도 끊임없는 내적 도전을 받으며 현재 진행형에 있다.

이런 맥락에서 아랍의 교과과정은 전통적인 이슬람 인문학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서구의 과학과 기술을 병행하는 경향이 매우 뚜렷하다. 최근에는 이슬람과학의 재해석과 복원노력을 통해, 이슬람이 인문학뿐만 아니라 과학과 기술분야의 해결책을 제시해준다는 논리개발에 매우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아직도 많은 아랍국가에서는 전통가치의 고수와 서구이론에 바탕한 근대교육의 개념이 상존하면서 보수와 혁신 세력사이에 끊임없는 충돌과 절충을 거듭해가는 과정에 있다.

2.이슬람에서 교육의 개념과 교육철학의 원칙

교육(education)에 해당되는 아랍어 용어는 "tarbiya"이다. 이 용어는 "raba", "yarbu"에서 파생되었는데, 모두 "성장", "증대"라는 의미를 갖는다. 전통 이슬람 사상에서 "tarbiya"의 의미는 "완성과 성숙(kamal)으로 이르는 점진적인 과정"으로 이해된다. 이슬람 교육의 의미는 개인의 다양한 자질과 능력을 이슬람의 가치관에 따라 계발하여 심리적으로, 그리고 지적으로 완성된 인격체를 지향하는 것이다. 나아가 이슬람에서 교육은 인간의 지적정보의 극대화나 기술적 훈련을 넘어 사회와 개인의 도덕적 행위와 틀을 형성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중동 아랍국가들이 공통적으로 채택하고 있는 교육철학의 원칙들을 몇 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가. 유일신 사상
이슬람은 일원론적인 절대적인 유일신 사상을 그 모태로 하기 때문에 교육철학의 가장 중요한 골격은 유일신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신의 유일성에 입각한 개인 교육 및 사회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원칙이다.

나. 지식의 원칙
이슬람 교육에서 지식이야 말로 모든 문화적 진보의 대들보이다. 지식이란 의미의 일름('ilm)은 이슬람의 핵심으로 경전인 코란에서도 두번째로 빈번하게 등장하는 용어이다. 나아가 이슬람 지식은 종교적인 개념과 신앙행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우주적 현상과 물질적 지식 탐구와도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이런 측면에서 이슬람 지식은 다양한 과학영역에서도 유용하게 적용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필요로 한다.

다. 사상의 자유
어떤 다른 종교보다도 이슬람은 다른 사상, 다른 문화에 대해 관용적이고 적극적인 외래과학을 받아들여 자기화하는 역동성을 갖추었다. 이슬람 문명이 번성하던 중세가 바로 가장 적극적으로 바깥문화를 받아들여 지적논의가 활발한 시기였다는 점은 이를 잘 말해준다. 그리스 고전이 번역되고, 자유로운 의사와 지식의 발현을 통해 세계의 모든 지역에서 일어나는 과학적 진보와 철학적 사조가 폭넓게 소개된 시기였다. 사상의 자유를 막는 전통에 대한 맹종과 박제된 지식에 대한 거부는 코란에서도 반복해서 강조되고 있다. (코란 2:170, 7:179, 17:36 6:148).

라. 아말('amal):실천의 원칙
지식과 실천의 연계야말로 이슬람 교육에서 가장 중시되는 원칙이다. 개인과 공동체에 유익한 행위와 지식의 실천이야말로 고양된 인간의 정신을 떠받치는 기둥이라고 본다. 나아가 노동과 지성적 행동은 노예상태에서 인간을 자유롭게 해주고 인간의 명예와 자존을 지켜주는 덕목이라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서 유명한 아랍 철학자 알-가잘리(Al-Ghazali)는 "지식만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수천권의 책을 읽고 깨달음을 얻어도 실천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랴. 유용성이란 지혜와 실천의 합치에서 나온다."는 말을 남겼다.

마. 인간의 평등 원칙
인종적 차별, 직업, 귀천, 신분을 가리지 않는 신 앞에서의 인간의 평등개념과 그 구체적인 실현을 의미한다.

마. 사회성의 원칙
이슬람적인 측면에서 바람직한 인간은 교육을 통한 올바른 가치를 습득하고, 공동체내에서의 개인의 가치를 고양하는 자이다. 즉, 사회를 위해 자신을 양보하고, 공동체의 다른 구성원들을 배려하는 행위를 지향한다. 사회적 권리요구와 사회에 대한 책임의 균형이 바로 정의라고 규정한다.

모든 국가는 오랜 역사적 배경의 산물인 그 나름의 신념체계와 원칙과 철학이 있다. 따라서 인간가치의 보편적 원칙을 제외하고 동양과 서양의 서구의 특정이론에 자국의 교육을 맞추려는 시도는 무의미하고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국가 가치관에 해악을 끼칠 수 있다. 특히 아랍국가들이 서구식 교육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슬람의 가치와 아랍국가들의 역사적 축적을 전혀 고려하지 아니한 서구식 교육제도와 교육철학이 자국국민들에게 주는 충격과 폐해를 이미 수없이 경험해 왔기 때문이다.

4.아랍국가 교육정책의 목표와 현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아랍국가들의 교육정책에서 채택하고 있는 주요 목표는 크게 세 가지이다.

①교육과 훈련을 적절히 배분하여 인재양성에서 사회전반의 균형있는 효율성의 극대화
②다양한 계층에게 동등한 교육기회의 부여
③동기와 유용성을 높히기 위한 교육경험의 자유로운 선택

물론 이 세 요소를 각기 독립적으로 추구하지는 않는다. 상호유기적으로 보완하고 절충함으로서 건전한 교육제도를 마련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아랍국가에서는 재정적인 문제와 교육인구의 과잉, 정책의 시행착오로 교육의 효율성과 동등성, 자유선택이 균형을 이룰 수 없는 상황에 있다. 이런 경우에 일반적으로 효율성 측면에 우선순위를 두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이집트 교육제도는 교육의 동등성과 자유선택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효율성이 간과되었다. 교육인구의 폭발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리비아에서는 학생들에게 교육경험의 자유로운 선택을 인정하지 않았다. 교육의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가들을 체계적이고 인위적으로 양성하기 위해 효율성의 측면에 비중을 두었다. 리비아에서는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훈련된 인원을 필요로 하고, 배출된 인적 자원이 거의 대부분 흡수될 수 있었기 때문에 교육의 자유선택 요소가 무시되었어도 커다란 반발을 야기하지는 않았다. 교육 목표의 세 요소가 비교적 적절히 배분되어 시행된 나라는 사우디아라비아였다. 우선 이 나라는 풍부한 재원과 현대식 교육제도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함으로써 교육정책을 원칙대로 충실히 이행할 수 있었다.

우선 교육 효율성 문제는 미국과 같은 나라에서 우수한 교육자원을 확보함으로써 가능했고, 동등성 문제도 취학전 교육에서 대학교육에 이르기까지 모든 국민에게 국비로 교육의 혜택을 주는 제도로 해결되었다. 물론 대학에서는 높은 교육수준을 달성하기 위해 학생들에게 일정 수준 이상의 학습능력을 요구하고 입학을 제한하였다. 오히려 입학의 제한은 대학을 돈 들이지 않고 단순히 간판이나 따는 곳에서 치열한 연구와 학습을 요구하는 명실상부한 고등교육기관으로 만들어 주었다.

이집트에서는 대학교육이 본격화 된 1960년대 이후 사회주의 이념에 바탕하여 교육 동등성 기준으로 학생들을 모집하였다. 그 결과 대학교육의 질적 저하를 가져와 취업하지 못하는 대량의 대졸 실업자를 양산하게 되었다. 하향 평준화 된 대학 졸업자들은 교육적 자질을 전혀 인정받지 못해 단순한 정부업무를 위해서도 2년이상 기다려야 하는 취업전쟁이 치러야 했다. 물론 이러한 환경은 대학입시에 치열한 경쟁체제가 도입된 후에도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대졸 실업자 문제는 교육정책 입안자들에게 극도의 난제를 던져주며 오늘날 이집트의 주요한 사회 문제로 남아있다.

현재 아랍국가 교육정책 입안자들이 직면하고 있는 또 다른 심각한 고민은 세속교육의 강화와 종교교육의 소홀로 야기되는 문화적 갈등과 보수-혁신세력간의 갈등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모든 근대식 교육과정에 강력한 이슬람 교육을 병행함으로써 이러한 문화적 충격과 전통가치의 변질을 최소화하고 있다. 중-고등학교 교과과정에서 종교과목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은 편이며, 필수적인 과제로 이수를 해야 한다. 이러한 종교교육의 철학은 이슬람이 영적인 훈련과 실천적 행위의 장려를 통해 심리적으로 안정되고 학문적으로 균형 잡힌 인재를 양성할 수 있다는 코란의 가르침에 근거한다.

그러나, 이집트를 포함한 대부분의 아랍국가에서는 고등학교와 대학에서의 종교교육은 매우 미미하고 제한되어 있다. 종교과목이 필수가 아닌 교양과목으로 분류되어 학생들이나 학부모의 관심이 줄어들었다. 특히 아랍 근대교육의 기수라 할 수 있는 이집트에서는 이슬람 교육의 명문인 알-아즈하르 대학교를 제외하고는 종교과목이 정규과목으로 채택되는 경우가 드물 정도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교육 시스템은 전 과정에서의 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해 상당부분 외국의 제도와 자원에 의존한다. 아직도 문맹률이 높고, 교육 여건이 낙후된 사우디에서 자국민 교사와 교수요원들이 양성될 때까지 외국의 교육인적자원과 시스템을 받아들이는 것은 필연적인 선택이다. 동시에 많은 사우디 학생들이 고등교육을 위해 유학을 선택한다. 아랍 국가에서 근대교육이 막 시작된 1959-1961년사이에 당시 아랍국가를 대표하던 이집트의 해외 유학생은 3,739명, 이라크는 1,862명이었다. 1975년에 와서 이집트, 이라크의 해외 유학생은 둔화된 반면, 신흥 사우디 아라비아의 해외 유학생이 급증하였다. 당시 사우디 해외 유학생 숫자는 5,158명에 이르렀으며, 이는 사우디 전체인구의 0.85%에 해당되었다. 같은 기간 이집트와 이라크의 해외유학생 인구대비는 각각 0.1%. 0.2%였던 점을 감안하면, 월등히 많은 숫자이다.

최근 들어 서구식 교육을 받은 아랍의 엘리트 계층이 급속히 성장하고 있지만, 대부분 첨단과학 분야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아직도 이슬람 교육과 인문학은 보수적인 아랍학자들이 방법론과 학맥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아랍국가의 주도적인 교수요원으로는 이집트와 팔레스타인 출신들이다. 이슬람적인 도덕률 속에서 서구와 경쟁하는 지혜를 짜내는 것이야말로 아랍국가 교육정책 입안자들에게 부과된 지상과제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두 마리 토끼는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되지 못하는 길로 달려가고 있다.

결 론

이슬람은 자기 가치에 대한 선험적 우월감으로 인해 힘의 논리에서 도저히 상대할 수 없는 서구와 무모한 도전을 계속하고 있다. 서구는 이러한 이슬람세계의 도전을 테러와 이슬람원리주의의 위협으로 호도하면서 이슬람 세계에 대한 무차별적인 침략과 개입을 정당화하고 있다. 지구촌 도처에서 일어나는 거의 대부분의 국지적 분쟁에 이슬람권이 관련되어 있는 현상이 바로 이것이다. 서구는 이런 현상을 이슬람의 호전성으로 신나게 선전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지만, 민족적 긍지와 종교적 가치를 무참히 유린당한 당사자들의 응어리는 치유할 수 없을 정도로 깊어만 가고 있다. 나아가 패배주의에 머물지 말고 보다 적극적으로 서구의 침탈에 대비해야 한다는 이슬람 국가의 절박한 외침도 최근 들어 강하게 감지되고 있다. 그럼 어떻게? 이에 대한 대답은 한결같이 교육의 중요성이다. 외래문화의 급속한 유입과 심화되고 있는 이념적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서 서구문화는 물론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와 지식의 축적이 매우 중요하다는 인식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곧 바로 교육제도의 변혁을 가져다 주었다. 전통교육의 바탕 위에서 서구의 물질적 혁신과 첨단과학기술, 그리고 서구의 민주주의를 받아들이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고, 시장경제의 세계적 흐름에도 진취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종교적 가치만 가르치던 교육기관은 점차 쇠퇴해 가고 학교교육에서 과학과 기술이 차지하는 비중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현재 아랍국가들의 테크노크라트들의 절대 다수가 이공계 출신으로 외국에서 유학한 자들로 구성되고 있는 점이 아랍국가의 교육정책의 방향을 상징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아랍국가들은 더 이상 자기 주장만하고 자기 가치의 우월성에 빠져있는 문화권이 아니다. 이슬람적 가치야말로 현대적 학문의 흐름과 과학적 변화에 가장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사상틀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된 인식이 교육과정과 교과서 편찬과 적극적으로 반영되고 있다. 그러나 오염된 물질가치 중심의 서구 문화만은 상당한 기간동안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저항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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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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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ad Al-Farsy, 1978, Saudi Arabia:A Case Study in Development, London
Abul Wafa al-Ghuneimi al-Taftazani, 1986, "Islamic Education:Its Principles and Aims" <Muslim Education Quarterly> Vol.4, No.1, Cambridge.

출처; 한국교과서연구재단 교과서 연구 제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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