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개발전략

초등학교 4학년 담임인 한 교사가 방과후에 ‘등고선’이라는 주제의 사회수업에 활용할 자료를 찾는다. 우선 애니메이션 자료를 인터넷 교육사이트에서 뒤졌다. 나폴레옹의 군대가 각기 다른 산을 넘어 목적지에 도착한 뒤 낮은 산을 넘어온 부대와 높은 산을 넘어온 부대가 각기 넘어온 산의 지도를 보며 산의 높이를 등고선을 통해 알아본다는 내용의 플래쉬 애니메이션이다. 그는 이 자료를 수업 때 동기유발 자료로 활용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어 교육용 시디롬(CD-ROM)을 모아놓은 곳으로 간다. 교과별, 주제별, 대상별로 찾기 좋게 정리돼 있다. 그는 사회과 4학년 1학기 ‘지도와 등고선’ 수업에 활용할 수 있는 시디롬 몇개를 골라 보충학습자료로 활용하기로 마음먹는다.

이 사례는 가상의 시나리오가 아니다. 이미 우리 학교에서 벌어지는 모습이다. 초·중등학교에는 컴퓨터 실습실, 교실마다 컴퓨터 및 대형 프로젝션 텔레비전이 갖춰져 있다. 모든 컴퓨터는 인터넷으로 직접 연결돼 있다. 교수-학습환경이 첨단화돼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뒷받침할 우수하고 뛰어난 교육용 콘텐츠의 확보·개발과 보급에 힘을 쏟아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우수한 교육 콘텐츠의 개발과 활용을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들은 많다. 초등학교 박병은 교사는 “교육용 소프트웨어를 활용하기 위해 목록을 찾아보면, 목록에는 많은 것 같은데 막상 수업시간에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구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막상 원하는 자료를 찾았다 하더라도 인터넷 사이트를 수업 전에 검토하거나 시디롬을 돌려본 뒤 활용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온라인 사이트나, 시디롬에 잘못된 정보가 들어 있거나 질적으로 떨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교육 콘텐츠의 개발을 위해 교육부나 시·도교육청, 한국교육학술정보원 등은 많은 돈을 투입했다. 그러나 초·중등 모든 학년, 모든 교과의 모든 콘텐츠를 개발·확보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 교육 콘텐츠 개발·유통을 정부 혼자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얘기다. 민간기업과 협력해 전략적으로 역할을 분담할 때 풍부한 교육 콘텐츠의 확보가 비로소 가능하다. ‘교육용 소프트웨어 품질인증’ ‘교육정보화 종합전시회’ ‘민간 개발 소프트웨어 구입비 지원’ 등도 모두 그런 노력들이라고 할 수 있다.

민·관이 함께 더욱 우수한 교육 콘텐츠 개발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노력은 민간기업 또는 소비자의 어려움을 듣는 일부터 출발해야 한다. 교육 콘텐츠 개발 업체들은 콘텐츠 개발에 투입되는 예산이 하드웨어에 투입하는 예산에 비해 너무 작다고 말한다. 또 공공부문에서 콘텐츠 개발에 예산을 직접 투자하기보다는 ‘학교’라는 시장을 열어주고, 이 ‘시장’에 참여하는 민간업체가 시장원리에 의해 콘텐츠의 질과 양을 높이지 않을 수 없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민간업체의 말을 토대로 볼 때 개발전략은 시장의 활성화, 그리고 민·관의 적절한 역할분담과 협업이라는 두가지로 압축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공공부문에서 교육 콘텐츠 시장의 활성화를 위한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교육 콘텐츠 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지원책 마련이 그것이다. 교육의 효율성과 효과성의 입장에서만 산업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산업적인 측면에서도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산업으로서의 교육 콘텐츠 시장이 활성화되면 경쟁력있고 우수한 콘텐츠가 양산될 것이다. 이를 위해 교육 콘텐츠 개발에 특화된 우수한 업체를 지원하고, 연구개발비를 지원하며, 수준 높은 전문 개발인력을 육성하고, 시장확대를 위한 교육 콘텐츠 수출지원센터를 설립·운영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산더미 과제, 정부 혼자선 역부족

공공부문 큰 방향 제시·에산 배분

민간선 질 높은 콘텐츠 개발·홍보

민간업체들도 교육 콘텐츠의 잠재수요 대상을 학교나 교사로만 한정시키지 말아야 한다. 지난해 만들어진 초·중등학교 교육 콘텐츠 가운데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교사들을 위한 자료제시형 콘텐츠였다. 이는 대부분의 교육 콘텐츠가 유행을 따라 한쪽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있음을 보여준다. 또 이러한 현상은 개발업체가 학교를 제1의 수요자로 보고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교육 콘텐츠 구입예산이 학교를 통해 민간업체로 다시 분배된다는 현실을 감안하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한 학교에서 같은 소트트웨어를 한개 이상 구매하지 않는다는 실정을 감안하면 기업 스스로 시장을 너무 왜소하게 만들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든다. 가령 한 학교의 학생이 500명이라고 가정하면, 학교를 수요자로 본 소프트웨어와 학생을 수요자로 본 소프트웨어의 시장은 500배의 규모 차이가 난다. 물론 제품선택에 까다롭고 신중한 개인이나 학부모를 대상으로 우수한 제품을 만드는 것이 어렵고 힘든 일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상품을 제작하기보다 아무나 만들 수 없는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 교육 콘텐츠 시장에 생명을 불어넣는 길이며, 소비자를 유혹하는 원리일 것이다.

민·관의 적절한 역할분담과 협력도 매우 중요하다. 역할분담 측면에서 공공부문은 교육 콘텐츠 개발의 큰 방향을 제시하고, 적절하게 예산을 배분하며, 신기술을 개발해 이를 민간업체에 이전해 주는 등의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민간부문에서는 교육의 질 개선을 위한 경쟁력 있는 콘텐츠 기획 및 개발, 현장의 목소리를 담은 정책기초자료 제시, 시장의 공정성과 투명성 확보를 위한 경영 등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또 우수한 교육 콘텐츠의 효율적인 보급과 제품의 질을 수요자가 정확히 판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제품정보 공동홍보 방안 마련, 민간업체에서 개발한 콘텐츠를 교육정보 공유체제와 공공도서관에서 유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해당 업체에 비용을 낼 수 있도록 하는 방안 등 교육 수요자가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임진호/한국교육학술정보원 선임연구원 (한겨레 함께하는 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