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지대 강규형 교수는 한 신문에 ‘6·25전쟁, 미국이 개입해 길어졌다고?’라는 칼럼을 실었다(동아일보 2005년 10월5일자). ‘6·25는 통일 전쟁’이라는 동국대 강정구 교수의 발언과 기고문에 대해 현대사 전공 교수가 실증적 자료를 근거로 논박하는 글이었다.

강규형 교수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답게 1946년 미 군정청 여론조사의 조사 항목을 조목조목 거론하며 당시 여론조사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면서 강정구 교수가 당시 여론조사를 ‘자의적으로 혹은 선택적으로’ 해석·인용함으로써 진실을 왜곡했다고 질타했다. 그는 또 강교수의 발언과 기고문과 같은 견해가 ‘전혀 새로운’ 주장이 아니며, 그러한 주장들이 ‘좀 더 높은 수준으로 논의되기를 바랄 뿐’이라고 적고 있다.

6·25전쟁과 관련한 강정구 교수의 주장을 두고 구속 수사를 해야 되느니, 반시장경제적인 그에게 배운 학생에게 기업채용 때 불이익을 주어야 한다느니 하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시점에서 강형규 교수의 칼럼을 보면서 모종의 희망을 걸어본다. 자유민주주의로 대변되는 자본주의 체제의 우월성이 역사적으로 확인된 현실에서 자칫 구시대적 이념 갈등으로 번질 수 있는 사안에 대한 건전한 해결 방식을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강정구 교수의 주장과 그에 적대적인 반응은 언론과 사상, 학문의 자유라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기본 가치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6·25전쟁은 자본주의(시장경제) 체제와 공산주의 체제 간 극단적 대립의 결과로 볼 수 있다. 이 전쟁으로 인해서 수많은 인적·물적 희생이 발생하였고, 그 때문에 체제간 대립과 갈등은 불구대천의 관계로 비화되었다. 경향

그러나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의 역사적 실험은 실패로 끝났고, 남한 체제의 우월성은 확고하게 자리잡게 되었다. 남북간 구원(舊怨)에 따른 반감은 여전하지만 더 이상의 체제 경쟁이나 선전은 무의미하다 할 정도로 현실은 변했다. 변화된 현실은 체제 경쟁과 대립 속에서 유보되었던 사상과 언론, 학문의 자유를 본래적 형태로, 다시 말해서 자유민주주의적 기본 가치로 향유할 수 있는 것으로 되돌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강정구 교수의 주장이 과거적 맥락에서는 수용될 수 없었을지라도 현재적 상황에서는 허용될 수 있는 여지를 여기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의 ‘위험한 주장’은 바로 강규형 교수와 같은 식으로 비판되고 논박되도록 놔두어도 될 때가 된 것이다. 그의 ‘반시장적 주장’도 사상과 언론, 학문의 자유시장에 내놓게 해서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살아남거나 사라지도록 방치해도 무방한 때가 된 것이다.

오늘날 민주주의의 진척과 진보는 정치 영역의 참여의 확대에 그치지 않는다. 이제 민주주의는 발달된 의사소통 수단과 더불어 지식과 정보의 민주화로 확대되고 있다. 이제 소수의 선각자에 의한 옳고 그름의 판단이 모든 것을 규정하는 시대를 넘어섰다. 강정구 교수의 주장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판단 역시 마찬가지다. 만약 보통 사람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강규형 교수처럼 그것을 더 많은 사람들이 갖게 함으로써 민주적으로 판단하게 하는 지식의 민주화가 절실하게 요구되는 사회, 그야말로 ‘지식, 정보, 사상, 학문’의 시장이 자유롭게 열리는 사회가 우리가 그토록 바랐던 사회다. 어느 쪽이든 지식과 정보, 나아가 진리를 독점하려 해서는 안된다.

〈최윤재 서울디지털대학 문창학부 교수·한국논리논술연구소장 klogic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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