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과천에서 유기농 야채가게를 하는 이치열(42)씨. 그가 자신의 아이를 대안학교로 옮긴 건 아이가 일반학교에서 행복해하지 않았던 탓이다. 학교는 경쟁을 가르치고 아이는 못견뎌했다. 초등 3학년을 마지막으로 무지개라는 대안학교로 옮겼고, 아이는 웃음을 되찾았다.

이 딸아이가 올해, 일반학교 식으로 말하면 중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됐다. 이씨가 내로라하는 기업의 이사직까지 그만두고 ‘더불어 가는 배움터 길’(길 학교)이라는 대안 중등학교 설립에 참여하게 된 이유다. 이씨의 아이는 지난 2일 개교한 이 학교에 ‘작은나무’(중1) 과정으로 입학했다.

입시에서 자유로운 교육을 꿈꾸는 ‘길 학교’에서 아이들은 스스로 학습계획을 짜고 실행하고 평가한다. 길 학교의 교육과정은 국가가 짜놓은 현행 교육과정과는 아주 판이하다. 일반 학교가 국어, 영어, 수학 식으로 교육 내용을 분절적으로 나누는 반면 이 학교는 통합(교과)적인 학습·교육 프로그램으로 운영된다.

이 학교 설립을 준비하면서 이씨는 대안학교에도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부가 대안학교를 지원한다는 소식이 그는 달갑지만은 않다. 정부가 대안학교를 지원하고자 제도화에 나서면서 자칫 인가를 위한 기준이 대안학교의 정체성을 흔들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전국 40여 대안학교들이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시·도교육청이 인가를 하고 일반 정규학교와 똑같이 학력 인정과 재정 지원을 하기 위해 대안학교 설립·운영 규정 시안을 손질하고 있다.

쟁점은 크게 △교육과정 △대안학교 인가 심의틀 △교사 자격 기준 △면적 기준 등이다. 시안은 인가 기준으로 교육과정의 50% 이상을 국·영·수 등 국민공통 기본교과로 가르치도록 했다. 대안교육연대의 김경옥 사무국장은 “국가가 대안학교의 교육과정을 무엇무엇이라고 정하는 것 자체가 대안적 교육을 저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덴마크에선 정부가 대안학교를 지원하지만 교육과정에 대한 기준 자체가 없다”며 학교를 만들려는 주체가 있고, 그 학교의 교육 내용을 개방이사진 같은 집단이 검증하면 지원을 해준다고 말했다.

대안학교인지 아닌지를 가려 인가하는 심의틀도 대안교육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대안교육 운동가들은 보고 있다. 시안은 시·도교육청이 대안학교설립운영위(위원장 부교육감)를 통해 심의하고, 위원회의 과반은 대안교육 전문가로 하고 나머지는 교육감이 위촉하도록 했다. 이치열씨는 “교육감이 절반 가까운 (심의)위원을 위촉할 경우 본래 취지가 흐려질 수 있다”며 “지역사회의 민주적 시민단체와 교육·교원단체 대표자들이 심의위원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다른 입시학교가 대안학교라는 이름으로 지원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섞인다. 대안학교는 학생을 전국에서 선발한다. 국영수 등 국민공통 교과 50% 이상과 학교 면적 기준을 맞추면, 대안교육에 대한 철학적 고민과 교육 내용이 없는 학교도 ‘정부 규격’에 맞게 들어올 가능성도 있다. 소규모 사립 ‘귀족학교’가 생겨날 수 있다는 얘기다.

때문에 대안학교들 사이에선 정부 기준을 받느니 차라리 인가를 안 받겠다는 학교들도 나오고 있다. 충북 제천의 간디청소년학교 교장 양희창(대안교육연대 운영위원장)씨는 “이 기준대로라면 우리 학교 교육철학을 지키기 어렵다. 당분간 미인가로 남겠다”고 말했다. 그는 “원론적으로 (정부의 대안학교 제도화에) 찬성하지만, 학교를 입시교육의 장으로 인식하는 우리나라 교육 현실에서 아무리 좋은 규정을 만들어도 악용될 소지가 크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대안학교 지원을 위해서는 학교 쪽도 기준을 충족해줘야 한다는 자세다. 교육부 관계자는 “대안학교 가운데는 이런 최소 기준도 규제로 보는 곳이 있다”며 이 경우 미인가로 남을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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