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논술가이드]이미지 정치
준수한 외모의 케네디가 미국 대통령이 된 데에는 경쟁자와의 TV토론이 한몫을 했다. 그는 이를 통해 국민들에게 지도자로서의 ‘강력한 이미지’를 심어주었던 것이다. 벌써 40여 년 전의 일이다. 물론 순전히 미디어가 만들어낸 이미지 때문에 케네디가 미국의 대통령으로 선출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많은 미국인들은 케네디를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 중의 한 명이라고 보고 있다.
요즘 우리나라 정치 현실에서도 이미지가 넘쳐나고 있다. 정치인들이 과거의 잘못을 반성한다고 성당과 사찰, 교회를 하루 동안에 돌아가며 회개와 기도, 108배를 하거나 탄핵소추로 등을 돌린 민심을 다잡기 위해 3보1배 퍼포먼스를 하고, 노인 폄훼 발언을 주워담기 위해 가는 곳마다 노인들에게 넙죽 큰절을 한다. 이런 모습은 매스컴을 통해 철저히 이미지화되어 국민들의 감성을 자극한다.
사람을 설득하는 데는 이성적인 접근뿐 아니라 감성적인 수단도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이미지를 동원해서 지지를 얻는 행위도 중요한 선거방법이라 할 수 있다. 정책과 정견 등 미래적 비전을 합리적으로 설득하고 이를 바탕으로 감성적으로 호소한다면 이미지 동원은 하등 흠잡을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작금의 이미지 범람은 정당이나 정치인의 능력과 과거 경력, 정책적 비전 등 합리적 선택요소를 압도하고 있다. 그것은 망국적 병폐라고 하는 지역주의와 교묘하게 연결되기도 하고, 권위주의 시대의 망령을 되살리는 퇴행주의마저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 마디로 하면 ‘죽은 제갈량’이 위세를 떨치고 있는 셈이다. 한 동안 잠잠하던 지역주의와 역사적 퇴행주의가 이미지를 수단으로 하여 미래를 좌지우지하는 형국이다.
우리는 지난 30여 년 동안 경제적으로 압축성장을 이루어냈지만, 아직까지도 정치·사회적 성장을 압축해내지 못하고 있다. 지난 10여 년은 그런 압축성장을 위한 과정이었고 지금도 실천해야 하는 시대적 과제임에는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지에 의한 감성정치의 범람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불분명해지고 있다.
서부영화에서 총잡이의 대명사로 나오는 존 웨인이 실제로 총잡이일 수는 없다. 그는 그저 영화라는 이미지 수단에 의해 만들어진 가짜 총잡이일 뿐이다. 그래도 영화를 보는 순간만큼은 우리는 그를 실제 총잡이로 생각한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나서는 더 이상 그를 총잡이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아니 건전한 상식을 가지고 있다면 당연히 그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혹 존 웨인을 현실에서도 총잡이로 간주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사람은 아직 어리거나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일 것이다.
미국에서 40여 년 전에 시작된 이미지 정치가 이번 총선을 통해 우리 정치에서도 본격 도입되고 있다. 감성정치, 이미지정치 그 자체가 마냥 그른 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정책과 정견이 빠진 이미지 과잉은 우리를 오도할 수 있다. 자칫하면 국민 전체가 서부영화의 총잡이를 현실의 총잡이로 오인하는 우(愚)를 범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총선은 정치와 이미지의 관계, 그리고 미디어의 역할에 대해 깊이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있다.
경향〈최윤재/한국논리논술연구소장(klogica@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