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명상'을 사전적 의미 이상을 모르지만,

매주 화, 목요일 종례, 청소 후에 30분 간 내 반 아이들 (ㅋㅋ 어쩌다보니 3학년 다른 반 아이들도 원정 온다. 담임의 요구, 우리 반 교실에 와서 우리 반 규칙을 어길 경우 등) 과 하는 모종의 지적, 정서적 활동을 나와 우리반 아이들은 명상이라고 부릅니다.

 

1. 학급 규칙은 학생들과 같이 정합니다. 스스로 다짐한 규칙이란 것을 깨닫도록..

2. 규칙을 어기면 명상을 합니다. (담임 필요에 의해 새로운 규칙을 절대로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

3. 명상은 담임과 항상 함께 합니다. (담임도 같은 종류의 활동을 합니다. 그래서 담임이 같이 할 수 없는 날은 그 다음날로 명상이 연기됩니다.)

4. 자아 성찰에 도움이 되는 그 어떤 느린 활동도 명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5. 요즘은 먼지가 많고 바람이 드세, 봄 같지 않아 교실에서만 하고 있습니다만, 날씨가 좋으면 되도록 교실밖에서 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6. 올해 교실에서 한 명상은 '나는 누구인가',  '30년 후 나에게 편지쓰기', '낙서 명상', 몇 가지 집단 상담 기법에 포함되는 활동 팁 등입니다.

7. 학급 규칙 위반자들이 적시되는 '명상 기록장'은 실장, 부실장, 바른생활 부장이 기록할 수 있으며, 논란이 있는 경우는 세 사람이 논의하여 실장이 최종 결정합니다.

***

다음은 몇년 전교육희망에 올렸던 '명상'에 관한 짧은 글입니다.

 

모둠노트에 남은 학급 명상

 

  3월초에 우리 반 아이들과 의논해서 학급 규칙을 정했다.

1. 고운말 쓰기, 어기면 엉덩이로 글자쓰기 + 명상 1일

2. 머리카락을 청결하게 유지하기, 어기면 담임샘이 샴푸해주고 + 명상 1일

3. 친구의 몸이나 마음을 몹시 아프게 하지 않기, 어기면 진심으로 사과하고 + 명상 3일 

……

  몇 주 전 우리 반에서 눈동자가 가장 맑은 재완이가 비듬 때문에, 청소가 끝난 교실에서 30분 동안 책상위에서 아빠 다리로 명상을 했다. 명상이 끝난 후 나는 비누로 머리를 감겨주었다. 다음날 그는 셔츠도 깨끗하게 세탁하고 다림질해서 입고 왔다. 옆 짝꿍 지혜가 재완이를 보고 누나같이 행복하게 웃는다.

  오늘도 목소리가 한 옥타브 높고 빠른 이쁜이 지나, 학급 서기로서 부끄러운 예진이, 세련된 두발 스타일을 자랑하고 실장 선거에서 아슬아슬하게 떨어진 종효, 명상의 단골 손님 한솔이, 웃음이 함박꽃 같은 함유진, 학급규칙위반은 아닌데 영어 선생님이 명상 노트에 적어라 하셔서 조금 억울하게 참여한 호혁이, 이들이 자기 책상위에서 아빠다리를 하고 명상을 하고 갔다.

  명상에는 종류도 많다.  자기 책상위에 올라가서 하는 ‘아빠다리 명상’, 좀 힘이 드는 ‘걷기 명상’, 창밖에 내리는 봄비에 젖어드는 ‘봄비 명상’, 특별실동과 테니스장 사이에 피어있는 이름 있는 꽃과 이름모를 야생화과 대화를 하는 ‘꽃보기 명상'… 담임이 함께 하지 않으면 아이들은 외로워서 제대로 명상을 못한다.  담임이 곁에 같이 있을 수 없는 날은 명상을 쉰다. 명상일지는 부실장이 관리한다.

  우리반은 모둠일기도 쓴다. 실부서회(실장, 부실장, 서기, 회계가 이룬 모둠의 별명), 게으른 부(학습부의 별명), 오리궁뎅이자식(바른생활부의 별명) 등에서 집에 가서 모둠 일기를 쓴다. 모둠일기는 모둠원들이 돌아가면서 반드시 집에 가서 써서 다음날 아침 모둠장에게 ,모둠장은 다시 실장에게 제출하게 되어 있다. 담임은 꼬리글을 달아서 오후에 다시 실장에게 준다.

  올해 2학년 1반 모둠일기에 벌써 명상에 대한 이야기가 올라온다.

******

2007년 4월 5일 목요일 함유진

걷기 명상을 했다. 단지 걸었을 뿐인데 다리가 너무 아팠다. 지나랑, (민)지혜랑 까까랑 떡볶이를 사먹고 사탕 뽑기를 하고 집에 갔는데 눈높이 선생님이 오셨다. (하략)

*******

2007년 4월 9일 월요일 천호혁

오늘은 꽃 보는 명상을 했다. 난 청소를 힘겹게 마치고 학교 화단으로 가서 튤립 한송이를 나의 명상 상대로 했다. 나의 튤립색은 빨강+노랑이 섞인 아주 작은 튤립이었다. 명상을 시작하고 조용히 튤립을 바라보니 바람에 튤립이 흔들거렸다. 바람이 그치니 튤립은 다시 가만히 서서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튤립 안을 들여다보니 이상한 것을 보였다. 튤립 속에 애벌레가 있는게 아닌가! 난 애벌레를 바로 튤립 속에서 빼내어 멀리 던져 버렸다. 그리고 또 무슨 이상은 없는지 살펴보았다. 다행이 더 이상은 이상이 없는 것 같았다. (하략)

*******

2007년 4월 16일 월요일 박한솔

오늘 명상시간에 봄비를 보면서 명상을 했다. 선생님께서는 비를 보니까 친구들과 선생님을 가르치던 선생님들이 생각난다고 하셨다. 나도 초등학교 때 선생님들과 친구들 생각이 막 났다. 초등학교 때 무서운 선생님과 같이 지낸 기억이 잘 났다. 지금 생각해도 무섭다. 난 몇일 전 “지금 만나러 갑니다”라는 영화를 비디오로 본 적이 있다. 난 이 영화를 보고 울어버렸다. ㅜㅜ  나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영화는 그렇게 많지 않다. 난 야영 때나 수학여행　때 촛불 의식을 해도 울지 않았던 사람이다. 비가 와서 이 영화가 생각이 났는데 정말 분위기 있고, 또 울컥했다. 정말 이번 명상은 빨리 갔다.(하략)

*******

담임의 명상

…

며칠 전 학급 규칙을 어긴 아이들과 함께 야외 명상을 했다

30분 동안 특별실동 뒷 편에 아무렇게나 피어있는 꽃을 말없이 보는 것이었다.

나는 독백처럼 그냥 누굴 미워하고, 어제 그 일이 후회스럽고, 아이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 등 쓸데없는 말만 했다. 두 뼘 크기의 키 작은 나무는 아무 말이 없다. 그냥 비식 웃고 있다. 두 개의 가지를 가지고 있는데, 하나의 가지는 바싹 말라 죽어 버렸고, 나머지 하나는 살아 아직 몇 개의 꽃송이를 아직도 피우고 웃고 있다.

죽은 한쪽을 보면서도 저렇게 웃고 있다니…

여전히 말이 통하지 않은 저 꽃을 보면서 나도 내 속에서 죽어버린 것들을 보며 웃을 수 있을까? 정말 그럴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