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훈 교수의 발언에 대하여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과거사 청산에 대한 기본적인 입장은 물론이려니와 ‘종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그의 언급은 순식간에 일파만파의 논란으로 번져가고 있다.
잠시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한편으로 억울한 면도 있을 것이다. 내 생각에 그의 가장 억울한 측면은 총괄적 의미의 역사철학 뿐만 아니라 그의 전공인 ‘근대 경제사’의 물질적 축적 과정에 대해서도 전혀 ‘깊이 있는’ 대화를 할 수 없는 생방송 토론에 참여하였다는 점일 것이다. 이는 맞은편의 안병욱 교수에게도 해당한다.
게다가 결정적인 것은 이 교수가 월간조선의 우종창과 나란히 앉아 논전을 벌였다는 점이다. 사실 이영훈 교수와 우종창 기자의 거리는 맞은 편의 안병욱 교수와의 거리보다도 훨씬 더 멀고 또한 도저히 합치될 수 없는 것이었는데 ‘불행히도’ 그는 어떤 점에서 우종창 기자의 ‘섬찟한’ 주장에 논리적 근거를 제시하는 역할까지 맡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영훈 교수를 심정적으로 이해해 준다면, 여기까지가 전부다. 더욱이 이 두 가지에 대해서도 이교수가 ‘생방송 토론’이 어떻게 진행되며 누가 패널로 참여하는가를 잘 알고 참여했을 터이므로 완전한 양해 사항은 아니다. ‘일제 시대’를 하나의 연구 대상, 즉 그의 표현대로 ‘선악’을 배제한 상태의 객관적 사실로 꼼꼼히 대해야 한다는 ‘연구자’의 입장 정도가 남을 뿐이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그 ‘객관적 사실’에 대하여 이 교수는 심각한 오해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종군 위안부’ 발언은 유감을 넘어 개탄스러운 바가 있는데 미군 기지촌이나 대도시의 ‘매매춘’ 문화와 동일선상에서 검토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다. 이 세가지 사안은 서로 다른 다른 발생 계통과 고착화 과정을 갖고 있다.
그러나 내 생각에 이 교수의 발언에 있어 본질적인 문제점은 바로 ‘도덕적 고백과 성찰’이다. 이는 소중한 지적이기는 하다. 특히 정치 언어의 범람으로 인하여 사람살이의 모든 대소사를 ‘노무현과 박근혜’라는 깔대기에 우겨넣어 거의 망발에 가까운 과잉된 정치 언어를 쏟아내고 있는 있는 오늘의 세태를 돌아볼 때 ‘도덕적 성찰’은 새로운 스타트라인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지금 당장의 정치 현안이든 과거의 역사적 상처든, 순진무구한 진공 상태의 ‘자기 고백과 성찰’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90년대 초의 ‘내 탓이오’이라는 도덕 운동이 ‘네 탓이오’로 끝난 이유가 그 때문이다. 덮어놓고 ‘내 탓이오’ 할 수는 없는 것이며 ‘자기 고백과 성찰’이 가능하려면 해당 사안에 대한 책임의 범주와 한계가 명확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 그것이 모조리 현대사의 ‘지하 서고’에 묻혀 있으므로 제대로 밝혀보자는 게 아닌가.
모범으로 든 일본의 사례도 전후 맥락으로 보면 좋은 예가 아닌듯
이 교수가 ‘본보기’로 든 일본의 사례도 그 전후 맥락을 이해한다면 반드시 좋은 예가 될 수는 없다. 이교수는 토론회에서 \"일본군에 종사할 때 그 업소를 드나들었다고 하는 자기고백과 여러 회고록들이 있다. 일본 전체가 반성하는 차원에서 전쟁 범죄를 소화하고 극복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아마 어떤 일본인은 전쟁에 대한 반성을 내면 깊이 하고 있을지 모른다. 때때로 우리는 지난 날의 과오를 반성하기 위하여 한반도를 찾는 늙은 일본인에 관한 기사를 보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 문제는 어떤 ‘착한’ 사람들의 개별적인 고백과 성찰이 아니다. 게다가 이 교수는 꽤 많은 수의 자기 고백과 회고록을 근거로 하여 ‘일본 전체가 반성하는 차원에서 전쟁 범죄를 소화하고 극복하는 과정’이라고 썼는데, 가라타니 고진의 <윤리 21>에 따르면, 이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도덕적 세레모니에 불과한 것이다.
전쟁이 끝난 후 최초의 수상이 된 히가시 쿠니나루히코는 수상으로서의 첫 라디오 방송에서 그 유명한 ‘일억 총참회’를 주창했다. 그것은 전쟁의 책임을 일부 지도자(특히 일왕)의 탓으로 돌릴 게 아니라 일본인 전체가 평등하게 그 책임을 나눠지고 반성하자는 것이다. ‘일억 총참회’를 계기로 수많은 자기 반성과 착잡한 회고가 뒤따랐음을 두말 할 것도 없다.
그러나 전쟁에 대한 최고 책임자, 곧 일왕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는 상태에서 어떻게 일본인 전체가 책임을 골고루 나눠질 수 있는가. 게다가 ‘상부의 명령이었지만 참으로 죄송하다’는 식의 고백이 참다운 성찰의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몇몇 착한 일본인의 속 깊은 반성이야 아름다운 경우지만, 결국 ‘일억 총참회’ 운동은 실질적으로 책임지고 참회해야할 단 한 사람을 보호하고 구출하기 위한 도덕의 이벤트에 불과한 것이다. 그는 바로 일왕 히로히토이다.
그런 이유로 고진은 개개인이 과거를 성찰하고 깊이 반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얼핏 그럴 듯하고 올바른 것처럼 보이지만 잘못된 것이며 최고 책임자의 책임을 물은 뒤에야 개개인의 정치적, 혹은 도덕적 책임이 따른다고 말한다. 또한 일본인에게 과거에 대한 반성이 부족하다고 한다면, 그것은 일왕 대신 자신들이 책임을 지는 것이 어딘가 모르게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 말하고 있다.
이 점을 이교수는 성찰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일제 시대를 비롯하여 근현대사의 왜곡된 이해와 깊은 상처들에 대하여 저마다 도덕적 반성을 한다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그럴 듯하고 꽤 품위있는 제안으로 들리지만 눈물의 세레모니로 그치고 말 것이다.
수난과 상처로 얼룩진 현대사의 대평원에서 저질러진 만행과 학살들, 그리고 다락방과 지하실에 벌어졌던 끔찍한 인권 유린과 탄압에 대하여 지나치게 순진무구한 ‘도덕적 성찰과 자기 고백’은 현실적으로 발생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역사철학적으로도 수많은 본질적 국면에 대하여 눈물로 가로막는 역기능을 할 뿐이다.
그것은 대전제, 곧 지난 역사 속에서 단순한 ‘가담자’가 아니라 그 행위의 결정과 집행에 있어 책임있는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이 누구였으며 어떠한 행동 동기가 그러한 상처를 유발하였는가를 깊이 ‘성찰’할 때 비로소 그와 관련되었던 개인의 반성이 따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친다면 ‘개인의 반성’은 필요하겠지만 반드시 강요할 이유는 없을 것이며 어떤 점에서는 굳이 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이미 책임있는 자리에 누가 있었으며 어떤 행동 동기와 과정으로 상처가 났는가에 대하여 제대로 밝혀낸다면 그 다음은 ‘단순 가담자’와 더불어 화해의 미래로 가는 일밖에 남지 않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