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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학교 아닌 학교 혁신하기
혁신학교 아닌 학교 혁신하기
지항수
목포의 초등학교 교사. 공립학교에서 교육을 살리는 길을 모색하고 있으며, 사람과 사람을 잇는 것을 역할로 삼아 살아가고 있다. 막 30대에 접어든, 꿈 많은 청년이기도 하다.
메일 : sumsame@hanmail.net
페이스북 : http://www.facebook.com/sumsame
블로그 : http://blog.daum.net/sumsame
환상이 무너지다
‘네모난 책가방에 네모난 책들을 넣고, 네모난 버스를 타고 네모난 건물 지나, 네모난 학교에 들어서면 또 네모난 교실. 네모난 칠판과 책상들’ 학생의 입장에서 쓰인 이 노랫말은 사실 교사에게도 똑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딱딱하기 그지없고, 영원히 변치 않을 것만 같은 공간. 바로 학교다.
내가 학생이었을 때,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학생과는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고 여간해서는 무표정이면서, 왜 교실 밖에서 다른 선생님들과는 웃으면서 대화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교사가 된 지금, 선생님들이 왜 그랬는지 알 것 같다. 학생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행복하지 않았고, 다른 선생님과 이야기할 때는 교육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대학교 때까지 제주도 토박이였던 내가 전라남도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하기까지의 사연은 제법 길지만 간단히 줄이자면 ‘시골에서 여유를 즐기며, 혼자만의 시간을 위해서’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 낭만적인 생각을 가진 내가 마주한 학교의 현실은 '차가운 웃음'이었다.
교문을 나서면 바다가 반기는 내 첫 학교는 참 아름다운 곳이었다. 풍경도, 사람도. 그러나 신규교사가 대부분이었던 작은 학교의 일상은 그렇지 않았다. 큰 학교라면 부장이 맡을 업무도 초임교사가 맡아야 했고, 아이들과의 즐겁고 여유로운 수업도 꿈에서나 가능했다. 어느덧 나는 학창 시절, 내가 경멸했던 선생님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일 년이 흘러 입대를 했는데, 다시 그리 살아가기는 싫었다. 자는 시간을 아껴 독서와 사색을 하고, 심지어 휴가 때 배움을 찾아 여기저기를 떠돌기도 했다. 덕분에 제대하고 복직한 작은 학교에서도 여전히 쉽진 않았지만, 조금씩 교실에서 행복을 느끼는 시간이 늘어 갔다. 그 후 목포로 학교를 옮기며 처음으로 같은 학년에 동료교사들이 있는 중간 규모 학교에 근무하게 되었는데, 업무량이 많이 줄어들어 아이들에게 집중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아직 채워지지 않은 무엇이 있었다.
학교에서 변화를 꾀하다
그 해 여름, 연수를 받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활동을 같은 학년 선생님들과 함께 하면 정말 좋을 텐데. 그래, 다음 해에 함께할 선생님을 찾아보자!’ 개학 후 막상 다른 선생님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한참을 망설이다 한 선생님과 우연히 만났을 때 조심스럽게 생각을 전했더니 의외로 무척 반기셔서 기분이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염려되는 바가 있어 긴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교육에 관심 있는 선생님과 그렇지 않은 선생님으로 나누고 있진 않을까? 밖으로 드러내지 않을 뿐 다들 교육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까?'
모순된 이야기지만 학교에서 교사끼리 대화할 때 '교육'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것은 불문율이란 분위기가 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아이들로 인한 어려움을 나눌 뿐, 자신의 교육철학이나 방식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는 드물다. 교실이라는 작은 섬에서 고립된 채 외로운 싸움을 하며, 심신이 모두 소진되어 방학만 기다리는 것이 교사들의 일반적인 삶이다. 나 역시 연수에 참여할 때나 교육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뿐, 학교에서는 깊이 이야기해본 적이 없었다. 정말 운이 좋게도 매년 동료교사 간의 사이가 좋았음에도 말이다. ‘함께 만들어가는 교육’ 그래, 그것이 바로 내가 부족함을 느끼던 부분이었다.
원하는 바를 실천으로 옮겨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 안에서 교사가 함께 교육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내는 것이 첫 단추라고 판단했다. 혼자 '혁신학교 아닌 학교 혁신하기'라고 프로젝트 이름을 붙이고 한 번 해보자며 의욕을 다졌다. '변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을 믿는 것'이라 전제를 세웠지만, 어리고 경력 짧은 내가 선생님들께 함께하자고 말하기는 무척 어려웠다. 때마침 20∼30대 선생님들이 모인 술자리가 있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보았더니 우려와 달리 선생님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많은 선생님들이 '대화'에 갈증을 내비쳤고, 기회가 생긴다면 참여하겠다고 했다.
자신감을 얻은 나는 선생님 한 분씩 찾아뵙기로 계획을 세웠다. 교실에 혼자 계신 선생님을 찾아가 이야기를 건네는 일은 떨리고 어색한 일이었다. 심호흡을 하고서 문을 두드리고 웃으며 인사하면, 문 뒤로 보이는 선생님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이런 질문을 받았다. “어쩐 일이세요?” “대화의 장을 마련하고 싶어요. 누구든 편하게 교육에 대한 생각을 마음껏 말하는 그런 기회를요.” 그렇게 한 달에 걸쳐 경력이 적든 많든, 초등교사든 그렇지 않든 가리지 않고 교내 모든 선생님과 생각을 공유했다.
선생님들이 모여 어떻게 모임을 꾸려나갈지 의논하기로 한 날, 약속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무도 오지 않았다. ‘혼자 설레발 쳤구나’ 싶었다. 그 때 한 분이 들어오셨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수가 늘었다. 그 날 비로소 내 꿈이 혼자만의 것이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고, 더욱 용기가 생겼다.
일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어느새 일 년이 지났다. 처음에는 학교가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느낌에 정말 즐거웠고, 새로운 문화가 생길 것이란 기대에 부풀었다. 그러나 일상의 벽은 높고 단단했다. 자신이 바쁜데 교육적 대화에 관심을 갖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난 해, 우리학교가 연구학교로 지정되어 선생님들에게서 여유가 사라졌다. 학교 분위기는 점점 경직되어 갔고 모임도 중단되었다. 답답한 마음에 전체 회의시간에 일어나 의사결정의 구조적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지만, 돌아온 반응은 도리어 선생님들에게 소통의 어려움을 각인시켰다. 무력감에 학교를 옮길까 고민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피하는 것일 뿐, 변하는 것은 없는 것이다. 마음을 바꾸니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꾸준히 다른 사람과 마음을 나누는 것이었다.
힘들어하는 선생님에게 먼저 다가가 안부를 묻고, 그와 함께 아파했다. 교장선생님과 교감선생님에게 먼저 찾아가 그분들의 생각을 들었다. 긴 시간 동안 마음을 비우고 경청했다. 모든 사람에게 활짝 웃으며 인사했다. 침묵이 흐를 때 먼저 말을 꺼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했다.
어느 순간부터 일상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지난 연말, 교육과정 반성회 전날에 마련한 교감선생님과 젊은 교사와의 저녁식사 자리에서는 예전과는 다르게 깊숙한 대화가 이루어졌다. 가슴 속에 담아둔 말을 밖으로 꺼낸 선생님은 불만이 완화됐고, 교감선생님도 선생님들의 사정을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다음 날 반성회는 조용했던 평소 회의와는 달리 많은 대화가 오갔다.
또 하나의 변화는 수업이다. 잘 짜인 공개용 수업에 지친 선생님들이 모여 어떻게 하면 평소에 수업을 잘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 해보자’며, 이번 학기부터는 믿을 수 있는 선생님에게 일상의 수업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어 함께 성찰하기로 했다. 교무부장이 혼자 만들던 학교교육과정을 교감선생님과 부장들, 그리고 자원한 선생님들이 모여 의논하였다. 비록 서로의 생각은 달랐지만, 지혜를 모아 좀 더 발전한 학교의 모습을 그릴 수 있었다.
변화의 시작, 만남
삶은 정책이나 제도에 따라 변하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에 세워진 혁신학교에서 힘들어하는 선생님을 봐도, 그것들이 삶의 질적인 변화를 곧장 끌어내지는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혁신을 꿈꾸지만, 혁신은 일상 앞에 무너진다. 세상의 큰 흐름이 바뀌어도 자신의 일상이 변하지 않는다면 가장 중요한 자신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결국 변화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일상부터 바뀌어야 한다. 변화를 이끌어가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내 경우에도 그랬지만, 함께할 누군가는 반드시 곁에 있다. 다만 누군가는 먼저 시작해야 한다.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함께하면 될 것이고, 없다면 먼저 말을 꺼내면 된다.
변화는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학교를 변화시키고 싶다면, 교사라면 누구나 교육에 대해 고민할 것이라는 믿음을 안고, 곁에서 힘들어하는 선생님을 찾아가 커피 한 잔 건네며 “요즘 힘드시죠?”라며 묻는 것은 어떨까. 나는 그것만으로도 변화가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 혁신학교_아닌_학교_혁신하기(배포용).pdf (320.3KB) (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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