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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컴지기 칼럼
교육의 주체가 그들의 언어로 미래교육을 상상하는 이야기
우리사회 독특한 문화현상, 교과서 문제
우리사회 독특한 문화현상, 교과서 문제
친일 독재 미화 역사 교과서로 국민들의 질타를 받던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를 교재로 선정한 학교가 0%대라고 한다. 전국민의 관심사로 떠오른 역사 교과서 문제는 오늘 한국 사회의 대단히 독특한 문화현상이다. 상식을 가진 국민의 눈으로 보기에 논쟁거리조차 되지 않는 이런 문제를 가지고 1년 가까이 소모한다는 것, 그 속에 얽히고설킨 이해 관계는 과연 무엇일까?
역사는 객관적 사실인가, 후세 인간의 해석인가? 이 문제는 답하기 곤란한 영역이다. 객관적 실재는 늘 인간의 해석을 통하여 인식되는 절차를 밟기 때문이다. 따라서 같은 실재를 보고도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당연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기록된 다양한 텍스트가 후대에 전해진다. 그래서 사관이란 말이 생겼다. 역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관점이 바로 사관이다.
어렸을 때 보니 일제강점기 때 학교를 다녔던 할아버지가 일본말을 아주 유창하게 한다. 일본말을 배우고 싶지만 이해가 더딘 어떤 사람은 이 할아버지를 보고 '일제시대 때 교육을 받아서 일본말을 잘하는구나' 이렇게 생각할수도 있다. 넓게 트인 신작로, 근대화된 공장들, 항만 설비 등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은 '이것들이 모두 일제시대를 경과하면서 만들어졌지. 결과적으로 우리나라 발전을 앞당겼을지도 몰라'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실제 이렇게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으며, 이것의 타당성을 연구한 학자들도 있었다. 이른바 '식민지근대화론'이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나라가 근대화되는데 일제강점기가 역할을 했다는 관점이다. 이것은 역사를 대하는 하나의 관점이므로 사관이다. 이 사관에서는 일제가 식민지 수탈을 위해 길을 넓게 뚫고, 철도를 깔고, 공장을 지었으며, 각종 물자를 자기들 나라로 빠르게 운송하기 위해 항만 설비를 갖추었다는 것을 애써 감춘다.
지난 날, 식민지근대화론은 '학계의 소수 사관' 정도로 머물러 있었다. 이것이라면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큰 문제랄 것이 없다. 무슨 생각을 하든, 어떤 주장을 하든 그것은 자유이니까 말이다. 오히려 활발한 토론의 과정을 거치며 인정받는 것들과 그렇지 못한 것들이 드러나고 생성과 소멸의 거듭할 것이다. 본시 학문이란 그런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논쟁 중인 학문의 영역을 벗어나 '일반화'되는 것에 있다. 발단을 보면 이렇다. 대통령께서 '한국사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한 마디 하자 어느 결에 한국사는 수학능력시험에서 필수 과목이 되었다. 뒤 이어 교학사 교과서 문제가 터졌다. 오류와 왜곡이 몇 백 곳이나 될 정도로 교재로서 가치를 의심받았고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는 표현이 많아서 국민적 저항을 불러왔다.
더 심각한 것은 교육부의 입장이다. 유례없는 재검정 기회를 제공하면서 교학사 교과서 구하기에 나선 것이다. 이미 검정을 통과한 다른 일곱 종의 교과서도 재수정 지시를 내렸다.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재수정에도 불구하고 교학사 교과서에는 오류가 넘쳐났다. 그런데, 일선학교의 선정과정 일정에 밀려 결국 선정 작업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전국에서 십여곳이 교학사 교과서를 선택했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외압이 있었다, 절차를 어겼다는 말이 나왔다. 해당 학교의 교사, 학생, 학부모, 동문들, 시민들의 거센 저항이 있었다. 결국 한 두 곳을 제외한 모든 학교에서 선정을 철회하였다. 이것은 진보진영에서 계획적으로 주도한 일도 아니요, 전교조가 사주한 일도 아닌, 그야말로 해당학교와 관련된 구성원들이 그 교과서로는 배울 수 없다는 의사를 표현한 것이다.
교과서 선정의 절차를 투명하게 하기 위해 해당 교과 교사들이 3배수를 추천하여 학교운영위원회에서 최종 심의하게 만든 현행 '단위학교 교과용 도서 선정 규정'이 이번에 한몫을 했다. 애초 이러한 절차는 교과서 출판사의 과당 경쟁과 선정 로비를 막기 위해 만든 것인데, 출판사의 로비가 사라진 지금은 이렇듯 외압을 차단할 수 있는 근거가 되고 있다. 복수 발행을 허용하는 검인정 교과서 도입의 전제 조건으로 마련된 것이다. 교과서 선정 문제가 부각되면서 일반 시민들도 단위학교에서 이런 규정이 작동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당황한 집권당의 대표라는 사람은 국민들의 상식을 의심한다. 1%의 선택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 정상적이냐고 말이다. 정상과 비정상, 상식과 비상식을 구분하는 눈마저 흐려진 사람이 집권당의 대표라고 한다. 이 분이 슬쩍 '국정교과서'의 필요성을 들고 나온다. 이제 국민들은 알게 됐다. '아, 이 사람들의 의도는 바로 역사교과서의 국정교과서화였다'는 것을. 교과서를 둘러싼 이 혼란의 와중에 누군가는 시대를 역행하여 자기들의 입맛에 맞는 역사관을 학생들에게 심어주고자 부단히 고민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국정교과서의 부활은 교육을 다시금 국가가 독점하려는 시대착오적이며 퇴행적 발상이다.
다시, 이 교과서 문제는 오늘 우리 사회의 독특한 문화현상이다. 친일과 유신의 향수에 빠진 사람들이, 자기들 빼고는 모두 '좌파'라면서 광기 어린 몰상식의 이념투쟁을 전개한다. 우리 사회는 어느 새 친일을 말하면서 부끄러워 하지 않고, 유신에 대한 그리움을 맨언굴로 드러내는 사람들이 생겼다. 좌우로 갈라진 이념투쟁이라면, 거기에 슬쩍 끼어들어가면 부끄러움들이 가려질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다.
친일과 유신에 복무했던 사람들이 여전히 사회의 지배 권력을 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방 후 친일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한 우리가 누대에 걸쳐 감당하는 업보이다. 국민의 손으로 유신 부활의 꿈을 꿀 수 있도록 했던 그 잘못을 혹독하게 치루고 있는 것이다. 단적으로 말하여 이런 모든 혼란의 사태는 우리에게 묻는 엄중한 경고이다. 정신차리고 살라는 말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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