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컴지기 칼럼
교육의 주체가 그들의 언어로 미래교육을 상상하는 이야기
그날의 기억
"그때 나는 이 진부한 삶의 끝없는 순환에 안도하였다."
- 김훈, 라면을 끓이며, 2015
별일 없이 사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일깨우는 말이면서 동시에 일상을 허투로 살지말라는 주문이기도 하다. 대개 소시민적 삶의 방식이 그러하듯, 작은 것을 탐하고 사소한 것에 감동하며, 때로 답답한 세상을 향해 핏대를 세우거나, 혹은 멋적게 화해하는 일을 반복하는 삶이었다.
그저 하루를 보내고, 고단한 몸에 휴식을 주며 내일을 기다리는 거기서 거기인 삶의 연속이었다. 더 대단하지 않아서 무력감에 빠지고, 때론 더는 나쁘지 않아서 안도하는 별 볼일 없는 일상에 무거운 바위가 둔중한 충격으로 내려 앉았다. 10년 전 오늘은 그가 세상과 결별한 날이었다.
모욕을 홀로 견디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 노무현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팽팽한 긴장을 주었다. 그는 끊임없이 삶의 의미를 물었고, 수시로 파고들어와 제대로 살고 있는지를 점검했다. 나뿐이랴. 빚지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그랬다.
난 '이렇게 살아야지'라는 다짐에 서툴다. 사실, 내 방식도 아니다. 남이 그런 다짐을 할 때도 괜히 내가 오글거린다. 그럼에도 그는 삶의 긴장이 떨어질 때쯤 어김없이 나타나 '먹고 살만한지'를 묻는다. 먹고 살만해서 더 빚진 마음이고, 더는 제대로 살 자신도 없어 빚진 마음이다.
바보처럼 자기를 내던져 길을 개척했던 그를 존경한다. 도를 넘는 모욕에 자신의 삶을 던져 화답했던 그의 대책없는 자존심을 사랑한다. 그는 우리에게 긴 숙제를 내고 떠났다. 마감 닥친 숙제만큼 부담되는 것이 없지만, 그건 빚진 자들이 기꺼이 감당할 몫이다.
기억은 단단하게 박제되어 묻히는 것이 아니라 부단히 내 앞에서 현재화한다. 10년 그날의 기억은 그래서 늘 현재진행형이다.
부디 편안히 잠드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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