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전북교육청 전문직 대상으로 교육과정 특강을 한 후 한 장학사께서 하신 질문이 인상적이다. 모대학 모교수께서 말씀하시길 "단위학교에서 교육과정 재구성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교육과정은 '고시'되는 것으로 지침적 성격을 갖기 때문이다"라는 것이다. 대부분 이 글을 읽는 벗들은 이 말씀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고 하겠지만, 모교수의 말 또한 교육과정을 바라보는 하나의 시각이다.
교육과정은 한 가지로 정의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문서화된 규범'으로 교육과정의 성격을 보고, 또 다른 사람은 가르치고 배우는 장에서 축적, 구성하는 경험의 총체라고 본다. 가르치지 않았으나 학습자가 학교 생활을 통해 습득, 체화한 것이 있다면 그것도 교육과정의 범주 안에 넣어야 한다고 말하는 학자가 있는가 하면(잠재적 교육과정), 다룰 내용에서 의도적으로 배제하여 교육과정에 담지 않는 것(영교육과정)까지도 교육과정으로 본 학자가 있었다.
위에서 언급한 모교수는 교육과정을 정의하는 방식 중 가장 '좁은' 개념을 취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모교수가 한 가지 놓치고 있는 것은 이 분이 개념화하고 있는 '문서화된 국가 교육과정' 역시 '고시'라는 형태로 단위학교에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7차 교육과정 이후 교육과정의 규범적 성격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시도에서는 나름대로 특색있는 지역교육과정을 가질 수 있고, 단위학교 역시 학교 차원의 교육과정을 가질 수 있다. 즉, 현행 국가교육과정 역시 '만들어가는 교육과정'을 보장하고 있다.
문제는 이것이 상당히 선언적이어서, 실제에서 여전히 우리나라는 '국가교육과정'이 가장 강력하게 관철되는 나라로 꼽힌다. 국가교육과정은 시도 차원의 '학교교육과정 편성, 운영치짐'을 통해 단위학교의 교육과정을 규정한다. 편성운영지침이라는 말은 '지침'이로되, 이미 개발된 교육과정을 기준으로 편성(여기서는 단위학교에서 어떻게 연간 시수에 맞게 잘 조직할 것인가의 뜻), 운영(implementation)하라는 뜻이다. 이렇게 보면 편성운영지침이라는 말 자체가 시대에 뒤떨어진 용어임을 알 수 있다. 이 부분은 또 다른 장학사께서 주신 질문이었다.
세 가지의 정리할 문제가 있다. 하나는 교사의 역할을 교육과정의 실행자를 넘어 개발 및 재구성자로 재개념화하는 것이다(함영기, 2009). 그래야 만들어가는 교육과정이라는 말도 선언성을 버리고 실제화할 수 있고 교육과정 재구성이라는 말도 생명력을 갖는다. 두번째로는 교육과정-수업-평가가 일관성을 가지고 연계돼야 한다는 것이다. 모범적인 교육과정 재구성을 하고도 평가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재구성 절차는 힘을 발휘하기 힘들다. (평가에 대한 고민은 또 다른 장학사께서 주신 질문이다)
물론 이때의 평가는 아이들의 발달 정도를 점검하는 절차이자, 교육과정의 개선을 위한 피드백을 얻는 과정이다. 지향점은 '교사별 절대평가'의 도입이다. 또한 결과보다 과정을, 성공보다 노력을 평가하는 평가의 본래기능을 회복하는 것이다. 공정성, 타당성, 신뢰성을 위하여 실시한다는 '공동출제'는 평가의 본령에 맞추어 보면 상당히 허위적 절차일수밖에 없다(함영기, 2014, 교육사유)
셋째로는 (가장 중요한 것인데) '국가교육과정을 대강화'하는 것이다. 국가 차원에서 필요로 하는 인간상 혹은 역량 기준을 제시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다. 학년별, 교과별로 도달해야 할 공통 기준만 명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시도에서는 각 지역의 특색에 맞는 교육과정을 개발하여 보급하고(여기서도 단위학교의 교육과정을 개발하는 것이 아닌, 시도 차원에서 최소한의 총론만 제시하는 것이 옳다), 실제로는 단위학교에서 삶과 일치하는 교육과정의 개발과 운영 및 평가가 이뤄지는 것이 맞다.
이것을 단위학교에서 감당해야 할 또 하나의 골치 아픈 일거리로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실제로 가르치는 내용과 학생들이 생활사태, 삶의 양식, 미래에 대한 준비 등을 그 학생들 가장 가까이에 있는 교사들이 고민하여 최소한의 기준을 마련하자는 취지다. 당연히 실행 차원에서는 각 개별교사와 교실에서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 이렇게 해야 물과 기름처럼 겉도는 교육과정, 수업, 평가를 유기적으로 묶어 살아 있는 지식의 축적과 구성으로 가져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