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컴지기 칼럼
교육의 주체가 그들의 언어로 미래교육을 상상하는 이야기
거점학교 운영은 일반고 두 번 죽이는 정책
거점학교 운영은 일반고 두 번 죽이는 정책
서울시교육청, 계획 발표 8일만에 폐지... 부실화 원인, 시민·전문가 함께 찾아야
이 칼럼은 오마이뉴스 기사로 선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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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서울시교육청이 일반고 살리기의 일환으로 이번 2학기부터 성적 우수 학생에게 영어∙수학 심화교육을 시키는 거점학교 운영 계획을 폐지했다. 지난 20일, 이 계획을 발표한 지 8일만이다. 졸속정책의 끝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잘못된 정책의 철회는 다행스럽지만, 이로 인해 정책불신의 강도는 더 커졌다. 서울시교육청의 영어∙수학 거점학교 계획 및 철회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은 일반고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일반 시민과 큰 차이가 있음을 드러낸다.
문제의 핵심은 특목고, 자사고, 특성화고 등 이른바 '특별한 고등학교 정책'으로 인해 빚어진 일반고의 질 저하 문제를 개선하라는 것이었다. 즉, 공교육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일반고의 활성화와 질 제고'가 시민들의 요구였다. 그런데 서울시교육청은 이것을 왜곡하여 일반고에 재학 중인 우수 학생을 살리는 정책을 내놓았다. 그것이 바로 영어∙수학 심화교육 거점학교 운영 계획이었다. 이것은 일반고 살리기가 아니라 일반고를 두 번 죽이는 정책이다. 일선학교에서도 반발했고 시민들도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조기 철회하였지만 여전히 심각한 문제가 남아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영어∙수학 심화학습 거점학교를 철회하는 대신 교내에서 심화과목 개설을 확대한다고 한다. 2009년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일반고도 올해부터 영어 심화과목, 내년에는 수학 심화과목을 개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교육청은 이를 적극 지원한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는 일반고 안에서 변형된 우열반 편성으로 학생들의 서열화를 조장하는 방식이며 어떻게든 우수 학생에게 편익을 주겠다는 발상이다. 이것은 시민들이 요구하는 일반고 살리기로 표현되는 '공교육 시스템' 살리기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시각이다.
아마도 소수의 우수 학생 몇 명에게 심화학습을 제공하여 명문대 진학생 수가 조금 늘어날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시교육청은 일반고 살리기에 성공했다고 할 것인가? 교육정책의 종착점을 대학진학에 놓고 있다는 시각이 새삼 놀랍다. 교내 심화과목 개설 방안 역시 일반고 살리기 과정에서 서울시교육청 정책의 초점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문제의 핵심은 일반고에 다니고 있는 대다수의 학생들에게 만연된 무기력과 좌절감을 걷어주어 제대로 된 학교의 기능을 회복하게 하라는 것이다. 그러자면 일반고가 부실해진 원인을 다시 따져볼 수 밖에 없다. 우수 학생을 지속적으로 분리하여 특별한 고등학교를 만드는 방법으로는 절대로 나락으로 떨어진 일반고의 활성화를 기대할 수 없다. 일반고에 재학하는 소수의 우수 학생들에게 심화학습을 제공하여 다소의 불만을 잠재울 수 있겟지만, 이것을 일반고 문제의 해결이라보는 시각은 어불성설이다.
기왕 일반고 부실화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면, 이렇듯 정책을 내 놓았다가 8일 만에 거두는 졸속행정으로 정책에 대한 신뢰를 떨어 뜨릴 일이 아니다. 일반고가 부실해진 근본 원인은 무엇인지, 일반고를 활성화할 수 있는 중장기 플랜과 단기적 정책은 무엇인지, 교육청 차원의 지원 및 학교에서의 노력들은 어떤 것이 있을지 처음부터 고민했으면 한다. 또한 교육주체 및 관심있는 시민들에게 정책 문호를 개방하여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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