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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컴지기 칼럼

[신간안내] 교사, 학습공동체에서 미래교육을 상상하다(함영기 지음)
교육의 주체가 그들의 언어로 미래교육을 상상하는 이야기


학급의 의미를 다시 상상함

교컴지기 | 2013.08.15 10:21 | 조회 7429 | 공감 3 | 비공감 0
'학급(class)'은 인위적 관리 단위이다. 공교육이 대중화되고, 학교의 규모가 커지는 과정에서 관리의 편의성을 도모하고자 도입된 것이 학급이다. 이런 의미에서 학급은 배우는 자의 필요보다 가르치는 자의 필요에 더 가깝게 진화해 왔다. 배우고 가르치는 일, 무엇인가를 나누어주고 걷는 일, 먹는 일, 체험학습이나 수련활동 등 모든 활동은 학급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아이들의 성취는 학급을 기준으로 측정되고 비교된다. '학급별 성적 비교표'가 이것과는 하등 관련이 없는 담임 교사의 능력을 어림하는 도구로 쓰인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학급이 가르치는 자의 필요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그 운영방식에서 드러난다. 이 소단위의 책임자인 '담임'은 '관리'를 최우선으로 여기게끔 요구받는다. 관리의 목적은 '성취 및 무사고'이다. 그것을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각자에게 번호가 부여되고 명렬표 및 각종 기록부가 만들어진다. 종종 성취와 무사고를 위해 명렬과 기록부는 구성원을 통제하는 수단이 된다. 다양한 '학급경영 기술과 매뉴얼'이 있고, 이것을 잘 하는 교사가 전문가로 호명되기도 한다. 

그런데 아이들 입장에서 보자면 학급은 하나의 사회적 공간이다. 하루 중 꽤 긴 시간 동안 아이들의 삶이 그곳에서 이뤄진다. 삶이 이뤄진다는 측면에서 그곳은 구성원들의 생태계이다. 그곳에 다양한 삶의 흔적이 있다. 아이들은 그곳에서 타인과 교류하고 의사소통한다. 심각한 갈등이 발생하고 협력과 경쟁이 일어나기도 한다. 패거리가 만들어지기도 하며, 스스로 고립되어 자기만이 세계 속에서 사는 아이도 있다. 한마디로 이곳은 문화적 생태계이다. 비록 학급은 인위적 관리 단위이지만, 이 안에서 아이들의 삶은 자연발생적 문화를 형성한다.

결국, 학급은 인위적으로 관리하려는 자와 문화적으로 생활하는 자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여기에 심각한 부조화가 있다. 이런 생태계라면 담임은 필연적으로 감시자가 되기 마련이며 아이들은 감시 당하는 자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감시 당하는 자 중에서도 서열이 존재한다. 생태계의 맨 아랫단에 위치한 아이들에게 학급은 매일 끔찍한 경험을 해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가끔 학생들의 역동적 삶을 염두에 두고 학급운영 방식이 제안되기도 한다. 또 민주적 학급공동체라는 이상적인 모델을 상정하고 이를 위해 노력하는 담임들도 있다. 그러나 학급이라는 단위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생각하면, 역시 학급은 '기본적 관리 단위' 이상을 벗어날 수 없다. 말하자면 이 시스템 속에서 교사는 잘해야 '어느 정도는 민주적 감시자'가 될 뿐이고 아이들은 '문화를 감시 당하는 자'로 살아간다.

그러므로 '학급'을 다시 생각할 때가 되었다. 새로운 상상이 아니라면, 이런 부조화를 깰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상상은 현재를 뒤엎는 참신한 것이어야 한다. 가령 '학급'이라는 시스템이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것일까? 이런 불온하고 발칙한 상상이 필요하다.

상상의 출발점은 '관리'가 아닌 '문화'이다. 관리와 문화라는 상충된 요구가 충돌하는 기존의 학급 시스템에서 온갖 문제들이 발생했다. 학교폭력도 그곳에서 시작됐고, 경쟁과 갈등 혹은 소외의 문제가 생겼다. 이 문제를 사고할 때 교사 중심에서 관리와 통제, 무사고 달성과 같은 후진적 관념 속에서는 새로움이 상상되지 않는다. 

이러한 상상을 처음 할 때는 저항감이 있다. 현실을 배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창조도 현실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하지 않는다. 새로운 상상이 필요할 때라는 징표는 이미 너무 많이 드러났다. 누군가의 골방 속 상상이 많은 이들의 사유를 자극했으면 한다.

이제 위의 이야기가 한 이상주의자의 뜬구름 잡는 망상이 아니라는 것을 밝힐 차례다. '학교라는 제도화된 공간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학급이라는 기초 단위가 아니라면 어떻게 교육이 이뤄질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는 당신은 전형적인 '관리형 타입'이다. 아이들을 관리와 통제의 대상으로 여기는 한 새로운 상상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 또한 생각만 공동체니 어쩌니 하면서 실제로는 온갖 제도화된 통제권한을 발휘하고 있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상상은 이 모든 현실태들을 뛰어 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현재 40대인 교사가 정년 전에는 목도하게 될 학교 또는 새로운 배움터에 대한 상상이 필요한 시기가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한다. '학교의 형태'를 상수로 놓고 사고하다보면 '학급'에 대한 생각은 다른 조건들에 대한 종속변수밖에 되지 못한다. 가령 20년 전의 학교 사정을 생각해보자. 한 학급에 60명의 학생들이 절대적 자원배분 권한을 가진 담임교사 아래서 나름대로 질서를 유지했다. 지금 학급당 학생 수는 30여명까지 줄어들었지만 학급운영 방식이 획기적으로 변하였는가? 변하기는 커녕 대부분의 학급 관리 방식은 한치도 달라진 것이 없으며 오히려 더욱 정교하고 촘촘하게 '전자적으로' 관리된다. 

다시 20년 후를 생각해 보자. 정부는 학급당 정원을 30명 아래로 낮추려하지 않을 것이다. 기껏해야 20명대 후반 정도다. 왜 그럴까? 경제를 움직이는 것은 교육이라 했던가? 아니다. 그것은 그들의 논리이고 실제로는 경제가 교육을 움직인다. 그래서 교육이 경제에 종속되고 있고, 더욱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갈 길은 뻔하다. 지금보다 더욱 정교하고 촘촘하게 훨씬 '전자적으로' 관리하게 될 것이다. 심지어 RFID같은 기술은 지금 당장이라도 아이들의 교실 출입을 전자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새로운 상상이 없다면, 기존의 질서가 온존, 강화, 안정화되기를 바란다면 그 머리에서 나올 수 있는 상상은 딱 위에서 내가 언급한 내용 정도이다. 학급당, 교사 일인당 학생 수는 생각만큼 획기적으로 줄어들지 않을 것이며 '성취와 무사고'를 최우선에 놓는 패러다임 역시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정도의 상식적 판단으로는 이 흐름에 섞여 있는 '음모'를 발견해 내기가 쉽지 않다. 

방향을 달리하여, 이렇게 생각해 보자. 현재 아주 완만하게나마 학급 당 학생 수가 줄어들고 있었다. 두 가지 요인이 있다. 하나는 정책적으로 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다. 학교를 신설하고 학생들을 분산배치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그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인구의 자연감소'이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상황은 사실 인구감소분에 의한 것들이다. 앞으로는 인구감소 효과가 더 크게 작용할 것이다. 

당신이 만약 의사결정 권한을 가진 교육정책가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인구의 자연감소에 따른 학생 수 감축 효과도 노리고 동시에 새로운 시설 투자를 거듭하여 학급당 학생 수를 획기적으로 줄이겠는가? 아니면 '적정 수'를 유지하면서 경제적 효과를 함께 보려 할 것인가? 물으나 마나한 질문이다. 당연히 후자이다. 적정 수를 유지하기 위한 경제활동(교육활동이 아닌) 가운데 한 가지가 작은학교 통폐합이요, 교사를 증원하지 않는 것이다. 혹은 언제라도 해고 가능한 비정규직 교사의 수를 늘려가는 것이다. 이 사항은 논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최근 수년 동안 보아 온 것이다. 직관으로 알 수 있다. 

더 영악한 사람이라면 기존의 체제를 고수하려는 정규직 교사와 열심히 경쟁하고자 하는 비정교직 교사간에 싸움을 붙여볼 수도 있다. 그래서 국민들이 볼 때 현실에 안주하려는 교사들과 적은 급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위해 열심히 헌신하는 교사로 대비시키는 효과를 볼 수도 있겠다. 최근 몇 년 사이에 학교 안에 급팽창한, 그리고 앞으로도 예견되는 비정규직 교사들의 모습에서 읽어 낼 수 있는 미래에 대한 지표들이다. 

인구 자연감소분만 반영되더라도 앞으로 10년 후에는 학급당 20명선, 20년 후에는 학급당 10명대에 진입할 수 있다. 단, 교원법정정원이 지켜진다는 전제 속에서 그렇다. 그리고 학급 당(교원 일인 당) 학생 수의 획기적 감소가 교육적으로 매우 효과적이라는 국민적 공감대와 함께 간다면 말이다. 

학급의 의미가 새롭게 조명되기 위해서는 바로 '학교의 규모'가 지금보다 현저하게 작아져야 한다. 대도시 과대과밀학교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는 더 이상 보충이 필요없을 것으로 안다. 그러자면 '학교를 많이 지어야 하고, 대도시 땅값이 얼마인데...' 등등의 경제논리를 다시 펴는 분들이 있을까봐 보충하면 학교를 새로 지어야만 현재 학교의 규모를 줄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기존 건물을 이용하면서도 복수 개의 학교가 들어가 있는 새로운 형태의 학교 개념도 생각해 볼 수 있다. 10명대로 줄어든 학급 규모라면 기존의 교실이 너무 크기 때문에 이를 두 개 이상으로 분할하여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사실 이것은 순전한 내 의견이 아니고 북유럽에 가보니 한 학교에 복수 개의 학교가 들어가 있는 개념의 학교도 있고, 한 교실을 반으로 나누어 아이들을 분리 배치하는 경우도 이미 있었다. 

지금보다는 현저하게 규모가 축소된 학교라는 조건, 학급을 유지하는 것이 '촘촘하고 정교하게 전자적으로' 아이들을 관리하자는 것이 아니라는 조건이 충족된다면, 이미 학급의 개념은 지금과는 사뭇 다르고, 담임의 역할도 달라질 것이다. 아니면 그 과정에서 이미 학급이라는 관리 단위는 의미를 갖지 못할 수도 있다. 전반적으로 '생태문화공간'으로 학교가 탈바꿈되는 과정을 밟게 되는 것이다. 그 안에 사회적, 문화적 체험을 실속있게 하기 위한 단위 같은 것, 자기에게 필요한 배움의 공간을 찾아가 일시적으로 묶이는 단위 같은 것들은 지금의 학급 개념과는 완전히 다르다. 

어떤 이들에게는 내 상상력의 일단이 '이상주의자의 과대망상'으로 들릴지도 모른다. 그런데 미안하게도 나에게는 그런 지적을 하는 사람들이 '한치 앞도 보지 못하는 매우 빈약한 안목의 소유자'로 생각된다. 되짚어 생각해 보자. 지금 학교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들의 근원은 자유로운 상상의 나래를 억압하는 온갖 통제와 경쟁구조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것은 구조와 사람에 걸쳐 일어나는, 아이들의 전인적 발달을 저해하는 몹쓸 것들이다. 나는 아주 심각하게 다음 세대들에게 안겨줄 희망의 교육 시스템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가르치는 자의 이런 상상이 아니고서야 어찌 자라나는 아이들에게서 멋진 상상력을 기대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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