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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컴지기 칼럼
교육의 주체가 그들의 언어로 미래교육을 상상하는 이야기
선발적 교육관이 관철되는 형태, 공동출제
시험에서 공동출제는 학급 간 성적 편차를 최소화하고 공정성을 기한다는 취지로 실시되는 중고등학교의 정기고사 출제 기법 중의 하나다. 이 방법은 한 학년에 두 명 이상의 교사가 수업을 하는 학교의 시험에서 전형적인 출제 방식으로 알려져 있다. 수업에 들어가는 모든 교사들이 일차적으로 문제를 출제한 후 한 자리에 모여서 토론과 협의를 거쳐 문항을 정선한 후 출제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 방식이 학교 현장에 오랜 시간 관행처럼 굳어 있었던 까닭에 교육평가의 취지에 맞는 방식인가에 대한 합리적 의심이 배제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우선, 교육에서 평가는 왜 하는가?의 문제를 놓고 보자.
교육학에서 평가는 학습자의 상태를 알아보기 위해서(진단평가), 교육과정을 개선할목적으로(형성평가), 교육목표의 달성정도를 알아보기 위해(총괄평가) 실시하는 것으로 돼 있다. 그 외에 학습자 스스로 지식이나 기능을 행하는 방식으로 수행평가를 실시한다.
교육평가는 학습자 행동의 변화를 관찰하여 평가자의 평가규준에 비추어 해석하고, 이를 교수학습과정에 피드백하는 것을 목적으로 실시된다. 어찌되었던 평가의 목적은 학습자끼리, 혹은 학급끼리 비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교육과정을 개선하고 학습자를 지원하기 위해' 실시하는 것이다.
'학급 간 성적 편차'가 최소화되어야 한다는 것은 2인 이상의 교사가 동일한 시기에, 동일한 내용으로 성실하게 가르쳤을 경우, '공동출제'로 시험을 보았다면 학급 간 성적의 차이가 되도록 없어야 한다는 가정에 기초한다.
과거에는 학급 간 평균 성적을 그대로 단순 비교하여 순위를 매기기도 하였다. 교사들이 가르치는 방식에 따라, 시험 위주의 수업이냐 아니냐에 따라 학급의 성적 평균이 차이가 나기도 했는데, 이 경우 특정 교사가 가르친 학급이 성적이 낮게 나오면 질책이 뒤따르기도 했다. 현재는 학급 간 성적 평균을 그대로 비교하는 일은 없다. 그 대신 '학급 간 성적 편차의 최소화'라는 압박이 있다.
학급 간 성적 편차를 비교함으로써 얻어지는 실익은 무엇일까? 이 비교는 어느 교사가 가르치든지 같은 내용이라면 비슷한 성적이 나온다는 것을 드러내는 절차 외에 유익한 이득이 없다. 또한 이것의 전제는 학년별 교과성적의 평균인데, 각 학급의 교과별 평균은 학년 평균에 가까워야 한다는 논리다. 학급의 평균 성적을 결정하는 요인은 무엇일까? 당연히 최초 그 학급구성원들의 성적 분포이고, 전출입 상황, 무단결시 등이다. 물론 교사 요인도 조금 있지만,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러므로 '학급 간 편차를 최소화하라고' 교과 담당 교사에게 압박을 주는 것은 사실상 의미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학급 간 성적 편차의 최소화를 위한 공동출제' 방안 같은 것들에 신경을 쓰고, 때로 성적 감사가 나오면 이것이 지적 사항이 된다고 하는 것일까? 단적으로 말하여 왜곡된 평가관 때문이다. 위에서 알아본 바와 같이 평가의 본래 취지는 '교육과정을 개선하고 학습자 개인을 지원하기 위한 피드백'을 얻어내는 것이다. 평가의 취지 그 어디에도 학습자끼리 비교를 해야 한다거나, 학급끼리 비교를 하기 위한 것은 없다.
이는 대량교육 상황에서 다수의 교사들이 같은 내용을 일시에 가르칠 때, 교사에 따라 누구에게도 불이익이 없다는 것을 학습자 혹은 학부모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교사와 학생들이 배우고 가르치는 과정 자체가 구시대적인 상황에서 택할 수 있는 '허위적 행사'에 불과하다. 위의 전제 '대량교육', '다수의 교사', '같은 내용', '같은 시기'와 같은 것은 교육적으로 올바른 것도 아니고, 교육평가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해서 개선되고 극복되어야 할 문제들이다.
대량교육이 적정규모의 교육으로 바뀌고, 다수의 교사가 같은 내용을 일시에 가르칠 필요가 없어지면, 즉 아이들이 지금보다는 훨씬 소규모의 학급에서 자기를 가르친 선생님이 다양한 방식으로 출제한 문제를 가지고 평가에 임하게 되면 - 사실은 이것이 교육평가 본래의 취지를 달성하기에 훨씬 좋은 방법이다 - 모두 해소되는 문제들이다.
공동출제와 같은 기법은 학급 간 성적 편차의 최소화 수단으로 기능하면서 '평가가 공정하게 이뤄지고 있다'라는 허위적 자기 만족 외에 아무런 실익도 주지 못한다. 우리가 늘 경험하는 이러한 현상으로부터 교육평가가 심각하게 왜곡되고 있다고 느낄만한 제도와 지침, 관행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선발적 교육관'에 따라 '경쟁을 유발'하는 것 외에 평가의 순기능을 전혀 피드백 받고 있지 못한 학습자의 불행이요, 평가의 장면에서 교사 역할의 실종으로 귀결된다.
평가의 목적은 비교(변별)가 아니다. 비교를 통하여 학습자를 지원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 도 없다. 비교하고자 하는 비교육적 욕구가 학급 간 성적 편차의 최소화, 이를 위한 공동출제 같은 소모적 실행을 불러온다. 이는 선발적 교육관에 터한 줄 세우기에서 비롯된 잘못된 관행일 뿐이다. 이를 넘어서려면 교육평가의 '교육과정의 개선과 학습자 지원을 위한 피드백'이라는 교육평가 본래의 취지를 살려 '발달적 교육관에 의한 교사별 절대평가'를 도입해야 한다.
그런데 이 방식이 학교 현장에 오랜 시간 관행처럼 굳어 있었던 까닭에 교육평가의 취지에 맞는 방식인가에 대한 합리적 의심이 배제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우선, 교육에서 평가는 왜 하는가?의 문제를 놓고 보자.
교육학에서 평가는 학습자의 상태를 알아보기 위해서(진단평가), 교육과정을 개선할목적으로(형성평가), 교육목표의 달성정도를 알아보기 위해(총괄평가) 실시하는 것으로 돼 있다. 그 외에 학습자 스스로 지식이나 기능을 행하는 방식으로 수행평가를 실시한다.
교육평가는 학습자 행동의 변화를 관찰하여 평가자의 평가규준에 비추어 해석하고, 이를 교수학습과정에 피드백하는 것을 목적으로 실시된다. 어찌되었던 평가의 목적은 학습자끼리, 혹은 학급끼리 비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교육과정을 개선하고 학습자를 지원하기 위해' 실시하는 것이다.
'학급 간 성적 편차'가 최소화되어야 한다는 것은 2인 이상의 교사가 동일한 시기에, 동일한 내용으로 성실하게 가르쳤을 경우, '공동출제'로 시험을 보았다면 학급 간 성적의 차이가 되도록 없어야 한다는 가정에 기초한다.
과거에는 학급 간 평균 성적을 그대로 단순 비교하여 순위를 매기기도 하였다. 교사들이 가르치는 방식에 따라, 시험 위주의 수업이냐 아니냐에 따라 학급의 성적 평균이 차이가 나기도 했는데, 이 경우 특정 교사가 가르친 학급이 성적이 낮게 나오면 질책이 뒤따르기도 했다. 현재는 학급 간 성적 평균을 그대로 비교하는 일은 없다. 그 대신 '학급 간 성적 편차의 최소화'라는 압박이 있다.
학급 간 성적 편차를 비교함으로써 얻어지는 실익은 무엇일까? 이 비교는 어느 교사가 가르치든지 같은 내용이라면 비슷한 성적이 나온다는 것을 드러내는 절차 외에 유익한 이득이 없다. 또한 이것의 전제는 학년별 교과성적의 평균인데, 각 학급의 교과별 평균은 학년 평균에 가까워야 한다는 논리다. 학급의 평균 성적을 결정하는 요인은 무엇일까? 당연히 최초 그 학급구성원들의 성적 분포이고, 전출입 상황, 무단결시 등이다. 물론 교사 요인도 조금 있지만,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러므로 '학급 간 편차를 최소화하라고' 교과 담당 교사에게 압박을 주는 것은 사실상 의미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학급 간 성적 편차의 최소화를 위한 공동출제' 방안 같은 것들에 신경을 쓰고, 때로 성적 감사가 나오면 이것이 지적 사항이 된다고 하는 것일까? 단적으로 말하여 왜곡된 평가관 때문이다. 위에서 알아본 바와 같이 평가의 본래 취지는 '교육과정을 개선하고 학습자 개인을 지원하기 위한 피드백'을 얻어내는 것이다. 평가의 취지 그 어디에도 학습자끼리 비교를 해야 한다거나, 학급끼리 비교를 하기 위한 것은 없다.
이는 대량교육 상황에서 다수의 교사들이 같은 내용을 일시에 가르칠 때, 교사에 따라 누구에게도 불이익이 없다는 것을 학습자 혹은 학부모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교사와 학생들이 배우고 가르치는 과정 자체가 구시대적인 상황에서 택할 수 있는 '허위적 행사'에 불과하다. 위의 전제 '대량교육', '다수의 교사', '같은 내용', '같은 시기'와 같은 것은 교육적으로 올바른 것도 아니고, 교육평가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해서 개선되고 극복되어야 할 문제들이다.
대량교육이 적정규모의 교육으로 바뀌고, 다수의 교사가 같은 내용을 일시에 가르칠 필요가 없어지면, 즉 아이들이 지금보다는 훨씬 소규모의 학급에서 자기를 가르친 선생님이 다양한 방식으로 출제한 문제를 가지고 평가에 임하게 되면 - 사실은 이것이 교육평가 본래의 취지를 달성하기에 훨씬 좋은 방법이다 - 모두 해소되는 문제들이다.
공동출제와 같은 기법은 학급 간 성적 편차의 최소화 수단으로 기능하면서 '평가가 공정하게 이뤄지고 있다'라는 허위적 자기 만족 외에 아무런 실익도 주지 못한다. 우리가 늘 경험하는 이러한 현상으로부터 교육평가가 심각하게 왜곡되고 있다고 느낄만한 제도와 지침, 관행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선발적 교육관'에 따라 '경쟁을 유발'하는 것 외에 평가의 순기능을 전혀 피드백 받고 있지 못한 학습자의 불행이요, 평가의 장면에서 교사 역할의 실종으로 귀결된다.
평가의 목적은 비교(변별)가 아니다. 비교를 통하여 학습자를 지원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 도 없다. 비교하고자 하는 비교육적 욕구가 학급 간 성적 편차의 최소화, 이를 위한 공동출제 같은 소모적 실행을 불러온다. 이는 선발적 교육관에 터한 줄 세우기에서 비롯된 잘못된 관행일 뿐이다. 이를 넘어서려면 교육평가의 '교육과정의 개선과 학습자 지원을 위한 피드백'이라는 교육평가 본래의 취지를 살려 '발달적 교육관에 의한 교사별 절대평가'를 도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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