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1. 18.
드디어 처음 수업을 하는 날이다. 어제 너무 피곤해서 일찍 잔 우리는 새벽 3시쯤에 깨서 수업에 대해 다시 이야기했다. 국정홍보처에서 만든 한국 홍보 책자와 L이 스태프로 참여했던 유네스코 한호(한국-호주)캠프에서 썼던 파워포인트 자료 - 어제 OHP 필름으로 출력한 - 를 가지고 한국에 대해 어떻게 소개할 것인지 의논했다. 일단 이 script(?)를 우리가 잘 알고 있어야 할 것 아닌가. 한국, 태극기, 무궁화, 한국의 도자기, 음식, 한복, 탈춤, 음악 등등.. 서로 파트를 나눠서 하기로 하고 연습을 해 본다. 우리가 부시럭거리는 소리에 라라가 잠이 깼는지 나와 보고는 이 새벽에 뭐하냐며 놀란다.
학교 가서 한복 갈아입기가 번거로울 것 같아 아예 집에서 한복을 입고 나섰다. 한복을 입고 들어서자 보는 사람들마다 눈이 휘둥그래지며 아름답다!를 연발한다. 그럼~ 한복이 얼마나 예쁜 옷인데. 옷에 관심이 많다는 한 선생님이 한복 가격을 묻기도 했다.
오늘은 L네 반과 우리반 아이에게 기증받은 어린이용 한복을 이 곳 아이들에게 입혀보고 시간이 되면 윷놀이까지 해 보기로 계획을 세웠다. 수업은 주로 L이 하고 나는 보조 역할. 오늘 들어갈 반은 중학년 정도의 아이들이다. 여기는 교실 찾는 것도 미로에서 헤매는 것 같다. 팻말이 없으니 건물 안에서도 물어 물어 가야 한다. 에효.
한복을 일일이 입혀주다 보니 시간이 꽤 걸린다. 교실에 태극기나 붉은 악마 응원 티셔츠를 걸 공간도 없고, 준비할 만한 시간도 없어 아무것도 붙이지 못했다. 하긴 한복입은 우리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애들한테는 좋은 경험이지 않았을까. 한국에서 온 선생님들이고, 12시간 비행기를 타고 왔단다. 이렇게 소개를 하니 직접 지도를 꺼내들고 와서 거리를 설명해 주는 선생님도 계셨다. 덩치가 커서 한복 입히기가 어려웠던 한 반에서만 윷놀이를 했다. 도,개,걸,윷,모 간단한 규칙만 알려주고(back do 같은 건 빼고) 윷놀이를 하게 하니 아이들 꽤 즐겁게 열심히 참여한다. 이긴 아이들에게는 준비해 간 선물을 주고, 윷놀이 세트는 그 반에 전체 선물로 기증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오전에 3시간 수업을 마쳤다. 휴~ (여기도 수요일은 오전 수업만 한다) 새벽에 일어나 한국에 대해 소개하려고 준비했던 건 하나도 못했다. 시간도 없었지만, 했더라도 오늘 들어간 반들처럼 어린 아이들에게는 너무 어려운 설명이어서 전달하기 힘들었을 거다.
휴게실에서 준비해 간 점심을 간단히 먹고 나오니 홀에서 학부모들이 벼룩시장 비슷한 것을 열고 있다. 나가려는 찰나에 한복 입은 우리를 발견한 두 분의 한국 어머니들과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이 곳은 아이들 통학시 학부모가 늘 동행해야 한다. 남편의 일 때문에 여기서 살게 되었다는 두 분은 이 곳의 교육에 대해 매우 긍정적이셨다. 수평적이면서도 친밀한 교사와 학부모의 관계(친구 같고, 촌지 문제는 생각할 수도 없단다), 학부모들의 참여도 활발하단다. 학부모들끼리의 coffee morining 같은 모임이 한 달에 한 번 정도 있고, 또 반별로도 어머니들이 또 모임을 갖는다고 한다. (물론 주도하는 어머니의 성격에 따라 달라진다고 함) 너무 공부만을 강요하지 않고(이것은 언뜻 듣기에는 불만 같았지만) 여러 가지 체험학습을 하려는 분위기를 좋게 보셨다. 교육 외에 사회복지(암도 모두 처리되는 의료보장 같은 것)도 잘 되어있어 좋다 하신다. 이 곳 사람들은 경쟁을 너무 싫어해서, 대학입시에서 어떤 학과가 2명을 모집하는데 3명이 지원하면 가위 바위 보로 정할 정도라나. 중등 교육에서부터 대학에 진학해 공부할 아이들과 직업 전선으로 나갈 아이들을 분리해 교육한다고 한다. 직업에 대해서도 힘든 일을 하는 기술직은 그만큼의 보수와 대우를 받기 때문에 기술자가 교수에 비해 떨어지는 직업이라는 인식도 없고 자기 직업에 대해 당당하다고 한다. 다만 세금은 무척이나 비싸다고.. 그 어머니들로부터 불고깃감으로 어떤 고기가 좋은지도 소개받았다. 수요일이라 학교에서 좀 더 일찍 나설 수 있었다. 상가가 많은 곳에 가서 옷구경, 악세서리 구경 등을 하고 김밥 재료를 구하러 갔다. 라라와 라라네 반 교생과 함께. 중국 사람이 주인인 중국 식품점이었는데. 세상에. 가게에 들어선 순간, 일주일 전 중국에서 내내 맡았던 냄새가 확 나는 거다. 중국 어딜 가나 코끝을 자극하던 그 향료 냄새. 김은 스시용 일본김, 밥도 스시용 일본산 sticky rice, 참기름은 홍콩산, 단무지는 한국산, 나무젓가락은 중국산, 그리고 김발.. 다시 라라네 동네 JUMBO(수퍼마켓)에서 햄과 달걀, 오이, 불고기용 고기(아까 한국 어머니들이 적어주신 고기 - 이거 얇게 썰어달라고 부탁해야 했다) 저녁에 집에 와서는 내내 오이, 햄, 단무지를 팔이 아프도록 썰고, 달걀 지단 부치고 불고기 양념 고기에 재우고, 냄비에 밥하느라 애먹었다. 으아~ 너무 힘들다..김밥이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일 줄이야.. 사실 한국에서도 김밥 한 번 안 만들어본 이가 외국에 나와 이러고 있으니. 엄마가 이 광경 보시면 얼마나 어이없으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