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3일은 학생의날(공식 명칭은 학생독립운동기념일)이다. 학생의날은 일제시대 때, 조국의 해방을 위해 앞장섰던 청소년들을 기리기 위해 만든 날이다.
매년 11월이 되면, 독립운동의 주축이었던 학생들을 위한 행사가 전국에서 개최된다. 이 자리에서는 단지 학생들을 기리는 것을 넘어서, 오늘날 청소년들은 당시 독립운동의 정신을 어떻게 계승할지 고민을 한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유래
일본은 조선의 독립을 막기 위해 식민화교육을 펼쳤다. 학교에서는 조선 학생들이 한글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으며, 학생들에게 신사참배를 강요했다. 하지만 일제의 식민지교육은 독립을 향한 조선 학생들의 염원을 꺽지 못했다.
1920년대부터 학생들의 항일운동은 거세졌다. 당시 조선 학생들은 ‘성진회, 독서회’ 등 자치 조직을 만들어 항일독립운동을 체계적으로 준비했다. 학생들은 “식민지 노예교육 철폐, 조선 독립” 등을 요구하며 동맹휴학, 백지동맹 등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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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재일, 장재성 등 15명의 광주지역 학생들이 비밀결사조직 \'성진회\' 결성을 기념하는 사진이다. 성진회는 1926년 11월 3일 결성되었다. ⓒ광주학생운동동지회 |
학생 독립운동이 진행되던 중 1929년 10월 30일, 나주역에서 일본학생 후쿠다가 조선학생 박기옥을 희롱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전 국민의 독립운동으로 발전시킨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출발이었다.
29년 11월 3일, 일제는 일본천황의 탄생을 기념하여 조선인 학생들에게 신사참배를 강요했다. 이날은 우리의 명절인 개천절(음력)이기도 했다. 개천절에 신사참배를 강요당한 학생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학생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학생들은 동맹휴학에 들어갔고, 집단 시위에 돌입했다.
광주에서 일어난 학생들의 독립운동은 전국으로 퍼졌다. 조선민족의 독립과 자존심을 지키고자 하는 학생들은 연일 시위를 계속 개최했다. 학생들의 시위는 이듬해까지 계속됐고, 모두 전국 149개교(초등 54, 중등 91, 전문4) 5만 4천명이 참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정부에서는 이같은 학생들의 독립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학생의날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했다. 그리고 지난해부터는 ‘학생독립운동기념일’로 명칭을 변경해 기념하고 있다.
학생독립운동의 의의 오늘날 청소년들은 무엇을 기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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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광주학생독립운동을 다룬 신문기사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사업회 | 학생독립운동의 가장 큰 의의는 조선의 독립에 청소년이 주체적으로 나섰다는 점이다. 일제로부터 수탈당하고 있는 조선민족을 위해, 그리고 자신과 이웃을 위해 독립을 외쳤다. 청소년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기 시작한 것이다.
일제시대 때 독립운동을 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학교에 퇴학당하기도 하고, 감옥에 잡혀가기도 했다. 때로는 목숨을 내놓아야하는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당시 학생들은 징계와 탄압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시작으로 전국 149개 학교가 독립운동을 시작하는 등 조선 학생의 용감성을 만 천하에 알렸다.
그래서 학생의 날이 진짜 의미가 있기 위해서는 단지 형식적인 기념을 넘어 학생독립운동 정신을 어떻게 이어받을지가 중요하다.
올해도 나라사랑과 민족사랑을 펼쳤던 일제시대 학생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자신들의 힘으로 세상에 기여하고자하는 청소년들이 있다.
지난해까지 청소년들은 ‘입시문제 해결’, ‘두발규제 해결’ 등 교육문제를 중심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냈다면, 이번 에는 교육문제를 포함해서 우리사회 빈부격차 해결 등 사회문제에도 적극 목소리를 낸다고 한다. 일부 청소년들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또래 친구들을 대상으로 ‘대통령후보에게 바라는 공약’을 설문조사해서 학생의 날 때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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