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2004-03-07 12:16:00]

[한겨레] 수줍음 많은 아이도 생활 익숙해지면 대화 트여
조급해하지 말고 친구와 접촉기회 만들어주길

“아이가 학기 초만 되면 친구들 을 사귀지 못합니다. 겨우 1학기 말쯤 되면 몇몇 친구들과 사귀고 자연스럽게 대화하는데, 학기 초엔 낯선 상황에 너무 수줍어하며 대화를 잘 하지 못해요.”(한 상담기관 게시판) 새학기가 시작됐다. 낯선 환경에서 아이들의 스트레스는 크게 늘어난다. 그 중에서도 낯선 친구들과 어울리기는 아이들한테 결코 적은 부담이 아니다. 하지만 힘든다고 포기할 수 없는 게 바로 친구문제다.

 

〈첫아이 학교보내기〉의 저자인 주순중 서울 창경초등학교 교사는, 1·2학년 아이들은 ‘나하고만 친한 친구’ ‘우리끼리’ 의식이 형성되지 않은 채 두루두루 어울리는 단계라고 한다. 오늘 이 친구와 놀다가 내일은 싸우기도 하고, 싸움을 해도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또 같이 논다. 따라서 아이에게 사교성에 특별히 문제가 있는 경우를 빼고는 친구사귀기 문제로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주 교사의 말이다.

 

하지만 3·4학년부터는 상황이 크게 달라진다. 아이들은 자기에게 맞는 친구들하고만 어울리는 경우가 많아지고, ‘잘 통하는’ 또래집단이 형성된다. 이때 친구를 사귀지 못한 아이는 학교생활이 더욱 외롭고 힘들어진다.

친구를 쉽게 사귀지 못하는 아이들은 스스로 혼자 있기 좋아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내성적이고 수줍음을 많이 타거나 자기 주장이 강하고 놀이패턴이 달라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또 친구들에 비해 조금 늦되거나 외모, 옷차림이 또래 정서에 맞지 않아 따돌림을 당하기도 한다.

 

스스로 혼자 있기 좋아하는 아이는 기질적인 요소가 강하기 때문에 부모나 교사가 억지로 다른 사람들과 접촉시키려 하기보다, 아이의 세계를 어느 정도 인정해 주는 자세도 필요하다. 최혜순 경원전문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요즘엔 옛날과 달리 컴퓨터 프로그래머, 작가 등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며 “사교성이 있느냐 없느냐보다, 아이의 성향이 사회의 규범과 일치하느냐 여부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낯선 환경에서 수줍음을 많이 타는 아이들은 생활이 익숙해지면서 자신감을 하나하나 얻어가고 친구들과 대화도 트이게 된다. 따라서 부모나 교사가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차차 적응해갈 때까지 기다려주면서 자연스럽게 친구와의 접촉기회를 만들어주는 자세가 중요하다.

 

자기 주장만 고집하기보다 남 배려하는 열린 자세 갖도록
자기 주장이 강하고 놀이패턴이 다르거나 공격적인 아이들에게는 다양한 경험과 놀이 등을 통해 자신을 자제하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읽고 배려하는 능력을 기르는 훈련이 필요하다. 친구관계와 공동체 생활의 중요성을 가르쳐 주면서 친구를 사귀는 구체적인 기술을 익히게 해주는 것도 좋다. 아이들은 의외로 외모나 옷차림에 민감하므로 부모가 이런 면에도 세심한 신경을 써줘야 한다.

반면, 능력이 있고, 성격이 원만하고 쾌활하며, 남을 잘 이해해주는 아이들은 인기가 있다. 최근 교육사이트 티나라에서 전국 초등학생 4~5학년 197명에게 ‘인기 있는 친구’에 대해 물었더니, ‘친절하고 매너좋은 친구’(57명), ‘유머 있는 친구’(54명)가 가장 많이 꼽혔다. 다음으로 ‘착하고 마음이 고운 친구’(25명), ‘잘생기고 옷 잘입는 친구’와 ‘공부 잘하는 친구’(각 17명) 차례였다.

 

아이의 사교성, 사회성은 후천적인 학습과 노력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다. 최혜순 교수는 “협동, 이타적 행위 등의 덕목이 늦게 발달하는 반면, 사회성은 젖먹이일 때부터 발달한다”며 “아이의 첫 상호작용의 대상인 부모와의 관계는 아이의 사회성 발달에 결정적인 요소”라고 말했다.

 

세상에 대한 신뢰감과 자기 자신에 대한 존중감은 사회성의 원천이다. 이를 위해 부모는 아이와 일찍부터 긴밀한 상호작용과 정서교류를 통해 애착관계를 형성하고, 아이를 인격적으로 인정하고 잦은 칭찬, 배려와 함께 성취감의 기회를 줌으로써 긍정적인 자아개념을 갖도록 이끌어줘야 한다. 부모의 양육유형으로 볼 때, 민주적이고 허용적인 분위기에서 자란 아이가 좋은 사회성을 갖게 될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아이의 사회성은 또래와의 규범이나 가치를 잘 받아들여 행동하는 능력과 관계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적절하고 일관된 상벌을 통해 아이가 사회적으로 널리 받아들여지는 행동을 습관화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또래들과 함께 하는 갖가지 놀이는 규범을 익히고 사회성을 기르는 중요한 수단이다.

 

이와 함께 아이 스스로 어려움을 이기는 기회를 자주 갖게 해 자기통제능력과 참을성을 길러주고, 다양한 연령·활동집단과의 잦은 만남을 통해 열린 자세를 갖게 해줘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김종태 기자 jtkim@hani.co.kr ⓒ 한겨레(http://www.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