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응 방법은 당대의 권력을 누가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사뭇 달라진다. 특히 불안을 제거할 능력이 되지 않을 때 권력은 희생양을 찾아 나선다. 불안을 해소할 대상을 찾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마녀'가 만들어진다.
정찬일은 '우리가 기억해야 할 마녀사냥들'을 열 가지로 구분하여 기록하였다. 그리고 비이성의 세계사로 제목을 달았다. 주말동안 읽어 보았는데, 시간순에 따라 통사로 읽어보는 역사도 흥미롭지만, 이렇게 역사속의 마녀사냥으로 범주화하니 또 한편으로 큰 줄기의 역사를 일별할 수 있었다.
놀라운 것은 우리가 기억해야 할 마녀사냥 열 가지 중 상당수가 인종, 종교, 민족 세 가지로 정확하게 구분된다는 것이다. 역사 속 비이성적 권력들은 이 세가지를 적절하게 활용했다.
소크라테스 재판이 그랬고, 로마대화재와 기독교인 박해 과정이 그러했으며 병자호란 당시 환향녀에 대한 대응은 우리 안의 순혈적 민족 감정을 더욱 부추겼다. 중세에는 사회 위기에서 마녀가 탄생했으며 여기에는 반드시 '이단'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드레퓌스 사건 역시 프랑스, 독일, 유대인이 관계한 마녀사냥이었고
조작된 유언비어가 낳은 집단 광기,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은 당시 권력이 적극적으로 마녀사냥을 기획했다는 점에서 섬뜩하다. 매카시즘은 또 어떤가? 한마디로 광풍이었다. 권력자의 사냥개가 됐던 홍위병과 문화대혁명, 야수가 된 이념의 노예들 캄보디아 킬링필드, 평범한 사람들에게 닥쳐온 최악의 비극 르완다 대학살 등 어느 것 하나 인종, 종교, 민족 세 가지가 빠진 것이 없고, 권력은 적극 기획하거나 개입했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마녀사냥, 이 잔인하고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지른 평범한 사람들은 적어도 당대에는 스스로를 이성적이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는 늘 데자뷰의 연속이다. 방법만 달라졌을 뿐, 희생양을 찾아나서는 목표는 그대로이다. 마녀사냥은 중세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고대 소크라테스로부터 르완다 대학살에 이르기까지 현재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