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하나가 서있다.
멀리서 있던 것이 가까이 다가와 서있다.
내가 다가갔을 때 ㅡ 그것은 그 자리에 있었으나.
나는 다가 서있었고,
그는 그 자리에서 무엇인가를 보고 있었다....
많은 세월이 지나치고 있었다는 것은 그의 상처의 깊게 파인 자욱이 말해주고 있었다.
이것이 나무라는 증거는 뒤로 보이는 잔가지가 대신해 준다.
그 잔가지가 쪼개어 내는 공간의 미세한 작은 틈사이로 지나쳤을 시간이 한번씩 부딧치고 닿아서 깊을 골로 새겨진 깊은 곳은 어느새 집이 되어 어느 새 한 마리 살았을 법하다.

나무의 상처는 빗속에서 힘겹게 날던 새의 안락한 피난처로 내어주었을 터인데, 제 상처를 잘 감싸어서 집하나를 만든 셈이되었다.
저녁 햇살에 살짝 반사되는 고목의 살갓에 내 손을 대어본다.
거친 숨결과 고른 내음이 하나의 음표로 전해온다. 중저음의 숲소리 같다. 깊은 한숨과도 닿았다.
두아름이 넘을 듯한 나무의 품이 그간 받아낸 무수한 소리와 바람과 빛을 측량하도록 유인하는 듯하고 나는 그 품을 가늠하듯 안아보았다.

무슨 알아들을 수 없는 신호를 향기 발산하듯 토해내는 나무의 사연을 내가 해독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