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통계자료
역대 선거 성별 투표율
“정치판이 남성 위주여서 내가 신경을 조금 쓰더라도 바뀔 여지가 별로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하지만 결국 피부에 와 닿는 부분이 생길 것 같아요. 직장생활을 하고 애 낳아 키우고 살림하는 일이 모두 정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겠죠. 어느 당, 어떤 인물을 찍어야 내가 먹고 사는 데 좀 더 보탬이 될까, 내 아이 키우는데 누가 더 도움이 될까, 이런 고민들을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닐까요.” (유새롬씨·대학원생·26)
이번 대통령선거 때는 여성들의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선거참여 바람이 불 것인가
지난 25일 서울 인사동 느티나무 카페에서 ‘대선여성연대’ 발족식이 열렸다.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100여개의 여성단체가 연말 대선에서 여성유권자운동을 통해 ‘양성평등 대통령’을 뽑겠다며 야심찬 ‘도전장’을 낸 것이다. 지금까지 없던 일이다. 도전장은 대통령 후보 뿐 아니라 일반 여성유권자들한테도 던져진 셈이다. 그들의 참여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주부 유순희(53·가명·서울 종로구)씨는 지난 92년 대선 때 박찬종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그 때 박찬종씨가 버버리 코트를 휘날리고 다니며 주부들한테 멋있게 보였잖아요. YS나 DJ는 진부하게 느껴지고, 정주영씨 이미지도 별로 좋지 않았는데, 그나마 박찬종씨가 상대적으로 참신해 보여서 찍었어요.” 유씨는 지난 97년 대선 때에도 ‘비슷한 이유’로 이인제씨를 지지했다고 한다.
대학생 김주희(20)씨는 지난 6월 지방선거 때 처음으로 투표권을 얻었지만 투표장에 가지 않았다. “정치나 선거에 관심 없어요. 골치 아프고 싶지 않거든요. 대선은 선거 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것 같긴 하지만, 아직 투표할지는 결정 못 했어요. 대통령 뽑는 게 나와 관련있는 문제란 생각이 안 들거든요.”
여성들의 투표행태나 투표율은 남성들과 어떻게 다를까. ‘아줌마’들은 젊고 잘 생긴 후보만 좋아할까 ‘젊은 여자’들은 왜 투표를 안 할까
대선이나 총선, 지방선거 등 역대 선거를 보면, 여성들의 투표율이 남성에 견줘 약간 낮은 수준이지만, 성별 투표 차이가 크게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지난 6월 지방선거 때는 처음으로 여성 투표율(51.4%)이 남성(51.2%)을 앞지르기도 했다.
하지만 20대 전반(20~24살)을 놓고 보면, 여성 투표율은 다른 집단에 견줘 크게 떨어진다. 한국여성개발원이 지난해 실시한 ‘해방 뒤 한국여성의 투표성향에 대한 연구’ 결과를 보면, 2000년 16대 총선에서 가장 투표율이 낮았던 집단은 20대 전반의 여성들로, 이들의 투표율(30.6%)은 전체 투표율(57.6%)의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에 그쳤을 뿐 아니라 같은 나이집단의 남성(49.1%)보다도 크게 떨어졌다. 투표행태에서는 남녀 모두 정책보다 인물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상대적으로 여성은 가족이나 주변사람들의 영향을 받는 경우가 아직도 많은 것으로 분석됐다. 92년 대선 뒤 숙명여대 이영란 교수(법대)가 실시한 조사결과, 후보를 결정하는 데 가장 영향을 끼친 것을 묻는 질문에 ‘가족’을 꼽은 여성(34.9%)은 남성(17.8%)보다 2배 가까이 많았으며, 99년 대통령직속 여성특별위원회가 국회의원 투표때 후보자 선택 기준을 묻는 조사를 한 결과에서도 가족의 의견에 영향을 받았다는 비율이 여성 24%, 남성 6%로 큰 차이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여성들이 적극적인 정치 참여가 자신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국여성개발원 김원홍 박사는 “한국에서는 여성들이 투표권 행사를 통해 소극적 형태로 정치에 참여하는 것조차 주체적인 정치의식에 기반해 이뤄진 경우가 적다”며 “특히 한국처럼 해결해야 할 여성문제가 많은 나라에서는 젊은 여성유권자들의 투표참여가 더 적극적으로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실제로 사회활동을 하는 주 연령대인 20대 후반~30대 여성들의 투표율은 남성보다 오히려 높은 경향을 보이는데, 이는 자신들의 활동과 관련된 정치에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선여성연대 또한 ‘정치=내 문제=여성문제’라는 문제의식으로 여성유권자들의 참여를 이끌어낼 계획이다. 보육제도나 호주제, 고용평등 등 여성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해 후보들의 정책 차별성을 드러내고, 여성들의 요구를 공약으로 채택하도록 ‘압력’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여성단체연합 이구경숙 정책부장은 “여성유권자들이 육아·보육정책 등 자신의 생활에 밀착된 문제를 중심으로 선거에 접근하면, 정치는 지저분한 것, 잘 모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잘 찍으면 바뀔 수 있는 것’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 일반화한 ‘여권투표(젠더 보우팅)’가 한국에서도 첫 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까.
한겨레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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