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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안내] 아이들은 한 명 한 명 빛나야 한다(함영기 옮기고 고쳐 씀)
바실리 수호믈린스키의 전인교육 이야기와 파블리시 학교


놀이를 잃어버린 아이들

교컴지기 | 2019.06.20 13:15 | 조회 862 | 공감 0 | 비공감 0

어느 중학교 학부모께서 언론과 인터뷰를 한 모양인데 내용인즉 "자유학기제 때문에 아이가 놀기만 하니, 공부는 언제할지 걱정이 된다..."는 것이다. 우선 오해 하나는 풀고 넘어가자. 자유학기제라고 해서 학생이 '놀기만'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노는 것은 공부에 비하여 덜 가치롭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아이가 학교에서 잘 놀고 왔다고 말하면 부모는 뛸듯이 기뻐해야 한다. 이 무슨 해괴한 궤변인고 할지 모르겠다.


'놀이'는 일종의 사회화 과정이다. 타자와 함께 즐기는 놀이 안에는 '규칙'이 있다. 힘 세다고 규칙을 어길 수 없다. 그러면 놀이가 이뤄지지 않는다. 놀이가 진행되는 시공간적 장소를 잠재공간(potential space)이라 부른다. 놀이가 이뤄지는 동안은 현실세계와는 좀 다른 규칙과 역할과 사회화가 작동된다는 것이다. 놀이가 끝나면 잠재공간도 현실공간으로 바뀐다. 여기에서 아이들은 다양한 역할 체험하는 과정에서 타인의 입장에 서 보기도 하고, 협업하는 방법, 갈등을 관리하는 방법, 타자와 관계를 맺는 방법을 익히며 성장한다.


놀이는 다소간의 위험을 동반한다. 이는 놀이를 통해 사회화되는 과정에서 필수적이다. 다만, 이 위험은 적정 범위 안에 있다. 놀이는 숨고, 찾고, 뛰고 달리며 상대를 잡고 부둥켜 안는 과정을 포함한다. 격렬하게 이 과정을 진행하다 보면 때로 가벼운 부상을 입기도 하고 심한 경우 팔 다리가 골절되는 사고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 과정은 아이에게 담력을 주고 모험심을 키우는 데 기여한다.


아이들이 다툴 수 있다. 말로 다투다가 안되면 티격태격 몸싸움을 동반하기도 한다. 물리적으로 싸우다보면 가끔 코피가 터져 싸움을 종결하기도 한다. 싸움에서 누가 먼저 코피가 터지느냐가 승부의 갈림길이기도 했다. 또한 이를 심각한 부상으로 보지도 않았다. 지금의 부모 세대는 모두 그런 시절을 겪었다. 싸우지 않고 성장하는 것이 가능한 일이기나 한가. 물론 요즘은 그렇지 않다. 싸움은 필연적으로 가해자와 피해자를 가르고, 코피 한 방은 폭대위를 열 가능성을 높인다.


그래서 아이들의 놀이가 사라져가고 있다. 그 공간을 스마트 단말기를 통한 디지털 기반의 게임이 메꾼다. 현실에서 놀이는 그렇게 가상 공간 속 게임으로 치환되고 레벨을 올리거나 아이템을 획득하는 경합이 된다. 아이들은 서로 다른 상대와 게임하고 그 경험을 나눈다. 놀아야 할 상대는 앞에 있는데 다른 상대와 게임 경험을 나눈다는 것은 요즘 아이들의 비극이다.


그래서 '놀이'의 복원이 필요하다. 서울시교육청이 추진하고 있는 '꿈을 담은 놀이터'나 '중간놀이'를 위한 시간 확보 등은 지금으로선 다소 인위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아이들의 놀이문화를 복원하기 위한 초기 조치로 우선 놀이에 대하여 알게 하고 나아가 익숙하게 만드는 데 그 일차적 목적이 있다. 꿈을 담은 놀이터는 바람의 언덕, 트리하우스, 레인보우 놀이터와 같은 사실상의 전통적 놀이 방법과 결합되는데, 모래 언덕에서 미끄럼을 타고, 또 뛰고 달리고 오르는 과정에서 공부로 쌓인 스트레스를 풀고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사회화의 과정으로 들어가는 데 기여한다.


학교에 다녀온 자녀에게 "학교에서 별일 없었니?"라고 우려 섞인 안부를 묻지 말자. 그 별일이라는 것이 혹시라도 얻어 맞지는 않았는지, 따돌림을 당하지 않았는지, 교사로부터 편애를 당하지는 않았는지와 같은 것임을 이해한다. 그렇지만 학교는 아이들을 안전하게 지켜주기만 하는 곳이 아니다. 학교에선 아이의 활동이 일어나고 이 활동이 쌓여 성장을 촉진한다.


안전 불감증도 문제이지만 과잉 안전 의식도 아이들 위해 좋을 것이 없다. 최근 아파트 단지내 놀이터 바닥은 모래를 걷어내고 합성수지를 깔았다. 부상을 최소화하기 위함이다. 공장에서 찍어온 플라스틱으로 만든 놀이기구가 설치돼 있다. 이는 모래사장, 나무 놀이터에 비해 얼마나 더 안전할까. 최근 연구결과는 합성수지 바닥의 놀이터가 모래바닥에 비해 발암물질이 4.3배 더 나온다고 한다. 눈에 보이는 안전을 취하다가 더 큰 위험에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4차 산업혁명의 도래를 말하는 지금, 아이들이 미래사회에 대비하여 이런 저런 역량을 키우는 것보다 '잘 노는 것', '제대로 노는 것'이 필요하다. 제대로 논다는 것은 규칙이 무엇인지 안다는 것이고 타자의 역할을 통해 역지사지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운다는 것이다.


만약 아이가 "학교에서 재미있게 놀았어요"라고 말한다면, 부모는 듬뿍 칭찬해 주라. "그래, 잘 했구나..." 이렇게 말이다. 좋은 놀이는 몸을 튼튼하게 하고, 상황 대처 능력을 키워주며, 용기와 모험심을 기르는 원천이다. 그저 '공부(사실은 기억훈련)'만 하다가 사회적 부적응과 극단적 이기심만 갖는 어른이 되는 것보다 아이 때도 어른이 됐을 때도 '잘 노는 것'이 중요하다.


대개 그렇지 않은가. 어른이 되어서야 제대로 놀지 못했음을 후회하고 잘 놀아보고자 하지만 노는 방법을 몰라 어쩔줄 몰라하는 상태 말이다. 아이든 어른이든 놀이를 잃어버린 삶은 불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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