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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학_이론과 실천

피터스의 윤리학과 교육 비판적으로 읽기

교컴지기 | 2019.02.13 17:13 | 조회 425 | 공감 0 | 비공감 0

피터스의 윤리학과 교육’ 4~8장 리뷰

 

함영기(20192)

 

평등이라는 말은 동일이라는 말과 같이, 사람이나 물건을 비교하는 데에 사용되며, 사람이나 물건은 어떤 기준에 비추어서만 비교될 수 있다. 그러므로 비교의 기준이 명백히 드러나지 않는 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말은 무의미하다.(141)

 

우선 평등(equality, equity)’동일(the same)’과 같이 사람이나 물건을 비교하는 데에만 사용하는 말일까. 두 개념이 쓰이는 맥락과 배경은 같은 것일까. 평등은 대체로 사회학적 맥락에서 쓰이는 반면 동일은 대체로 사물의 모습이나 수량이 같음을 나타내는 개념이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라는 말이 품고 있는 뜻이 신장이나 지능이 같다는 뜻은 명백히 아니다. 다음 문장을 보자.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말이 사람들을 어떤 특정한 기준에 비추어 비교하였을 때 그 결과가 같다는 뜻으로 해석된다면 그 말은 언제나 틀린 말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신장, 체중, 지능, 감성 등의 기준에서 명백히 평등하지 않기 때문이다.(141)

 

피터스는 인간은 신장, 체중, 지능, 감성 등의 기준에서 명백히 평등하지 않다고 말한다. 지금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교육사태 혹은 사회양상 안에서 말하는 평등에 대하여 신장, 체중, 지능, 감성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나? 결국 이는 무리하고 인위적인 접근방식이다. 즉 평등 개념을 접근함에 있어 무의미하고 불필요한 말로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무의미하고 불필요한 말로 시작을 해 놓은 피터스는 바로 태세 전환을 한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말이 이와 같이 하나의 사실적인 법칙으로 사용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비록 문법적인 형식으로 보면 사실적인 진술이지만, 논리적인 기능으로 보면 그것은 대개 사실적인 법칙을 진술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규칙을 제정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 말은 곧 인간은 평등하게 취급되어야 한다는 뜻이다.(141-142)

 

자기부정을 통하여 다른 진술을 정당화는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결국 앞 단락에서 자신이 한 긴 말의 무의미성과 불필요함을 스스로 인정하는 말이다. 피터스는 인간이 평등하게 취급되어야 한다는 말은 대담하고 엄한 명령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여기서 드는 예를 보자. ‘천재아가 정신박약아와 같이 똑같이 취급되어야 한다는 뜻인가라는 것을 예로 든 피터스의 의도는 알 길이 없지만, 피터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빌려 정작 하고 싶었던 말은 평등하지 않은 것을 평등하게 취급하는 것은 평등한 것을 평등하지 않게 취급하는 것에 못지않게 부정의를 초래하는 것이다였던 것이다. 피터스는 분배적 정의를 평등한 것을 평등하게 취급(동일한 범주)하고 평등하지 않은 것을 평등하지 않게 취급(상이한 범주)’하는 것으로 보고 있으며 정신박약에 속하는 모든 아동들은 똑같이 취급되어야 하지만, 이들은 천재의 범주에 속하는 아동들과는 다르게 취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예가 적절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정의는 규칙을 만들고 적용하는 일에 기본이 되는 원리로써, 적합한 근거에 의해서 범주를 설정하는 것은 바람직하다는 것, 그리고 부적합한 근거에 의해서 예외를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을 규정하는 원리이다.(152)

 

이쯤 되면 피터스의 말들이 향하는 지점이 어디일지 유추해볼 수 있다. 사실상 부적합한 근거에 의해서 예외를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은 근거만 적합하다면 얼마든지 예외를 설정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의 다른 표현이다. 다음 예를 보자.

 

분명히 고문을 하는 사람의 경우에도 고문을 당하는 사람에게 적절한 차이가 있는 경우에는 그 방법을 세밀히 구분하여 고문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그는 비록 고문자이긴 하지만 공정한고문자라고 말할 수 있다.(152)


점입가경이다. 피터스는 고문자의 규칙이 도덕적으로 나쁜 것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불공정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정의를 말하는 대목에서다. 그러면서 하는 말은 정의의 원리가 정당화되거나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심각하게 할 때 누구나 받아들여야 하는 논리적 가정이 되는 논의는 이 정도면 완성된 셈이라는 것이다. 피터스의 감수성은 아래 문장에서도 드러난다. 특히 피터스의 남성적 젠더 감수성은 이후 이 책의 다른 곳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미치광이, 히스테리에 걸린 여자, 또는 광분하는 나치를 상대로 논의를 하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다.(153) ... 투표할 권리나 정당한 임금을 받을 권리가 형식적으로는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현실적인 여건이 그러한 정의의 실현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예컨대 문맹인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사람이나 무식한 아내를 둔 남편이 노동자와 아내로 하여금 투표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거나 자신의 뜻에 따라 표를 던지도록 압력을 넣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159)

 

정당화 과정을 통해 피터스가 하고 싶은 말은 합당한 차이가 있을 때에는 그 차이에 따라 적절한 차별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전제를 토대로 교육적 시사점을 따진다는 것은 교육사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적절한 차별의 근거를 찾는 일이 될 것이다.

 

공론가들이 평등의 원리를 맹목적으로 신봉한 나머지 제대로 교육시킬 수 있는 명문의 학교들을 없애버릴 위험이 있다는 것이 자유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입장이다.(172)

 

평등을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한 피터스의 견해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인데 평등주의자들이 평등의 원리를 맹목적으로 신봉한다는 피터스의 판단은 그 앞의 문장, ‘평등의 원리 추구가 자유 또는 질 높은 삶과 갈등을 일으킨다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피터스가 말하는 자유 혹은 질 높은 삶은 그라마스쿨이나 사립학교가 가진 탁월성의 표준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다.

 

수학자가 제 정신에서 거리를 청소하려고 나선다면, 여기에는 어떤 특별한 이유라든지 그럴 만한 배경이 예컨대 정서적 긴장 해소라든가 신의 찬미 등 반드시 있어야만 할 것이다.(191)

 

이 진술은 마치도 고대 희랍사회의 귀족과 노예의 역할을 연상하게 한다. 수학자가 수학을 연구하는 중에 진리를 탐구하거나 더 깊은 연구를 하는 것은 하등 이상한 것이 아니고, 아울러 수학자가 거리 청소의 방법으로 사회에 기여한다는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긴장 해소나 신의 찬미와 같은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지만 학자의 거리 청소가 용인되는 것은 아니다.

 

... 기술, 민감성 및 예법을 가지고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오직 목적만 달성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에서 아무렇게나 하지 않도록 규칙이 생길 때, 그 활동은 문명화된활동이 된다.(199) ... 언어란 것이 사용된 것은 ... 함께 모여 살고 있는 사람들이 각각 자기의 몫르 하는 공동의 간주관적 대화의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서였다.(200) ... 이성은 목표를 결정하고 목표 달성을 위한 적절한 수단을 선택하여 욕망을 가치와 기준에 따라 조절하는 등의 일을 한다.(201)

 

피터스가 말하는 내재적 목적이란 말이 세상(현실)과는 담을 쌓고 오로지 이성에 입각한 진리탐구를 향한 것이라면 이는 지식과 삶을 심각하게 분리하는 접근 방식이다.

 

정치가 순전히 게임처럼 되어 버렸다는 말은, 예컨대 정권 유지와 같이 도덕적인 방향감을 잃는 목적이 멋대로 설정되어 정치가 사회의 도덕적 관심과 괴리되어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212)


피터스는 교육과정 활동의 정당화를 말하면서 크리케트가 게임으로 분류되는 것은 그 결과가 도덕적 관심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접근은 교육과정 활동 자체를 지나치게 이성적 관심으로만 접근함으로써 실제적 삶과 유리되게 만든다. 게임에도 나름 철학과 (일종의 윤리)’가 있다는 게임 마니아들의 말은 논외로 하더라도, 정치를 게임으로 보는 시각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것이며 이 시각은 긍정적이기까지 하다. 정치라는 것이 맹목적 욕구 충돌의 장으로 변질되는 것을 제어하기 위해 일정한 법률과 규칙, 즉 상호간 합의된 를 기반으로 정치가 이루어진다는 점을 피터스는 애써 무시하고 있다.

정치와 사회의 도덕적 관심은 꼭 일치돼야 할까. 현대사회는 다양한 이해와 요구가 각축하며 정치는 이를 조정한다. 다만, 권위로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 조정의 과정에는 합의된 이 작동하는 것이다. 한편 사회의 도덕적 관심은 가치문제와 연결된다. 정치를 구성하는 요소 중에 가치 지향의 측면이 포함되지만 정치가 가치를 구현하는 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정치는 세속적 욕구들이 충돌할 때 시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과 책임, 그리고 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이를 조정한다. 조정 과정이 공정하게 작동하려면 이를 지탱하는 룰이 있다. 정치가 게임과 유사한 방식으로 작동되는 이유이다. 그러므로 정치가 게임처럼 작동되는 것이 사회의 도덕적 관심으로부터 괴리된다고 말하는 것은 순진한 접근이 아닐 수 없다.

피터스는 과학, 역사, 문학 등이 삶의 여러 영역에 빛을 던져 주고 삶의 질을 높인다는 점에서 심각한활동이라 말한다. 이러한 활동이 광범한 인지적 내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또 교육과정 활동과 게임 사이의 차이를 광범위한 인지적 내용의 차이로 규정하면서 자전거 타기, 수영, 골프에는 아는 지식보다 하는 지식일 뿐이며 이해보다는 요령이 있다고 하였다. 피터스의 지식관이 드러나는 대표적인 대목이다. 결국 피터스는 아는 지식(인지적 내용)’을 제대로 소화만 한다면 수 많은 다른 대상에 빛을 던져주고 그것을 보는 안목을 무한히 심화, 확대시켜준다고 찬양한다. 이는 내용지식에 대한 무한한 신뢰이다. 피터스가 방법적 지식을 그저 요령이라고 치부하면서 주지교과 중심으로 흘렀는지 알 수 있다. 책의 전반부에서 했던 피터스의 말을 상기하여 보자.

 

교육은 무엇인가 가치 있는 것이 도덕적으로 온당한 방법으로 의도적으로 전달되고 있거나 전달되었다는 것을 함의하고 있다. (23) ... 교육은 무엇인가 가치 있는 것을 추구하는 활동이다.(24)


결국, 피터스가 말한 가치 있는 것, 도덕적으로 온당한 방법, 의도적 전달이란 말 속에 피터스의 아동관, 윤리관, 교육관, 지식관이 함축적으로 드러난다. 내용지식에 지나친 비중을 둔 나머지 방법적 지식, 하는 지식을 소홀히 했다는 점은 강조점의 차이에서 머무는 정도가 아니라 이처럼 교육을 바라보는 그의 총체적인 관이 감정보다는 이성, 욕구보다는 가치, 삶 자체보다는 도덕에 비중을 두고 있음을 말한다. 그런 측면에서 아는 지식이 삶의 다양한 국면에 빛을 준다는 피터스의 말은 협소하다. 아는 지식이 어떻게 사회적 실제와 만나 하는 지식을 바탕으로 삶으로 연결되는지, 그것에 관한 총체적 상상 없이 그저 인지적 관심에 머물게 할 위험이 있다. 인지적 관심은 사회적 실제, 정서적 유대와 만나야 하고 이것이 실제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능력으로 전이될 때 우린 비로소 교육의 효과를 말한다. 단지 눈으로 볼 수 있는 효과가 아니라, 시험을 통해 알고 있음을 확인하는 정도의 효과가 아니라 시간을 두고 삶 속에 용해되는 교육 말이다.

 

교사는 스스로 판단하여 학생에게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추구하도록 보호해주거나, 아니면 학생들로 하여금 그들에게 가치 있고도 적합한 것, 이로운 것을 추구하도록 도와주는 데에 관심이 있다.(227)

 

이 말을 끌어내기 위해 피터스가 한 비유가 바로 앞에 있다. ‘교사는 마치 정신병원의 환자감독이 환자에 대해서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학생의 이익(또는 흥미)에 신경을 써야 하지만, 이때 교사는 반드시 심리학적 의미에서 학생이 하고 싶어 하는 것, 흥미가 있는 것, 또는 학생의 취미에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앞선 장에서도 몇 번의 부적절한 비유가 있었지만 이 비유 역시 대단히 부적절하다. 이 비유가 성립하기 위한 전제는 교사가 학생의 이익만을 위해 신경을 써야 한다고 주장한 이론이 있었는지, 흥미 내지는 취미에만 신경을 써야 한다고 주장한 이론이 있었는지 살피는 것이다. 역자는 원문의 ‘interest’이익으로 번역했다. 이익이라고 할 때 우리가 떠오르는 것은 무엇인가 정신적, 물질적으로 보탬이 되는 것을 생각한다. 물론 interest가 이익으로 번역되는 용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굳이 이익으로 번역한 까닭은 아마도 피터스의 논리 전개상 그동안 아동의 흥미를 고려하자는 주장에 대하여 아동의 이익을 위해서만 (정신병원의 환자감독이 환자를 대하듯) 교사의 활동이 조직될 수는 없음을 강조하려는 용도로 쓰였다고 생각한다. 계속해서 피터스는 아동의 흥미를 사적 이익으로 몰고 가면서 공적 관심이 이를 대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묘하거나 목사님스럽거나... 피터스의 젠더 감수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을 하나 더 보겠다.

 

... 활동으로 파악되는 순간에 그 일은 기술이라든가 초월성을 발휘할 여지가 있던 일로 되고, 이때가지 일련의 수단적인 조치로만 보이던 일들이 내재적 희열의 원천으로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게 된다. 짐작컨대, 가정주부들이 가사를 즐거움으로 바꾸는 비결이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242)


피터스가 성감수성이 떨어진다는 것은 앞에서도 지적한 바 있거니와
, 다시 예를 든 것이 가정주부들이 가사를 즐거움으로 바꾸는...’ 운운이다. 다시 한 번 지적하는 까닭은 피터스의 세계관을 형성하는 방식이 이성(아마도 남성이 여성에 비해 더 이성적이라 생각하는 듯), 합리성, 내재적 가치, 도덕, 공적 관심 등과 같이 이상적이며 계몽적인 개념군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여성, 방법, 하는 지식, 흥미, 관심 등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본다. 이런 논리 전개방식은 불가피하게 전통문화의 전수, 기존 이데올로기의 강화, 주지교과의 강화, 도덕의 이상화 쪽으로 피터스를 포지셔닝하고 있다.

 

오늘날 안타까운 일은 이런 종류의 단순한 예술작품과는(성경이나 호머의 시) 질적으로 다른, 예술성이 결여된 기괴 만화나 신문 만화가 보다 널리 읽히고 있다는 것이다.(245)

 

당시 피터스가 활동하던 영국 상황에서 예술성이 결여된 기괴 만화신문 만화가 정확히 어떤 내용인지 알 길이 없으나 이 역시 피터스의 도덕적 결벽증의 한 단면이라고 본다면 너무 심한 표현일까. 그래서 풍부한 삶은 지적인 엘리트의 전유물이 아니다’(245)라고 말한 피터스의 말을 글자 그대로 되돌려주고 싶은 마음이다.

 

아이들의 결정이 그들의 이익(interest)에 어긋난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이들이 스스로(, 자유롭게) 결정하도록 내벼려 둘 것인가, 아니면 어른이 보기에 명백하게 아이들에게 이익이 된다고 판단되는 행동을 하도록 강요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예컨대 머리 좋은 딸이 대학에 다니려고 하지 않고 나이 많은 놈팡이와 결혼하겠다고 우기는 경우에 부모가 빠지는 곤경이 바로 그것이다.(248)


이제 눈을 의심할 정도가 됐다
. 이렇듯 수시로 성감수성의 결여 상태에서 부적절한 예를 들다보니 그 앞의 주장이 설득력을 잃고 있다. 이 대목은 아이들이 자신들의 흥미에 부합하는 활동을 하고 싶다고 할 때 가르치는 자는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이다. 이 경우 교육관, 아동관의 차이에도 불구 교육학적 합의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아이의 흥미를 고려하면서 교육목표를 고려한 가르침을 제공하면 된다. 여기서 과도하게 아동의 흥미와 어른의 교육방향을 분리하게 되면 위와 같은 부적절한 예에 얽히고 만다. 그나저나 왜 피터스는 수시로 여성을 사례에 끌어들이면서 부적절하게 비하할까. 머리 좋은 딸은 반드시 대학에 다녀야 하나? ‘대학에 가지 않는 머리 좋은 딸이라는 표현도 웃기지만 성인인 딸이 나이 많은 놈팡이(노는 남자, 즉 실업자)’와 결혼을 하고 싶다고 하는 상황이 왜 그렇게 문제지?

 

선택을 허용하되 오로지 유익한 것들 중에서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경우에는 그럴 듯하다. 그러나 그것은, 아이들이 예술이나 수학 대신에 마약이나 빙고 게임을 선택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경우처럼 유익한 것만이 아니라 해로운 것 또는 무익한 것이 섞여 있는 가운데서 선택하게 하는 경우에는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248)


아니, 이 말은 말인가, 망아지인가... 이 글 앞에 놓인 피터스의 글은 자유를 신장하면 유익한 것을 발견할 기회가 보다 많아지기 때문에 자유의 신장은 그들의 이익을 증진하는 셈이 된다는 반론이 있다고 하면서 이러한 주장이 선택교과를 포함하는 교육과정의 경우를 예로 든 것이다. , 선택교과를 포함하는 교육과정의 전제는 구성원이 합의하는 교육적 내용이다. 여기에 갑자기 왜 마약이나 빙고 게임(빙고 게임 역시 학습의 방법으로 쓰일 수는 있다는 점에도 불구하고)을 제시하며 해로움을 운운하는가.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극단적인 비유를 드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 하나의 자명한 도덕적 가정 즉 사람들이 하고 싶어 하는 대로 하지 못하게 하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가정 이 정당하게 성립하는가 하는 것이다. (249) ... 사람들을 다르게 취급하는 데에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야 하듯이, 사람들의 자유를 침해하는 데에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250)

 

이 말은 피터스가 자유의 원리를 자명한 가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데 대한 합리적 근거를 찾기 위해 한 것이다. 사실 피터스가 사람들을 다르게 취급하는 데에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야 하듯이, 사람들의 자유를 침해하는 데에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라고 한 말을 보면 그럴만한 이유를 규명하기 위한 것보다는, ‘다르게 취급하거나’, ‘자유를 침해할정당한 근거로 사용되었다고 본다.

피터스는 1960-70년대에 주로 활동했던 사람이다. 따라서 그가 가진 생각을 50년이 지난 현재적 관점에서 비판하는 일은 자칫 피터스가 견지했던 교육에 대한 열정과 진중함까지도 무시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비록 그 시기 피터스는 엄격하고, 보수적이며, 남성적, 주지교과 중심, 전통적 지식관을 가지고 교육에서의 엄숙주의를 전파했지만 우리가 참고해야 할 시사점을 만만치 않게 남겨 주었다. 우선 당시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언어분석을 통한 교육의 개념 정립은 그 시도 자체가 분석철학과 교육의 만남을 이러낸 것이었다. 아울러 일부 실천가들에 의해 왜곡된 아동중심 교육관, 즉 교육의 내용보다 과정과 방법에 치중하거나 아동의 흥미에 비중을 높게 둔 나머지 교사의 역할이 왜곡, 축소되는 것에 대한 경종을 울렸다. 당연히 그것은 교육의 개념을 정립하는 데 있어 내재적 정당화를 시도했다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개탄하는 것은 교육의 광범한 수단화이다. 오로지 출세의 방편으로, 시험을 위한 도구로 전락한 교육을 근원부터 생각하게 하고 학습자의 흥미나 당장의 쓸모를 넘어 안목을 키우는 것을 강조했다는 것, 그리고 가르치는 교사 역시 수업방법 위주의 교수법을 넘어 교육통찰력을 높여 다시 아이들을 만나게 하는 것 등은 피터스가 오늘 우리 교육에 울리는 경종이다. 특히 교육에 '윤리/도덕적 측면'을 도입하여 논의의 지평을 넓히고자 한 것 역시 피터스다운 접근법이었다. 

그러나, 내재적 정당화와 도덕적으로 온당한 방법, 가치있는 것의 전수 등 합리적 이성에 바탕한 교육을 주장하면서 교육과 삶의 연계 가능성을 멀어지게 했던 것도 사실이다. 지나치게 엄격하고 보수적이며 주지적이고 남성적인 그의 학문적 행보는 교사관, 아동관에 그대로 투영되어 현실교육을 반영하지 못하고 이상화하였다. 특히 국가주의가 득세하던 시절에 인류의 문화유산의 전수에 비중을 둔 그의 지식관은 그의 의도와 무관하게 이데올로기적으로 활용됐다. 교육은 사회진보를 반영하고 그를 통해 미래를 열어가는 실천학문이자, 실천행위 그 자체이다. 현재적 관점에서 피터스의 기여는 여전히 가치있게 회자되어 마땅한 것이지만 교육적 가부장이고자 했던 피터스는 그저 현대 교육학에서는 교육을 사변스럽게 규명하고자 했던 근대 시기 지식인 정도로 치부되고 있다. 일단 4-8장 리뷰는 여기서 종료. 


__________________________


<참고> 피터스의 윤리학과 교육 1-2장은 사실상 피터스 사고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아래 글을 먼저 일고 위 글을 읽는 것이 좋겠다. 피터스가 말하고 있는 평등, 가치, 이익 고려, 자유, 인간존중, 권위, 벌과 훈육 등은 1-2장 '교육의 개념'으로부터 파생한 각론이라 할 수 있다. 11장 <민주주의와 교육>의 경우 듀이의 <민주주의와 교육>에 대한 피터스 자신의 논점을 정리한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역시 의미, 논리적 가정, 정당화 등의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11장은 다른 장과 별도로 리뷰하면 좋겠다. 아래는 피터스 생각의 핵심인 1-2장 <교육의 개념>에 대한 비판적 리뷰이다.  


윤리학과 교육교육인가 윤리인가

 

함영기(2018.11)

 

교육의 개념

 

피터스의 윤리학과 교육을 읽은 사람들의 첫 반응은 어렵다는 것이다교육을 기대하고 읽었는데 철학 이야기로 일관하기 때문이다. ‘교육이란 무엇인가를 따지는 것은 교육의 영역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철학의 영역이다피터스는 분석철학의 기점에서 교육의 개념과 준거를 예리하게 파고든다분석철학은 개념을 명확하게 규정하는 일여러 가지 논의의 형식에 들어있는 논리적 가정을 정당화하는 일에 특별한 관심을 둔다그런데 이 책은 철학과 교육도 아니고 교육철학도 아닌 윤리학과 교육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피터스의 말을 빌려 이 문제를 규명해보자.

 

피터스는 교육철학이 다루어야 할 주요 문제로 교육’, ‘수업’, ‘대학’, ‘학교’ 등 교육의 특수한 개념들의 분석윤리학과 사회철학의 교육적 적용교육내용을 전달하는 활동에 대한 분석교육과정과 관련한 온갖 문제들을 제시하였다그러나 이 책에서 피터스는 이 모든 내용 중에서 윤리학과 사회철학의 교육적 적용에 관한 문제만을 다룬다이 책의 제목의 윤리학과 교육인 이유이다. ‘교육의 개념을 분석하는 일은 피터스의 관심사인 윤리학과 사회철학의 교육적 적용을 분석하기 위한 시작이다.

 

교육은 단 하나의 개념으로 정의되지 않는다교육을 개념화하는 방식은 사회적 정의학교교육에 국한시키는 정의교사와 학생을 전제하는 정의교육의 목표과정방법과 연동하여 내리는 정의 등 다양하다피터스는 분석철학적 방법을 동원한다분석철학은 언어의 의미를 분석하여 의미를 명료히 하는 것을 일차적 과제로 삼는다비트겐 슈타인은 논리철학논고(1921)에서 말하여질 수 있는 것은 명료하게 말해질 수 있고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 및 교육에 동원되는 언어를 분석하여 그 의미를 명확히 하는 것으로 교육실제에 다가서는 일은 얼마나 가능할까그러니 피터스의 책을 읽고 어렵다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은 단지 분석철학적 접근이어서만이 아니라 우리가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교육에 대한 관념에서 비롯한다투입과 산출을 명확히 계량하기 힘들거나인과관계를 선명하게 제시하기 힘들거나효과가 더디게 나타날 뿐만 아니라 그것이 어떤 교육의 효과인지 특정하기 어려운 교육의 속성들은 언어나 기호만으로 교육을 분석하기 힘들다는 것을 반증한다피터스가 말하는 교육의 개념을 보자.

 

교육은 무엇인가 가치 있는 것이 도덕적으로 온당한 방법으로 의도적으로 전달되고 있거나 전달되었다는 것을 함의하고 있다. (23) ... 교육은 무엇인가 가치 있는 것을 추구하는 활동이다.(24)

 

피터스는 지력과 인격을 개발한다는 것은 곧 가치 있는 것을 개발한다고 하는 구체적인 내용을 명시하는 것이며이것이 바로 어떤 사람을 교육한다는 말의 의미(28)라고 말한다아울러 교육의 목적은 특정의 성취나 정신 상태를 명백히 규정함으로써 교육받은 사람이라는 형식적인 개념에 실질적인 내용을 부여한다(28)는 것이다피터스가 했던 방식대로 위 말을 분석한다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무엇인가 가치 있는 것이란 무엇일까도덕적으로 온당한 방법이란 어떤 방법일까의도적 전달이란 무엇일까를 묻고 답하는 것이다.

 

교육은 모종의 가치 있는 것을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 이른바 규범적 준거이다피터스는 이를 교육의 개념 속에 붙박혀 있는 가치즉 내재적 가치로 불렀다내재적 가치란 교육의 쓸모수단과는 다른 좀 더 고상한 무엇피터스에 의하면 인류의 문화유산이다인류의 문화유산에 입문할 땐 지식의 형식을 통한다는 것이 피터스의 설명이다지식의 형식은 1) 인간의 경험이 구조화되고, 2) 분명해지며, 3) 확장되는 독특한 이해방식이다곧 당장의 쓸모에 구애받지 않고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다이와 같이 교육받는 사람은 전체를 보는 안목과 원리의 이해해당 사고에 대한 헌신을 갖는 사람 즉 인지적 준거에 부합하는 사람이다.

 

이제 교육의 개념 중 도덕적으로 온당한 방법으로 지식이 전달돼야 한다는 말을 알아보자여기에 답하기 위해선 인간 존재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인간이 어떤 존재냐 하는 것은 고대로부터 학문하는 자들의 주된 관심사였다피터스는 인간을 이성을 가진 존재로서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존재로 보았다합리적 이성을 가진 존재와 도덕적으로 온당한 방법으로 연결된다덕목으로는 진실 말하기성실성명료성비자의적 태도공평성일관성인간존중 등이다이를 모두 포괄하는 개념은 인간존중이다교육을 훈련과 애써 구분하려 했던 것도 도덕적 온당함즉 인간존중에 대한 강조라고 볼 수 있다.

 

이어서 의도적 전달이란 말을 보자이 말은 앞의 가치 있는 지식과 도덕적 온당함을 유지하면서도 학습자의 의도를 존중하며 전달하는 행위를 말한다피터스는 교육과정적 준거를 밝히면서 학습자의 이해와 자발성을 존중하는 방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학습자의 의도성과 자발성을 결여한 절차들은 제외되어야 한다는 것이다그러나 학습자의 이해 관심에 주목하자는 말에 대하여는 선을 긋는다아이들이 흥미를 느끼지 않더라도 이를 계속 이끌어 주는 자로 교사의 역할을 말함으로써 교육의 과정적 기준을 세운다.

 

요약하면교육이란 모종의 가치 있는 내재적 지식을 전달하는 것으로 이는 규범적 준거에 해당한다인지적 준거는 내재적 가치를 내용 측면에서 구체화한 것으로 지식과 이해안목을 포함한다과정적 준거는 규범적 준거를 방법 측면에서 상세화시킨 것으로 내재적 가치를 실현하는 방법상의 원리다이를 도식화하여 표현해 보겠다.

 

교육의 개념

규범적 준거

(내재적 가치)

내용적 구체화
(모종의 가치 있는 지식을)

인지적 준거

지식이해안목

무기력하지 않은헌신을 포함한

방법적 원리
(도덕적으로 온당한 방법으로)

과정적 준거

도덕적으로 온당한 방법

학습자의 의식과 자발성

(의도적으로 전달)

 

성년식으로서의 교육

 

성년식으로서의 교육에서 피터스는 주형모형과 성장모형이라고 불리는 두 교육이론이 도덕적심리학적으로 결함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두 모형에서 교육자는 학생의 마음속에학생과는 무관한 모종의 결과를 일으키기 위하여 일하는 초연한 조작자로 간주된다는 것이다피터스는 교육받은 사람이란 모종의 정신 상태를 성취한 사람이요그 정신 상태란 바로 바로 전달된 가치 있는 것을 통달하고(규범적 준거그것을 소중히 여기는 상태이며(과정적 준거), 또한 그것을 폭넓은 안목으로 볼 수 있는 자(인지적 준거)라고 말한다이하 이어지는 모든 문장에서 피터스는 자신이 말한 교육의 개념을 수미일관 강조하고 있다앞서 피터스는 교육받은 사람이 되는 데는 또한 일군의 지식과 모종의 개념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기술이나 방법상의 요령을 잡다한 사실의 집합 이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33), 교육받은 사람을 이렇게 전제할 때 교사의 역할을 어떠해야 할까.


교육의 초기 단계에서 교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자기가 알고 있는 사고의 형식 안으로 학생들을 이끌어 들이는 일이다. ... 교사와 학생은 모두 공동의 세계를 탐색하는 경험에 공동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 훌륭한 교사는 학생들이 하루빨리 자기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 힘으로 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다.(74)


교사는 규범적 기준과 내재적 가치에 입각하여 도덕적으로 온당한 방법을 동원해 의도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이라 했다이러한 방법으로 지식이 전수되는 과정을 피터스는 성년식이라 했다가치 있는 활동과 사고그리고 행동양식으로 이끌어 주는 것(입문)시키는 것은 성년식의 개념이자 교사의 역할이라는 것이다주형모형과 성장모형을 양극단으로 몰아붙이며 나온 결론이다.

 

분화된 사고의 형식에서는 내용과 방법이 모두 간주관적이다지식의 체계라는 것은 오랫동안 공적인 검토와 논의에 의하여 확립축적되어 온 유산이며 또한 그 지식의 체계 안에 포함된 개념 구조는 수많은 사람들의 안목을 일정한 방향으로 변화시켜 왔다확립된 지식을 사정하고 새로 발견된 지식에 비추어 그것을 수정 내지 조정하는 비판적 방법이 있다는 것은 곧 지식을 가르치는 자나 배우는 자가 다 같이 따라야 할 간주관적 기준으로서의 공적 원리가 있다는 뜻이다.(75)

 

간주관적 공적 원리는 구성원간(이를테면 교사와 학생)의 주관적 경험이 공감대를 이루면서 추구해야 할 원리를 말한다대단히 이상적인 교사와 학생의 모습이다피터스는 현대사회에서 교사가 감당해야 하는 몫이 이처럼 합리적 이성에 따른 마음의 작동이고학생과 더불어 온전하게 진리탐구에 매진할 수 있다고 가정했다그의 오류는 바람과 당위를 현재적 기점에서 너무 편의적으로 사용했다는 점이다존재해야 할 교사를 현존재로 전제한, ‘바람에 기초하여 교육의 개념을 정의하는 방식은 학교상황을 지나치게 낭만적으로교사 및 학생을 너무 합리적 이성을 가진 존재로 그렸다는 점에서 이후 나머지 논의들을 계몽에 머무르게 하였다아래의 몇 문장은 피터스가 가진 교육에 대한 도덕적이며 이성적인 생각을 드러낸다.


교사에게 요구되는 것은 학생에 대한 강렬한 애정이 아니라 인간적인 존중인 것이다.(83)... 인간에 대한 존중은 상대방을 독립된 의식의 구심점으로 지각할 때 일어나는 감정이다.(84가르침의 마지막 꽃은 교사가 자기의 힘이 자라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기술과 인내와 열성을 가지고 자기의 성역을 탐색할 때 비로소 피어날 것이다.(87)

 

지식

 

피터스는 가치 있는 활동이나 행동 양식으로 향할 때그것은 매우 강력한 동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88)고 말한다여기에 대한 독자의 의문은 정말?’이 될 것이다모종의 가치 있는 지식활동양식에 대한 피터스의 지나친 믿음과 기대는 이를 동기로 바로 연결하는 비약으로 발전한다. ‘모종의 가치 있는 지식이 규범적 기준에서 작동한다는 것이것은 또한 도덕적으로 온당한 방법으로 전수됨을 가정하고 이를 정당화한다는 것은 여기에 교사와 학생의 인간존중이 있고학생의 자발적 의지가 일어난다는 가정은 아래의 몇 가지 의문을 부른다

지식이란 무엇인가?
지식은 누가 어떤 목적으로 생성하는가?
지식은 누구의 이익에 복무하는가?

지식의 사회정치경제적 성격은 무엇인가?

피터스는 가치 있는 지식이 무엇이냐를 묻는 자체가 지식은 가치가 있다는 것을 가정하는 선험적 정당화라고 하였다지식은 진공상태에서 발생하지 않는다그곳에는 사람이 있고 사람간의 관계가 있으며 이들이 모인 사회그리고 경제적 이해관계가 있다이를 조정한다는 정치 역시 바쁘게 작동한다피터스의 모종의 가치 있는 지식과 도덕적 온당함’ 등의 논의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결국 이는 주지교과를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흘렀다학습사태에서 학습자의 정서와 욕구는 얼마나 중요한 요인일까학습자의 누적되는 경험에 비중을 두었다는 사람들은 오로지 학습자의 이해 관심에만 초점을 두었을까피터스는 전통교육과 아동중심교육을 구분하여 비판하였으나 인류의 고유한 문화유산(사실상의 가치 있는 지식)을 윤리적 방식으로 후세에 전수해야 한다는 것에 집착함으로써 지적 전통주의자의 편에 섰다그리하여 교사의 역할은 도덕적인 방식으로 인류의 문화유산을 전수하는’ 전달자에 머문다학생과 더불어 경험을 연속적으로 재구성하거나(듀이), 창조적으로 생성(들뢰즈)하는 것은 이 기준에선 대단히 위험한 행위이다.

 

비판

 

피터스는 좋은 삶이란 합리성을 추구하는 삶으로 보며따라서 교육의 목적은 합리적 마음을 계발하는 데 있다고 본다하지만 합리적 마음은 저절로 달성되지 않으며 지식의 형식에의 입문을 통해야 한다피터스에게 가치 있는 지식(내재적으로 가치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은 교육의 핵심이다또한 그것의 정당화는 궁극적으로 칸트의 선험적 추론에 의한다선험적 정당화는 경험 이전에 인간에게 있는 것을 말한다경험에 앞서 인식의 주관적 형식이 인간에게 주어져 있다고 하는 이론이며 통상 경험판단을 거치지 않고도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이라 본다.

 

유재봉(2000)은 이 주장이 설득력을 갖기 위해선 내재적으로 가치로운 것이 반드시 교육적으로 가치로운 것을 보장하지는 않는다고 보았다피터스는 논리적 가정에 의한 논의 방식즉 어떤 질문 그 자체에 들어 있는 논리적 가정을 드러냄으로써 정당화 하는 방식인 소위 말하는 선험적 논의을 사용했다고 보았다피터스는 왜 저것보다는 이것을 해야 하느냐고 심각하게 질문한다는 것은아무리 초보적인 수준이라 할지라도그 질문을 하는 사람은 이미 교육에서 지식과 이해를 추구하는 것이 가치 있다는 사실을 논리적으로 가정하고 있으며이 점을 들추어냄에 의해 지식과 이해의 가치를 정당화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았다는 것이다다시 말해 선험적 논의는 윤리학의 근본원리나 이론적 가치들이 삶의 형식 속에 논리적으로 붙박여 있는 식으로 논증하는 방식이다이 방식의 논증은 허스트(1975)도 인정하듯이 동의어 반복이거나 순환론적 논리의 위험을 안고 있다이것보다는 저것을 추구하는 것이 왜 이로운가를 넘어서는 왜 우리가 적극적으로 그것을 추구해야 하는 가에 답은 아니라는 것이다.

 

피터스는 교육에서 외재적 목적의 추구와 기술사고방식을 기르는데 목적으로 두는 훈련’, 그리고 교화조건화와 같은 비도덕적 전달방식이 교육실현의 장애요소라고 보았다즉 그가 교육의 개념을 정의할 때 장애가 됐던 요소들을 제거하는 것을 제거하여 본래적 의미를 회복하자고 하였다유재봉(2000)은 교육을 수단화하는 것교육이 전문적 훈련에 국한되는 것그리고 독단적인 전달 방식으로 사람들의 신념을 편협하게 가두어 놓으려는 것에 대한 저항 내지 비판이며교육이 그러한 장애를 벗어나야 한다는 일종의 탄원이라고 보았다아울러 피터스의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지식과 이해를 강조하는 주지주의 교육 혹은 합리주의적 교육으로 이끌었다고 보았다.

 

이론적 교과를 추구하면 할수록 실제 삶과의 관련성이 드러나기보다는 오히려 더 멀어지게 되고우리가 종사하고 있는 사회 안에서 실질적인 좋은 삶을 추구하는 데 무력할 수밖에 없다이러한 비판은 결국 허스트로 하여금 교육을 사회적 실제에의 입문으로 수정하게 만들었다. (유재봉, 2000)

 

피터스의 인간에 대한 이해 방식은 철저하게 합리주의적 전통을 따른다. ...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어 인간의 영혼에 있어 이성의 지배적인 위치를 강조하였고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동물 중에서 가장 훌륭한 까닭은 바로 이성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라 했다그리스 철학자들에게 이성은 곧 도덕이었으며 진리탐구의 방법이었다바꾸어 말하면 인간이 진리를 탐구할 수 있는 것은 보편적 이성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이병승, 2000).

 

피터스는 사회적 존재양식이 인간의 의식을 결정한다고 한 마르크스를 기계적 결정론자로 보면서 자기선택 측면을 간과하고 있다고 보았다마르크스가 인간의 행동 원인을 계급적 충동즉 물질적 욕망으로 설명하듯이 프로이트는 무의식의 심연에 놓여 있는 리비도로 보았다피터스는 이러한 프로이트의 인간존재론에 대하여 책임의 문제를 소홀히 취급했다고 지적한다나아가 피터스는 사르트르가 개인의식의 사적 측면과 개인의 선택에 의한 책임을 강조한 점에 있어서는 옳았지만 자유책임선택의 개념은 그 이상의 설명이 필요하다고 보았다갈등이 진짜 갈등으로 지각되는 것은 오직 개인이 그 갈등되는 규칙들을 자기에게 해당되는 것으로 받아들일 때라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실존주의자들은 선택의 조건과 선택의 이유를 혼동했다고 생각했다(이병승, 2005). 자유롭기 때문에 선택이 가능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선택의 이유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진정한 선택이란 누구나 받아들일 만한 타당하고 근거가 있는 이유를 찾아냄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이다결국 피터스에게 인간이 되기를 배운다는 것은 합리적 사회 안에서 도덕적 주체가 되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피터스의 교육개념은 미시적으로 그 당시 영미교육이 가지고 있던 문제점에 대한 분석에서 비롯하였다다름 아닌 잘못된 듀이 사상의 영향으로 교육을 실제적 효과와 관련하여 규정하려는 경향이다그는 듀이가 교육을 수단적으로 정의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교육을 내재적으로 규정하여 교육의 본질적 가치를 강조하고 싶었다(유재봉임정연, 2002). 모종의 준거를 실현하기 위한 피터스의 교육은 사실상 교육을 학교교육으로 좁게 보았다교육은 학교에서만 일어나는지학교에서 일어나는 것만 교육인지는 살펴볼 일이다아울러 내재적 가치와 외재적 가치의 구분 문제이다. (유재봉임정연, 2002)은 이 구분이 분명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가에 의문을 품었다그리고 교육의 내재적 가치는 유독 지식이해그리고 인지적 안목으로 한정되는가에 대해 의문을 갖는다.

 

결국 피터스의 교육개념은 주지교육에 대한 강조로 비쳐지게 됐으며 지나치게 이론적학문적 지식의 추구로 인간의 정서태도행위욕구기술 등의 측면을 간과했다이론적 합리성을 개발하는 교육은 필연적으로 실제 삶으로부터 유리되는 결과를 초래한다교과는 대부분 명제적 지식으로 이뤄져 있고이러한 지식을 가르칠 때 실제와의 관련 속에서 가르치기 보다는 이론 그 자체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피터스가 생각하는 교사의 역할은 무엇일까그의 글로 보아 교사는 규범적 기준과 내재적 가치를 전수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인지적 기준과 학습자의 안목을 넓히는 사람이다. ‘과정적 기준을 갖추고 도덕적 교수를 하는 사람이다이병승(2010)은 교사가 모두 가치 있는 것들에 헌신하는 것도 아니고 그것을 도덕적으로 온당한 방법으로 전달하고 있는 것도 아니라고 보았다게으른 교사입시지도에 매몰된 교사아이들의 인권을 유린하는 교사일방적 명령으로 가르치는 권위적인 교사가 얼마든지 존재한다이를 이병승은 일종의 자연론적 오류로 보았는데 존재하는 교사로부터 존재해야 할 교사를 이끌어 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교사가 이론과 실제를 함께 다룰 때 지적이고 이론적인 영역뿐만 아니라 실제적 지식과 기술을 가르칠 수 있는데 이러한 통합적 교사상을 그려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보았다이어서 이병승(2010)은 피터스가 그린 이상적인 교사상이 남성 학습자에게는 이로운 사람일 수 있으나 여성 학습자에게는 해로운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고 보았다그가 그린 지식이해인지적 안목 등은 남성 중심적 이데올로기를 반영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예컨대 정서배려 등을 지적으로 가치 있는 활동에서 배제함으로써 성적 불평등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피터스의 교사관에서 나타나는 또 다른 난점은그가 그린 이상적인 교사가 지배 이데올로기를 유지하거나 재생산하는 사람으로 해석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교육을 지나치게 좁고 탈문화적 맥락에서 사용했다는 점이다아울러 교사가 가져야 할 의식 형성자나 전수자의 모습은 있으나 의식의 생성자 및 비판자로서의 모습을 찾기는 힘들다(이병승, 2010). 이병승은 피터스가 교사를 계몽주의적 근대성에 가두고 있다고 하면서 듀이의 실천적 교사관이 피터스의 주지주의적 교사관이 안고 있는 한계를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다고 보았다.

 

나가며

 

피터스는 듀이 이후 교육의 개념을 체계적으로 규정한 학자이다또한 분석철학적 방법으로 교육을 바라본 최초의 학자이다개념 준거의 틀을 만들고 총체적 정의를 시도했다는 것은 그의 큰 공헌이다그가 말한 교육의 개념은 세 가지 준거를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성년식에의 입문이라고 보는 개념은 교육을 학교교육으로교사를 합리적 이성을 갖춘 존재로학생을 인간존중의 바탕 아래 자율성을 가진 존재로 볼 것을 전제한다따라서 그의 글을 읽을 때 세 가지 준거’, ‘합리적 이성’, ‘선험적 정당화 방식을 인정한다면 이 글은 일종의 우리가 가야할 지침서의 성격을 충분히 할 수 있다당시 영미의 교육풍경 등 피터스가 왜 이런 글을 썼을까 하는 배경이론과 실천의 성격학교교육교육의 이데올로기적 기능 등을 배제하고 오로지 합리적 이성으로만 이 책을 대할 수는 없다적어도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교육이라는 이름의 리얼리티는 이렇듯 한가하지 않다세상사 걱정 없이 사변에 빠져 있는 조선 시대의 선비라면 모를까이런 측면에서 이홍우가 내재적 목적의 추구를 성리학으로 연결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무엇보다 교육은 인간의 이해가 각축하는 현실 위에서 이뤄진다내재적 목적과 외재적 목적의 추구가 교육을 통해 눈앞에서 각축한다이때의 교육을 수단을 추구하는 교육으로교화와 훈련으로 치부하고 교육의 개념에서 배제할 때 남는 것은 무엇일까제목에 교육인가 윤리인가를 포함한 이유이다.

 

 

참고문헌

 

유재봉(2000). “피터스와 허스트의 교육사상 비교: ‘교육과 자유교육의 관련성을 중심으로”. 한국교육사학 22(2), 139-156.

유재봉·임정연(2002). “피터스의 교육 개념에 대한 비판적 논의”. 논문집 미상

이병승(2005). “피터스의 교육철학에 나타난 인간존재론 탐구”. 인문학논총 5(1), 107-128.

이병승(2010). “피터스의 교사관에 대한 비판적 고찰”. 교육사상연구 24(1), 117-136.

임정연(2002). J. Dewey와 R. S. Peters의 교육론 비교: ‘민주주의와와 교육을 중심으로성균관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피터스(1966). 윤리학과 교육이홍우·조영태 역(2008). 서울교육과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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