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등특수교사 공부모임
(리뷰) 12월!
고등학교 때 ‘한 아이’란 책을 읽었다. 장애 학생에게 헌신적인 선생님의 이야기를 읽으며 ‘아주 많이’ 감동을 받았고, 나 역시 그런 교육자가 될 것을 막연하게 예감했다. 십여 년이 흘러 교사가 된 지금의 나는 ‘아주 많이’ 삐딱하다. 그리고 불편하다.
- 아이들이 자기의 삶의 경계를 점점 넓혀갈 수 있도록 교사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100p)
- 아이의 태도를 바꾸는 힘은 친절함에 있다. (52p)
저자는 모두가 힘들어 했던 아이를 만났지만 칭찬카드를 이용해 작지만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낸 이야기를 전한다. 그리고 아이의 태도를 바꾸는 힘은 ‘친절함’에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덧붙여 스케이트를 못 탔던 학생들의 사례를 언급하며, 도전을 차단해서는 안 된다고 확신한다.
물론 옳은 말이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싫었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이래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한다고 주먹을 불끈 쥐고 힘주어 말하는 게. 착한 결론을 쉽게 내리는 게. 그러니까 우리 아무리 어렵더라도 다 같이 열심히 달려 보지 않을래, 같은 지나치게 긍정적인 태도를 싫어한다. 특수교사의 바람직한 상(像)을 섣불리 말하지 않으면 좋겠다. 변화되지 않는 아이는 교사가 열심히 노력하지 않거나 혹은 적절한 기회를 주지 않아서일까? 때로 나는 선생님들의 성공적인 학급 운영 사례에서 미묘한 책망을 읽는다.
A교사는 한 부모님으로부터 최고의 교사란 얘기를 들었지만, 다른 학부모님은 민원을 제기하며 그를 고소했다. A 교사는 항상 한결 같았는데, 같은 해에 벌어진 이 상반된 평가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그렇다면 A 교사는 최고의 교사일까, 형편없는 교사일까.
B교사는 그 날도 80kg가 넘는 거구의 남학생에게 머리채가 잡혀서 교실 뒤까지 몇 미터를 질질 끌려갔다. 공격은 항상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순식간에 벌어지곤 했다. 이윽고 남학생은 B교사를 바닥에 패대기쳤다. 교사의 배 위에 올라타더니 괴성을 지르며 목과 머리를 붙들고 사정없이 때렸다. 도움을 받아 겨우 학생을 떼어 놓은 B교사는 목을 다쳤고, 분노와 무기력함과 수치심과 불안으로 오랫동안 힘들어했다. 학부모는 “애가 선생님을 우습게 봤나 봐요. 집에서는 안 그러는데 학교에서 도대체 어떻게 가르치기에 우리 애가 이렇게 화를 내나요.”라고 말하며 교사를 탓했다. 동료 교사들은 B교사가 너무 여리기 때문에 학생을 제대로 잡지 못해서 벌어진 일이라며 학생 보다 우위에 있는 것을 분명하게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A는 아는 선생님 얘기고, B는......
그렇다. 내 얘기다. 자, 아이의 태도를 바꾸는 힘은 친절함에 있을까? 애초에 정답이 없는 건 아닐까? 가끔은 특수교육 전문가들의 확신에 찬 목소리가 되레 상처가 된다. 아래의 문장처럼.
- 선생님들이라면 마찬가지로 우리 교실이 따뜻한 교실인가를 돌아 보셨으면 좋겠다. 혹시 업무에 치여,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내용에 너무 무게를 두어서 빨리빨리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 분위기라면 교실 활동의 과감한 다이어트를 권하고 싶다. 153p
그래서 외려 3번째 장, <함께 가는 길>처럼 쪽팔리고 부끄러운 일화에서 용기를 얻었는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묻더라.
-‘언제까지 특수교사를 할 수 있을까? 다시 태어나도 특수교사를 선택할 것인가?’ 239p
비슷한 고민이 항상 있었다. 왜 우리 반 아이는 똥오줌을 복도에서 싸고 그것도 모자라 벽에 바르는 걸까.
생리대의 역한 냄새를 참아가며 교체하는 교사에게 왜 어떤 어머니는 우리 **이 생리대는 제대로 갈아 주라고 화를 내는 걸까.
일반교사들은 교사의 권리에 대해 자연스럽고 당당하게 주장하는데, 특수교사들만 일상의 부조리함을 꿋꿋하게 감내하며 서른이 넘어서도 착한 아이가 되고 싶어 노력하는 건 아닐까.
역설적이지만 나는 그렇기 때문에 이런 책들이 더 많이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특수교사들끼리만 ‘우리 반에 오늘 이런 일이 있었다’라고 수다 떠는 것에 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더 많은 특수교사들의 입을 통해 솔직 꼴릿 더럽고 때론 수치스러운 이야기들이 발화되고, 팝콘처럼 팡!팡!팡! 자꾸만 터져 나왔으면 좋겠다. 처절하게 실패한 학급 운영, 다시 태어나면 절대로 특수교사를 하지 않겠다는 얘기까지. 직업으로서의 페르소나, 교육자로서의 바람직한 자세를 곱씹지 말고 맨 몸뚱이로. 그렇게 자꾸자꾸 얘기하면 좋겠다. (#미투 말고) #You K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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