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문제 토론방
[칼럼] 교육실패가 부른 참담한 사회
[문화일보 2004-02-02 12:12:00]
초등학교 2학년인 딸아이는 방학중인 요즘 아침마다 집 앞의 공 원으로 운동을 하러 간다. 단짝 친구와 만나 달리기도 하고 줄넘 기도 하고 사방치기도 하면서 운동 겸 놀이 겸 한 시간쯤 뛰다 들어오는 아이에게는 한겨울에도 단내가 난다.
며칠 전 그렇게 운동을 다녀온 딸아이가 이런 말을 했다.
“엄마, 운동을 하는데 어떤 할아버지가 귀엽다면서 우리를 자꾸 와보라고 해서 무서웠어요. 안 가려고 했는데 자꾸만 불러서 하 는 수 없이 갔거든요. 근데 할아버지가 사탕을 주시는 거예요.
받긴 받았는데… 오다가 그냥 버렸어요. 나… 잘한 거죠?” 아이가 그렇게 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평소 엄마인 내가 아이에 게 낯선 사람의 호의를 경계하라고 귀에 못이 박이도록 일러 왔 으니 말이다. 하지만 겨울 해바라기를 하러 공원에 나왔다가 팔 랑거리며 뛰어다니는 계집애들을 보면서 1년이면 서너 번 얼굴 보기도 힘든 손녀 생각이 나서 사탕을 건넸을 노인네가 어쩌면 내친정아버지의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마음이 짠해졌 다.
뭐라고 말해줘야 하나? 대답에 군색한 나는 슬며시 자리를 피해 버리고 말았다.
약 20일 전, 부천에서는 집 앞에서 놀던 초등학생 두 명이 갑자 기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설마 6학년이나 된 아이들이 유괴 를 당했을까 싶어 늑장 대처를 하는 사이에 아이들은 낯선 사람 에게 끌려가 발가벗겨지고 손발까지 꽁꽁 묶인 채로 집 근처 야 산에서 죽어가고 있었다. 지난 설날 연휴는 얼마나 추웠던가….
끝내 주검으로 발견된 아들을 확인하고 땅바닥에 쓰러져 오열하 는 그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나 또한 등골이 얼어붙고 가슴이 졸아드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뉴스를 보면서 눈물을 떨구던 내게 딸아이는 물었다.
“엄마, 그런데 저 오빠들을 누가 그런 거예요?” 나를 바라보는 딸아이의 눈동자가 너무도 맑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뒤숭숭한 세상이다. 특히, 어린 자녀를 둔 부모로서는 그저 곤혹 스러운 나날이다. 아이들을 볼모로 한 끔찍한 사건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터지기 때문이다.
며칠 전 절도 혐의로 구속된 아버지는 매스컴의 덕을 보고자 어 린 자식들에게 거짓말을 시켰단다. 형제는 아버지의 폭력이 두려 워서 아버지가 시킨 대로 ‘3일을 굶었고, 오직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백 리나 되는 길을 걸어 왔다’고 말했던 거였다. 아버지 는 아이들의 갈등과 혼란에 대해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을 했 던 것일까.
가족은 영원한 생명의 연대이며 가정은 최후까지 지켜져야 할 마 음의 보금자리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현실에서 가정은 더 이상 따뜻한 집이 아니며 부모는 더 이상 든든한 울타리가 아니다. 아 이들은 부모의 안색을 살피며 안위를 걱정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 다.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들을 한강에 내던지고 몰래 극약을 먹 여 동반자살을 하는 것은 이제 새로운 뉴스도 아니다. 도대체 아 이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언젠가 이런 이야기 끝에 한 선배는 “운전을 하려면 운전면허증 을 따야 하듯이 부모가 되고 싶은 사람은 부모자격증을 따게 해 야 한다”고 주장했다.글쎄…. 나는 그것 또한 차별이 될 수 있 으므로 그 의견에 적극 찬성하지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올바른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올바른 부모 관’을 먼저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는 동조한다. 내 자식에게 거 짓말을 사주하는 것쯤은 별일 아니고, 내가 낳은 자식의 생명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발상에서 비롯된 비속(卑屬) 살해의 비극, 50%에 육박하는 이혼율, 해체되어 가는 가정…. 이것들은 모두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결국, 교육의 맹점이 아닌가. 철학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청 소년 때, 혹은 성년이 돼서도 결혼이라든지 출산, 육아, 부모의 역할, 노후 문제 등 성인으로서 갖춰야 할 가치관의 확립과 우리 삶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철학 교육을 받지 못했다.
요즘 ‘웰빙(well being)’ 바람이 거세다. 우리 사회의 진정한 웰빙은 올바른 부모교육, 어른교육에서 시작돼야 한다. 우리 청 소년들에게 입시 공부보다 더 화급하고 절실한 것은 철학 교육이 다.
[[박현정 /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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