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문제 토론방
[수업사례] 전쟁참상 화면에 숨죽인 8분
베트남 전쟁 등 인류가 지난 반세기 동안 저지른 비극적인 전쟁의 참상들이 스치듯 화면을 지나간다. 전폭기의 폭격과 치솟는 불기둥, 널부러진 주검들, 가족을 잃고 울부짖는 사람들, 60년대 반전 시위대의 모습 등이 어지럽게 교차하는 영상을 배경으로, 반전 메시지를 담은 가수 강산에의 노래 ‘더 이상 더는’이 흘러 나온다.
지난 26일 오전 서울 송파1동 송파초등학교 5학년8반 교실. 아이들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선생님이 틀어 준 비디오 영상과 음악에 빠져 들고 있다. 미국이 이라크 공격을 시작한 이래 벌써 세 번째 보는 비디오지만, 지겨워하거나 딴전을 부리는 아이는 찾아볼 수 없다. 아이들이 보는 비디오는 반전 뮤직비디오 <더 이상 더는>. ‘이 영상을 전쟁으로 인해 억울하게 죽어간 수많은 영령들에게 바칩니다’라는 자막으로 시작되는 8분짜리 비디오는 강산에가 노래 마지막 소절인 “스탑 더 워”를 외치는 것으로 끝난다. 이 반 담임 정유진 교사는 미국이 이라크 침공을 시작한 지난 20일 “전쟁 때문에 소중한 생명이 덧없이 죽어가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느끼게 해주기 위해 인터넷에서 이 비디오 동영상 파일을 구해 아이들한테 처음으로 보여줬다고 한다.
뮤직비디오 감상이 끝나자 비디오를 보고 난 느낌에 대한 질문과 답변이 이어졌다. “비디오 내용 중 자유의 여신상에 목을 맨 채 죽어 있는 사람은 무엇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나요” “자유의 여신상이 아니라 죽음의 여신상이예요” “미국은 더 이상 평화를 사랑하는 나라가 아니예요.” 정 교사가 “가수 강산에는 자기 노래에서 뭐라고 주장하고 있나요”라고 묻자, 아이들은 한 목소리로 외쳤다. “전쟁을 그만하라!”
미국이 전쟁을 일으킨 표면적인 이유와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도 가졌다. “미국이 겉으로 내세우는 이유는 독재자 후세인 대통령을 몰아내고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를 없애는 것이라고 해요. 그렇다면 미국이 전쟁을 일으킨 다른 속내는 없을까요 각자 한번 생각해 보세요.” 정 교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돈을 벌 수 있으니까” “석유 때문에”라는 답변이 튀어 나왔다.
5학년 국어 교과서에 일부가 소개된, 힘 센 아이가 선생님 몰래 친구들을 괴롭힌다는 내용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마지막 부분에 대해 아이 나름대로 상상을 통해 완성해 보도록 함으로써 강한 자의 폭력의 문제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기도 했다.
전쟁을 앞두고 이라크 고등학생들이 미국 학생들에게 보낸 편지들과, 어린이들이 흔히 묻는 22가지 질문에 대한 노벨상 수상자들의 답변을 묶은 책 <아이들이 묻고 노벨상 수상자들이 답한다>의 내용 가운데 ‘전쟁은 왜 일어나나요’ 부분을 읽고는, 전쟁을 왜 반대해야 하는가를 놓고 생각을 나눴다. “죄없는 사람이 목숨을 잃기 때문에요.” “한번 전쟁을 하면 앞으로도 계속 전쟁을 해야 하기 때문에요.” 아이들은 앞다퉈 나름의 전쟁 반대 이유를 밝혔다. 이 때 정 교사가 한 권의 책을 꺼내 들었다. 팔·다리없이 기형으로 태어나 어미에게 버림받은 원숭이를 데려다 사랑으로 보살피는 일본인 가족의 얘기를 통해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책 <다이고로야, 고마워>였다. “이 책 표지에 쓰여있는 것처럼, 생명은 정녕 그 모습이 어떻든 아름다울 수밖에 없습니다. 선생님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전쟁을 반대하는 이유는 이렇게 소중한 생명들이 죽어가는 것을 그냥 두고볼 수 없기 때문이예요.”
이날 수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아이들이 ‘이런 세상에서 살고 싶어요’를 주제로 만화를 그리고 모둠별로 발표하는 활동이었다. 표현방식은 다 달랐지만, 아이들은 생각은 하나로 모아졌다.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 이 반 태은이는 이런 만화를 그렸다. 노무현 대통령이 ‘노 워’라고 적힌 회견용 탁자에서 “맞습니다. 맞고요. 이제 전쟁 일어나지 않습니다. 부시 대통령도 반성했습니다. 했고요”라고 말하자, 옆에 있던 여학생들이 기뻐하는 모습이었다.
두 시간 가량 이어진 수업은 명상과 ‘평화의 기도’ 낭송으로 끝을 맺었다. 눈을 감은 아이들한테 정 교사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러분은 지금 무슨 꿈을 꾸고 있나요. 이라크 어린이들한테도 분명 꿈이 있을 거예요. 그런데 그 아이들의 꿈은 지금 전쟁의 포화 속에서 사라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꿈이 소중하듯이 이라크 어린이들의 꿈도 소중합니다. 여러분들이 언제까지나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살아 갔으면 좋겠습니다.” 한겨레 이종규 기자 jklee@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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