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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문제 토론방
[교단일기] 추위를 추위로 즐기는 아이들
이곳은 아담한 산을 끼고 있는 시골 마을이다. 3년 전 도시에서 여기로 왔을 때나 지금이나, 마을 한 바퀴 눈으로 휙 에두르는 것만으로 여전히 가슴 일렁이는 곳이다. 산이 좋은 나는 마을 산을 속속들이 밟는 재미가 으뜸인 줄 알고 살았다. 때가 되면 몸이 근질근질 산에 가야 했다. 봄이 왔으니까, 아카시아 향기가 유혹하고, 취나물 고사리가 손짓하고, 산딸기 오디가 부르는데. 가을이면 낙엽 스키도 타야 하고. 겨울만 안 가봤다. 궁금했다. 지난 크리스마스 때 내린 눈이 능선과 골짜기마다 히끗히끗한데, 핏줄 같은 가지들 사이로 따스한 빛이 투과하는 겨울 산, 그 품속에 안기는 맛은 어떨까.
생각난 김에 집에 놀러온 아이들에게 말했다. “낼 아침 산에 갈래?” 했더니 녀석들, “선생님 집에서 자고 가면 안 돼요?” 되물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바꿔준 전화로 일일이 인사드리고 저녁을 먹이고 이부자리를 펴주는 일까지 고스란히 내 몫이 되었다.
오랜만에 오르는 산길이었다. 가슴 속을 통풍시키는 것은 언제나 좋다. 산 공기가 달았다. 발밑에선 두툼한 눈뭉치들이 꿈적거리고. 잎을 떨궈내 맨송맨송한 가지와 거칠게 갈라진 허리께 껍질들, 내 늘 숭배해마지 않는 나무들은 매운 바람과 처연히 맞서고 있었다. 숨이 차고 종아리가 아플 무렵, 태양은 비탈진 곳을 넓게 덮어주고 있었다. 우리는 거기 바싹 마른 낙엽 위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마른 침을 삼켰다. 숨쉴 때마다 뽀얀 김이 폭폭 나왔다.
웬만큼 쉬고 일어나려니 드디어 녀석들이 본색을 드러냈다. 눈썰매를 타러 가자는 것이었다. 얼마를 가자 아이들이 말하던 그 현장이 나타났다. 한 20m 정도의 급경사. 그것도 S자로 완만히 굽었고 폭은 2m 안짝이었다. 코스 주변엔 울타리라고 할 만한 나무도 없고 아래쪽엔 도랑이 흐르고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 아슬아슬했다. 아이들은 어디서인지 비료 부대를 들고 나타났다. 과수원 짚더미에서 한 웅큼씩 짚을 빼내 부대 안에 쑤셔 넣었다. “조심하래이…”. 그런데 가관이었다. 깔끔하게 내려오는 놈도 있었지만 사지를 벌린 채 그냥 온몸으로 길 닦아 놓는 놈, 데굴데굴 뒹굴어 고꾸라지는 놈, 유달리 몸집 작은 것이 유달리 뚱뚱한 제 형한테 깔려 비명을 지르며 내려오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모두 S자로 굽은 곳을 길들이지 못한 데서 나오는 거였다.
“선생님도 해 봐요. 얼마나 재밌는 데여”. 나도? 한 놈이 눈웃음치면서 건네준 부대 위에 앉아 주둥이를 꽉 잡았다. 출발! 순식간이었다. 아무 보호막 없이, 빠른 질주에도 눈을 부릅뜨고 방향을 챙기는 맛이란. 처음은 무난했는데, 그러나 바닥으로부터 양 발을 거두면서 내 모습은 처참하게 망가져 갔다. 대자로 뻗어 대패처럼 밀려가기도 하고, 잠바가 벗겨져 날개달린 천사처럼 팔다리만 허우적대고. 내 모습이 그렇게들 재밌나. 어쨌든 잘 해보려고 애쓰는 나에 대한 배려는 없고 요놈들 웃느라 비칠비칠 쓰러지기 일쑤였다.
방학 첫날부터 동네방네 헤집고 다니며 놀았단다. 고드름으로 칼싸움, 편 나눠 눈싸움, 좋은 눈썰매장 찾아 골골 헤매기도 하고. 그래서 어느 집 처마 끝의 고드름이 굵고 긴지, 마을에서 눈썰매 타기가 제일 좋은 곳이 어딘지 훤하단다. 우연인지 얘네들은 편부 편모에다 학원을 안 다닌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 조건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시간을 허락했을까. 어쨌든 그렇게 몰려다니며 추위를 추위로 당당하게 즐기는, 밖에서 자연 속에서 신나게 놀거리를 찾아다니는 이 아이들이, 나는 밤 하늘에 푸르게 빛나는 저 별 만큼이나 예뻐보이는 것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 즐거움을 따로이 가르쳐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눈이 왔으니 눈싸움 하자, 눈썰매 타자, 불러도 조용…. 대답 없는 세상이 되었다. “얘들이 안 나와요. 다들 컴퓨터 게임만 해여…”. 한 녀석의 볼멘소리가 아니어도 짐작하긴 어렵지 않다. 물론 다는 아니겠지. 다는 아니겠지만 주변의 이 적막함이 적잖이 신경 쓰인다. 생각하면 자꾸 씁쓸해진다. 방학이라…, 얘들아, 어떻게들 지내고 있니.
경향신문〈최향옥/김천 구성초등 양각분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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