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문제 토론방
전교조 죽이기
한 초등학교 교장의 자살사건을 계기로 수구세력의 ‘전교조 죽이기’가 한창이다. 교육계 수구세력은 물론, 각계 수구세력들이 ‘과거의 용사들처럼 모인’ 이 ‘전교조 죽이기’ 전선에서 선봉을 맡은 세력은 역시 수구신문들이다. 그들은 50대 교장의 ‘자살’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교사들의 ‘월권 행위’가 저지른 ‘타살’로 단순화하는 무뇌아 논리를 펴면서 전교조에 대한 마녀 사냥식 여론재판에 앞장서고 있다.
아이들 죽음은 왜 방관하나
그런데 실로 이해하기 어려운 점은 교장의 죽음에 대해선 이처럼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화할 줄 아는 그들이 어린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억압과 학대의 교육 현실에 대해서는 짐짓 모른 체한다는 사실이다. 모든 죽음은 슬픈 것이어서 두 죽음을 비교하고 싶진 않지만, 50대 학교장의 자살과 어린아이들의 자살 중에서 어느 쪽이 더 개인적 차원의 문제이며, 어느 쪽에 더 사회적 물음을 던져야 하는가. 교육 자체와 갖는 관련성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어느 쪽에 더 근원적 물음을 던져야 하는가. 아이들의 죽음은 사회 전체의 잘못이어서 책임질 자가 없고, 교장의 죽음은 전교조라는 과녁이 있어서인가. 초등학생이 자유로운 물고기를 부러워하며 목숨을 끊고, 입시생이 수능점수 몇 점 때문에 목숨을 끊는 교육 현실을 방관해온 세력일수록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데, 그들이 교장의 죽음을 이용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드는 것은 나만의 일일까.
이번 사건의 정황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가장 민주적이어야 할 학교에 권위주의적인 위계질서가 관철되고 있다는 점이다. 교사에게 일상적인 차 시중을 요구하는 것은 민주적 인간관계의 틀을 분명 벗어난 것이며, 불안정한 기간제 교사의 처지로선 봉건적 굴종을 강요받은 것이나 진배없다. 이 점에 대한 반성적 성찰은 찾기 어려운 반면, 수구세력들은 마치 ‘바로 이 때다!’ 하는 식으로 전교조를 주된 타격 대상으로 삼아 벌떼처럼 덤벼들고 있다. 노태우 정권 당시 전교조 교사 1500여명을 학교에서 추방시켰던 정원식 총리에 대한 밀가루와 달걀 투척사건을 빌미로 공안정국을 유도했던 일을 연상시킨다.
실상 이번 수구세력의 ‘전교조 죽이기’ 시도는 노무현 정권이 불러올 수 있는 개혁바람의 불똥이 지금까지 누려온 기득권에 튀지 않을까 하는 위기의식의 표현이며 발로다. 그런데 개혁에 기대를 모으게 했던 새 교육부총리가 ‘교육철학의 빈곤’을 보여주고 있으니 아이러니한 상황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 구성원들에게 충분히 경쟁을 부추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연대의식을 심어줘야 하는 교육이 더욱 경쟁을 부추기는 현실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찾기 어렵고, 교육행정 정보시스템(네이스)에 대한 견해를 스스로 뒤집은 데서 알 수 있듯이 수구적 교육관료들에게서 거꾸로 포섭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의 인권침해 소지에 대한 논의는 그만 두더라도 사회 구성원들을 관리·통제하는 국가주의 교육에 대한 문제의식의 결핍을 드러낸 것이다.
경쟁의식이 연대의식을 완전히 압도하는 사회환경에서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를 주입시켜 대부분의 사회 구성원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을 갖게 하는 국가주의 교육은 경쟁게임에서 승리한 사회상층이 특권을 누리면서 견제와 비판 없이 지배하도록 하는 강력한 도구이며 기제다. 이 점은 이번 사건에 대해 적잖은 사회 구성원들이 비판의식 없이 수구신문들이 펼치는 단순논리를 그대로 따르면서 권위와 질서 이데올로기에 스스로 복속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국가주의 교육에 찌든 현실
전교조를 두고 ‘강성’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전교조가 강성인 것은 경쟁의식 부추기기와 국가주의 교육으로 찌든 우리의 척박한 교육 현실의 반영이며, 반세기 동안 그것을 통해 살찐 수구세력과 벌이는 ‘개혁이냐, 수구냐’의 전선이 요구한 것이다.
홍세화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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