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문제 토론방
[다시보기] 성급한 보도, 실종된 진실
교장의 자살로 세인의 관심을 받게 된 보성 초등학교의 기간제 여교사는 해임하고 전교조 여교사 둘은 대기발령한다는 충남 교육청의 처리 결정이 나왔다. 적어도 현재까지의 처리는 `차시중을 들라고 한 것에 항의한’ 기간제 여교사와 이를 도와준 전교조 여교사들이 가해자이고 유죄라는 것이다. 정말 그런가 물론 항의만을 이유로 징계를 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무마하는 방식의 하나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면 왜 이러한 결과가 나온 것일까.
언론의 보도 행태가 이번에도 충분한 `기여’를 했다. 한 생명이 목숨을 버린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사건의 본질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언론들은 교장의 자살 사건을 보도하면서 본말을 뒤바꿨다.
먼저 언론은 이전에도 익히 보였던 기민한 `과감성’을 발휘하였다. 교장의 자살이 알려지자 교장이 왜 자살했는가에 대해 차분히 따져 보기도 전에 교장의 자살 원인에 대해 `언론재판’을 했다. “전교조 사과요구에 고민 초등학교 교장 자살(<국민일보>, 5일)”, “전교조와 갈등 초등학교장 자살, 학교 홈페이지 잇따른 비난글에 시달려(<조선일보>, 5일)”, “교권침해 사과요구 받은 초등교 교장 목매 자살(<세계일보>, 5일)” 등의 제목을 일제히 달았다.
물론 모든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당시는 초등학교 교장이 전교조의 사과 요구를 받은 사실이 있고, 또 그 사람이 자살한 사실이 있을 뿐 그 둘 사이의 관계가 밝혀진 바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앞의 제목들을 본 독자는 대부분 전교조의 사과요구에 시달려 자살한 것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세계일보는 아예 “전교조의 사과요구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7일)으로 규정해버렸다.
이후 전교조와 서 교장이 합의했고, 교감이 합의를 거부했고, 교장단 회의에 갔다 온 이후 교장이 자살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이 과정이 교장이 고민하다 자살하게 된 이유라고 `시나리오’를 써 볼 수는 없을까 이전의 추측 보도 식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사실’들은 주어졌다. 그런데 전교조의 추론에 대해 중앙일보는 사설을 통해 그래서는 안 된다고 충고하였다. 사건의 수사를 좀 더 기다려 보라고. 언론은 추측해도 되고 전교조는 추론해서는 안 되는가
이후에도 언론은 서 교장 부인의 `사부곡’(조선)을 기사화하고 발견된 서 교장의 메모는 크게 다루면서도 진 교사의 주장이나, 전교조의 주장은 축약하거나 다루지 않는 등 아직 결론 나지 않은 사안에 대한 최소한의 객관성도 유지하지 못하였다.
결국 지금까지도 이 사건을 냉정하고 차분하게 조사하고 접근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초기에 언론이 이미 이 사건을 전교조와 자살한 초등학교 교장 사건으로 규정하는 대세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기간제 여교사라도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하면 항의하고, 그로 인해 불이익을 받았다고 생각하면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이 당연한 권리이다. 교원의 처우와 관련된 일이라면 노조원이 아니더라도 관심을 기울이고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 전교조의 일이다. 교장이 죽지 않았더라도 언론은 이것을 부인했을까 그랬을 것 같다. 교장이 죽기 전에는 부당한 대우를 받고도 참고 지내야 하는 기간제 여교사의 문제가 기사화 된 적도 없으며, 교단에서 성차별 받는 여교사들 문제가 기존 언론에서 다루어진 바를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번 언론의 보도를 보면서 지난 시대를 풍미했던 한 흐름을 다시 보았다. 즉 집단화되는 약자에 대한 기득권의 반발 말이다. 나는 전교조 교사를 해직시켰던 총리에게 대학생이 밀가루를 뿌린 사건으로 여론을 반전시켰던 언론보도를 기억한다. 자살한 한 교장의 인권도 중요하지만 부당한 대우, 권리를 침해받는 다수의 권리를 제대로 조명하는 것이 공정한 언론의 역할이다.
김서중/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한겨레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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