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휴가를 가는 담임 대신 들어오는 냉정한 원칙주의자인 독일어 교사 주판, 자살하는 학생 사비나... 여기까지 영화는 급하게 달려간다. 그리고 많은 부분 사비나의 죽음 이후 펼쳐지는 학교 구성원들의 심리와 행동을 묘사한다. 영화는 “인간의 죽음은 그 자신이 아니라 살아있는 자의 문제”라는 토마스 만의 말을 붙들고 늘어진다.
정황상 주판의 충고와 사비나의 자살은 인과관계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영화는 이 부분을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학생들의 여러 말과 행동에서 담아내려 한다. 학생들의 심리와 행동은 비교적 잘 묘사됐고, 끝까지 냉정함을 잃지 않는 주판 역시 영화적 긴장을 불러오는데 한 몫을 한다.
여기서는 사비나의 자살 이전과 이후 인간 군상의 심리 흐름에 카메라가 근접하지만, 그것을 '어떤 사건'으로 바꾸어도 의미는 충분히 살아난다. 슬로베니아 학교의 한 교실, 그것을 한국에 옮겨 두어도 역시 의미 훼손은 없다. 타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속살을 보는 듯한 착각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완전한 소통이라는 것이 사람 사이에 가능한 것일까? 말하자면 록 비첵(감독)은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리얼리티를 가감없이 묘사하는 것을 통해 타인에 대하여 완벽한 이해에 이르는 것은 애초부터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다양한 개성을 가진 아이들, 아이들과 꼭 닮은 부모들, 문제해결의 방법, 어디에도 답은 없다. 여전히 '인간의 죽음은 그 자신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의 문제'라는 말만 공허하게 남을 뿐이다.
이 영화는 깔끔하게 결말이 나는 것도 아니고, 사비나를 자살로 몰고간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는 것도 아니며, 인간 군상들의 불통이 치유될 희망을 보이지도 않는다. 오히려 편견과 차이는 심화하고 화해는 요원하다. 가르치는 것을 업으로 하는 자들에게는 끝까지 우울함을 선물하는 몹쓸 영화.
록비첵 감독의 <클래스 에너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