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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컴지기 칼럼

[신간안내] 교사, 학습공동체에서 미래교육을 상상하다(함영기 지음)
교육의 주체가 그들의 언어로 미래교육을 상상하는 이야기


누가 학교를 붕괴시키고 있는가에 대한 반론(99.11)

함영기 | 2003.04.22 10:08 | 조회 6645 | 공감 0 | 비공감 0
이교수의 글에 대한 교실밖 운영자의 반론

성공회대 이진경교수의 누가 학교를 붕괴시키고 있는가라는 글을 읽고
평소 이 문제에 대하여 큰 관심을 가져왔던 필자는 이교수의 문제의식과
단정적인 결어에 대하여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이교수는 처음 '누가 학교를 붕괴시키고 있는가'라고 물음을 던지면서
글을 시작한다. 그래서 나는 흥미를 가지고 이교수가 도대체 누구를
지목하는지 살펴보기로 했다. 왜냐하면 제목에서부터 '누가'를 강조했기
때문이다. 그 누구를 지칭하고 있는지(개인이든 집단이든),
아니면 사람으로써 누구가 아닌 '사회적 현상'이나 혹은 '어떤 제도' 등의
분석이 나오기를 기대하고서 말이다. 그런데 이교수는 정작 원인을 밝히는
대목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짧은 글에서 원인에 대한 어설픈 진단을 내리는 건
한없는 논란의 바다에 돌멩이 하나 던지는 일일 거다...

그렇다. 어설픈 진단은 내리지 않는 것이 좋다. 진단만 난무하고 아무런
실천적인 대안이 없는 글은 논란의 바다에 돌멩이 하나(파문을 일으키기 못
한다는 뜻)정도가 아니라 읽는 사람을 짜증나게 만들 수 있다.
이하 계속되는 글에서 이교수는 작금의 교실붕괴 현상을 스케치하고 있다.
교사들의 문제를 지적하는 대목에서 이교수가 바라보는 대교사관은
다음과 같다.

한편, 아이들의 지적 호기심에는 관심도 없고, 아이들의 다양한 욕망이나 능력을 수용할 아량이나 힘이 없으며, 오직 입시를 향해 나아가길 요구하고, 말 잘 듣는 범생이를 요구하고, 거기서 벗어날 땐 가차없이 내던져버리거나 차라리 `방해 말고 엎드려 자라'고 권하는 교사들. 혹은 교실붕괴가 심각한 문제로 떠오른 뒤에도 그것이 정년 단축 때문에 그렇다면서 오직 자신의 일자리만을 걱정하는 교사들. 혹은 교육이란 이름으로 감정을 풀어헤쳐 놓고 자신에게 대드는 싸가지 없는 학생들을 신고해 경찰서로 보내는 교사들. 이들 역시 학교교육을 포기한, 아니 거부한 사람들이다.

이 대목에서 필자는 이교수가 정말로 사회학을 전공하는 교수인가를
의심하게 되었다. 본시 사회학에서 중요한 것은 현상에 대한 객관적이고도
타당한 관찰이다. 이 작업이 얼마나 '객관적 실재'에 접근하느냐에 따라서
이 작업에 근거한 결론이 신뢰성을 갖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정년 단축 때문에 그렇다면서 오직 자신의 일자리만을 걱정하는 교사
들...','자신에게 대드는 싸가지 없는 학생들을 신고해 경찰서로 보내는 교사
들...' 도대체 어떤 객관적 지표로 일간지에 이런 글을 쓰는 것일까?
앞부분은 다분히 추상적이므로 그렇다치자. 아니 오히려 필자는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일자리를 걱정하는 것'이 지극히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자신의 일자리를 걱정하는 교사들때문에 교실붕괴현상이 가속화
되었노라고 주장하는 이교수의 진단에 있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 선생이 제자를 경찰서로 보낸다는 대목은 당연히 명백한 근거를
필요로 한다. 그러한 지적은 많은 교사들에 대한 모욕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냥 '가정'이라면 이교수의 글은 대단히 무책임하고 선동적이다.
진단의 오류는 처방의 오류로 발전하는 것이 필연적이다.
좀더 읽어보자. 근본적인 문제로 접근해가면 이교수는 '현재의 공교육 체제'를
주된 원인으로 놓고 있다.

문제는 사실 더욱 근본적이다. 나가서 배우는 사람, 보내는 사람, 그리고 가르치는 사람들 모두 이렇게 거부하는 경우라면 문제는 차라리 현재의 학교교육 자체에 있는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그건 동질화한 학급 안에 많은 아이들을 집어넣고, 근대적 노동자, 근대의 개인으로 훈련·훈육하며, 그런 생활에 필요한 지식을 주입하는 산업적 계몽 모델 자체의 문제는 아닐까.

우선, 필자는 작금의 교실붕괴현상이 '공교육의 해체를 알리는 서막'이
아니라 오히려 '공교육 강화'의 필요성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외형화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수익자 중심의 교육을 강조하면서 지식정보화사회에
걸맞는 인간형으로 키우자는 것은 90년대 들어 일관되게 추진되어온 교육정책
의 골간이다. 공교육의 위기를 수혜자들의 부담으로 전가시키고
새로운 경쟁체제를 이끌어 내어 공교육비를 줄이면서
효율성과 수월성을 추구하자 는 의도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 논리에
종속된 교육정책'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렇다면 이교수는 위의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 논리에 걸맞는 교육정책의
기조를 옹호하는 것인지 답변을 해야 한다. 지금까지도 '산업적 계몽 모델'이
유효한지는 잘 모르겠으나 이교수의 발상은 현재 교실붕괴현상에 대하여
치유로써의 대안을 생각하기보다 '붕괴의 가속화'를 선동하고 있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필자의 이런 생각이 '오해'가 아니라는 것은 이 교수의 '선동적
결론맺음'에서 확인된다.


죽을 때가 된 건 죽어야 하고, 무너질 때가 된 건 무너져야 한다. 그것을 억지로 막는 것은 거대한 폭발과 끔찍한 파국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게 자연의 섭리요, 우리 인간사회의 섭리다. 이런 의미에서 저 떠들썩한 `붕괴'는 이미 눈앞에 닥쳐온 현실의 한 징후일 뿐이다. 그것은 기존의 교육방식은 물론, 기존의 교육 개념 자체가 이미 수명이 다했음을 알려주는 지표다. 자본주의 자체도 그런 19세기적 교육 모델로는 감당할 수 없는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현명함이란 이미 과숙한 붕괴를 개탄하거나 억지로 봉합하는 게 아니라, 이 위기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돌파할 새로운 시도들을 적극 찾아내는 것이다. 기존 학교교육을 거부한 당사자 스스로. 바로 우리 스스로.


위 대목이 이교수가 내리고 있는 결론이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직시하고
있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과거 라이머(학교는 죽었다의 저자)교수나
이반 일리치(탈학교론을 주장한 교육학자)의 주장과 일견 비슷하기도 하다.
또 최근의 일부 학자들의 '공교육 패러다임 전환론'과도 닿아있는 듯 보인다.

자, 이쯤해서 필자도 결론을 내리고자 한다.
대안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절대로 그림을 그리거나 무책임한 환상을
선동해서는 안된다. 필자는 '공교육 체계'의 질적강화가 무엇보다도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교육재정의 획기적 증액으로 죽어가는 학교를
살려야 하며, 학급당 학생수, 교사1인당 학생수를 줄여야 하는 것은 물론,
교육여건과 시설에 아낌없이 투자해야 된다고 주장한다.
지금이 적기이다. 다른 어떤 예산보다도 우선하여 배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나마 그것이 전체적으로 볼 때는 '싸게 먹히는'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이교수가 답할 차례이다.

'죽을 때가 된 건 죽어야 하고, 무너질 때가 된 건 무너져야 한다.
그것을 억지로 막는 것은 거대한 폭발과 끔찍한 파국을 준비하는 것이다' 에서
말하듯, 끔찍한 파국의 모습을 설명하고 학교를 거부한 당사자가 찾아나설 수 있는 새로운 시도가 무엇인지 명쾌하게 답해주었으면 좋겠다.

낭만적이고 무책임한 선동으로는 안된다. '교육'을 가지고 논할 때는
더욱 그러하다.

교실이 어렵다고 하니까 천박스런 저널리즘이 달려들어 좀더 드라마틱하게
포장해내고 학자들은 손에 잡히지 않는 진단을 일삼으며 '그림과 다를바 없는'
대안을 제시하기에 바쁘고... 정작 교사들 몇 사람이나 만나보고 이야기하는
것인지, 도대체 몇 명의 학생들과 인터뷰를 해봤는지...

정말 누가 학교의 붕괴를 선동하는가?

1999년 11월 교실밖선생님의 운영자 함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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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이진경교수의 글 전문입니다.(운영자 주)

[야-한국사회] /누가 학교를 붕괴시키고 있는가/이진경/성공회대

교실이, 학교가, 교육이 무너지고 있다는 우려와 개탄의 소리가 전에 없이 무겁고 심각하게 우리의 주변을 맴돌고 있다. 한편에서는 무너지는 학교와 막나가는 청소년들에 대해 고심하면서, 그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 학교교육을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진지한 반성이 있고, 반대편에서는 학교와 교사들의, 임금이나 부모와 맞먹던 권위의 실추를 걱정하면서 `싸가지 없는' 학생들을 겨냥하는 격렬한 비난의 소리가 있다. 물론 비록 20여년 전에 학교를 다녔지만, 아직까지도 지울 수 없는, 점잖게 말하면 `삼강오륜'에 걸맞지 않은 언행으로 치를 떨게 하던 교사들의 기억이 너무도 강렬하게 남아 있어서인지, 걱정해야 할 것은 단지 학생들의 `싸가지'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 비난의 반대편에 서 있다.

그런데 대체 누가 학교를 이 꼴로 만들어버렸나. 이 짧은 글에서 원인에 대한 어설픈 진단을 내리는 건 한없는 논란의 바다에 돌멩이 하나 던지는 일일 거다. 하지만 분명한 건 대다수 학생들이 학교와 교사의 가르침을 거부하고 있다는 거다. 그러나 학생들만이 학교교육을 거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과외나 학원 없이는 제대로 공부하리라는 믿음을 가질 수 없고, 촌지 없이는 교사도 믿을 수 없는 부모들. 그들 말로는 수업을 믿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고, 교사를 믿는 것은 순진한 짓이다. 그들은 학교교육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아이들의 지적 호기심에는 관심도 없고, 아이들의 다양한 욕망이나 능력을 수용할 아량이나 힘이 없으며, 오직 입시를 향해 나아가길 요구하고, 말 잘 듣는 범생이를 요구하고, 거기서 벗어날 땐 가차없이 내던져버리거나 차라리 `방해 말고 엎드려 자라'고 권하는 교사들. 혹은 교실붕괴가 심각한 문제로 떠오른 뒤에도 그것이 정년 단축 때문에 그렇다면서 오직 자신의 일자리만을 걱정하는 교사들. 혹은 교육이란 이름으로 감정을 풀어헤쳐 놓고 자신에게 대드는 싸가지 없는 학생들을 신고해 경찰서로 보내는 교사들. 이들 역시 학교교육을 포기한, 아니 거부한 사람들이다.

한두사람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무언가를 거부한다면 거기엔 틀림없이 어떤 이유가 있다. 학생들의 거부, 부모들의 거부, 교사들의 거부, 모두 나름의 이유가 있다. 대학에 대한 미련은 논외로 한다 해도, 어차피 좋은 곳에 갈 수 있는 소수를 빼고는 지적 관심이나 삶에 관한 촉발을 잃은 일방적·획일적 교육, 혹은 좋은 대학 졸업장이 성공은 그만두고라도 취업의 필요조건이 된 이른바 `학력사회', 아니면 하나하나에 관심을 갖고 가르치기엔 너무도 많은 학생들, 항상 새로이 공부를 하기엔 너무도 부족한 시간, 입시에 통과한 학생 수와 사고 친 학생 수가 교사의 능력을 재는 유일한 척도인 학교.

문제는 사실 더욱 근본적이다. 나가서 배우는 사람, 보내는 사람, 그리고 가르치는 사람들 모두 이렇게 거부하는 경우라면 문제는 차라리 현재의 학교교육 자체에 있는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그건 동질화한 학급 안에 많은 아이들을 집어넣고, 근대적 노동자, 근대의 개인으로 훈련·훈육하며, 그런 생활에 필요한 지식을 주입하는 산업적 계몽 모델 자체의 문제는 아닐까.

죽을 때가 된 건 죽어야 하고, 무너질 때가 된 건 무너져야 한다. 그것을 억지로 막는 것은 거대한 폭발과 끔찍한 파국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게 자연의 섭리요, 우리 인간사회의 섭리다. 이런 의미에서 저 떠들썩한 `붕괴'는 이미 눈앞에 닥쳐온 현실의 한 징후일 뿐이다. 그것은 기존의 교육방식은 물론, 기존의 교육 개념 자체가 이미 수명이 다했음을 알려주는 지표다. 자본주의 자체도 그런 19세기적 교육 모델로는 감당할 수 없는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현명함이란 이미 과숙한 붕괴를 개탄하거나 억지로 봉합하는 게 아니라, 이 위기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돌파할 새로운 시도들을 적극 찾아내는 것이다. 기존 학교교육을 거부한 당사자 스스로. 바로 우리 스스로.

이진경/성공회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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