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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컴지기 칼럼
교육의 주체가 그들의 언어로 미래교육을 상상하는 이야기
밝은 모습이 고마울 뿐 (2001.8)
우리 부부는 두 아이와 함께 살고 있다. 큰 아이는 초등학교 3학년으로 아들이고, 작은 아이는 1학년인데 딸이다. 부부교사인지라 특별하고도 대단한 자녀교육관으로 무장하고 아이들을 키울 것 같지만 실은 우리 부부는 요즘 한국사회 기준으로 보면 빵점 짜리 엄마, 아빠이다. 아이들의 무질서하기 이를 데 없는 생활은 그렇다고 치고, 공부도 썩 잘하는 편이 아니다. 공부를 못하면 잘 놀기라도 해야 할텐데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편도 아니다. 물론 아이들이 공부를 못하거나 사회성이 부족한 까닭은 부모의 탓이 클 것이다.
남들처럼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한글을 깨치게 하고, 영어 공부를 시킨 적이 없으니 공부를 못하는 것이야 당연한 귀결이요, 맞벌이 부부들이 다 그렇듯이 이웃 간에 교제가 활발치 못하니 아이들도 부모에게 사회화를 배울 기회가 없었을 터이다. 더구나 그동안 줄곧 아파트 생활만 해왔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그나마 아이들이 다니는 피아노 학원도 무슨 특별한 목표가 있다기보다 방과후에 아이들을 맡아줄 마땅한 장소가 없으므로 그저 '한 시간이라도 아이들을 좀 맡아 주십사' 하는 별로 순수하지 못한 동기에 기초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우리 아이들이 요즘 체르니 몇 번을 하고 있는지, 어떤 이론을 배우고 있는지 도무지 알지 못한다. 아이들도 빵점 부모에 잘 길들여져 새삼스럽게 공부를 간섭하려 하거나 학원을 하나 더 늘려 보내려면 이러저러한 이유를 그럴싸하게 붙여 거부하기도 한다.
가끔 아이들 교육에 관한 주제로 토론을 해보기도 하지만 대개는 뚜렷한 결론 없이 '환멸스러운 한국의 교육현실'을 토로하다가 이내 지치고 만다. '남들처럼 똑 같이 경쟁에 내몰리게 하는 교육은 하지 않을 거야'라고 다짐이야 하지만 학교라는 사회에 썩 훌륭하게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보면 우리 부부는 가슴 한켠에 늘 답답함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만의 명쾌한 자녀교육방침도 가지고 있지 못하니 남들에게 '우리는 교사요'라고 말하기도 머쓱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남들이 '효과적인 자녀교육'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별로 할 말이 없어서 뒷전에 물러서기 일쑤이다. 아마 아내도 그런 모양이다.
가끔 우리 식구들이 활기에 넘칠 때는 큰 아이가 요리에 관한 이야기를 하거나 작은 아이가 자기가 그린 그림을 가족들에게 보여주며 설명할 때이다. 큰 아이는 요리사겸 식당 주인이 꿈이다. 2층으로 된 식당을 운영하는 것이 꿈이라며 꽤 세밀한 설계 도면을 작성해온다. 식탁은 어떻게 배치하고 주방에는 어떤 기구를 들여놓고 메뉴는 이렇게 하겠다는 것을 설계도면을 놓고 가족들에게 설명할 때면 이 녀석의 눈이 비로소 반짝거린다.
딸아이는 그림을 자주 그린다. '다작'을 하는 편이어서 어떤 때에는 하루에 10여 편의 그림을 그려와 신나게 발표한다. 아직은 '때묻지 않은' 아이다운 그림을 곧잘 그린다. 부모에 눈으로 보기에도 '이 그림 속의 얼굴은 살아 있는 것 같다.'고 감탄할 때가 많다. 다른 것은 제약이 좀 있는 편이지만 딸아이가 그림 그리는데 필요한 스케치북과 그림물감은 아낌없이 공급하고 있다.
다른 것은 몰라도 큰 아이가 식당 설계를 하거나 작은 아이가 그림을 그리는 순간만큼은 행복해하는 것이 눈에 보인다. 번듯한 식당 주인이 되지 못할 수도 있고 이름 있는 화가가 되지 못할 가능성이 더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현재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중요하지 않을까? 우리 부부 역시 애들 공부 문제로 고민할 때보다 가끔씩 주어지는 이런 분위기를 사랑한다. 우리는 그저 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조금만 도와주면 된다고 생각한다.
최근 공교육 부실화에 대한 여론이 끓는다. 그리하여 많은 수의 학부모들이 자녀들을 이끌고 교육이민의 길에 오른다. 학교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다 보니 자꾸 사교육 시장이 기승을 부리고 과외비로 지출되는 돈은 가정 경제를 휘청거리게 만든다. 이러한 교육 황폐화의 원인 중의 하나가 바로 어른들의 욕심이란 생각이 든다.
정작 아이들이 행복해 하는지, 만족감을 느끼는지에 대하여는 전혀 상관치 않으면서 경쟁으로 내모는 일에 부모들이 앞장서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볼 일이다.
함영기(서울 양천중학교 교육연구부장)
전교학신문 7월 31일자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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