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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컴지기 칼럼
교육의 주체가 그들의 언어로 미래교육을 상상하는 이야기
휘청거리는 오후
"... 이 정적, 이 무관심은 정말 견딜 수 없다. 이 공포감이 나만의 것이라니 정말 견딜 수 없다."(545쪽)
박완서의 소설 <휘청거리는 오후>는, 마지막 페이지에 섞여 있는 이 문장을 향해 달린다. 주인공 허 성씨가, 그의 아내와 세 딸이, 그리고 딸의 남자들이 각기 다른 캐릭터로 달린다. 그들은 매 장면마다 욕망을 '성실하게' 교직하며 서사를 이뤄간다.
"허 성씨의 왼쪽 손은 공장에서 절단기를 잘못 조작하다 손끝이 잘려나가 새끼손가락 길이로 일직선이었다." (13쪽)
이야기의 초입부에 소개하는 허 성씨의 왼쪽 손에 대한 묘사다. 저자가 펼쳐갈 스토리가 만만치 않음을 암시하는 일종의 상징이다. 이야기 곳곳에서 왼쪽 손이라는 장치는 허 성씨의 드러내고 싶지 않은 내면의 굴곡을 표현한다. 이 손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낄 때마다 어떤 큰 이벤트가 있다. 딸의 맞선 자리에서 들키지 않으려는, 또 지체있는 누군가를 상대할 때도 들키지 않았으면 하는... 왼쪽 손은 이 소설 전반에 걸쳐 자유에의 갈망과 그 속박을 상징한다.
"그리고 아무런 부끄러움도 없이 마음껏 내휘두를 수 있는 이 왼손의 자유는 또 무엇에 비길까"(51쪽)
끝내 정적 속에서 왼 손에 자유를 허락하기까지 주머니 속에서 속박 당했던 왼 손에 찾아든 순간적인 자유에 감탄하며 허 성씨는 그의 작고 지저분한 영토(공장)를 몇 바퀴 서성댄다. 사회로부터 고립되었을 때 오히려 왼쪽 손은 자유를 느낀다.
"두 사람 사이의 악수는 단순한 악수가 아니라 농밀한 교감을 위한 일종의 의식이었다."(530쪽)
유 영감이 아무하고나 안 하는 악수를 허 성씨와 하는 장면이며 허성 씨 역시 왼손에 뜨거운 자유를 허락하는 장면이다. 위의 몇 문장을 인용한 것은 주로 허 성씨의 왼 손에 대한 것이다. 시골의 초등학교 교감직을 그만두고 그가 택한 것은 아주 작은 공장. 그 공장에서 작업하다 잘려나간 왼쪽 손가락은 이 소설을 관통하는 기둥 줄기처럼 보인다. 그것을 측면에서 받쳐주는 것이 같은 일을 하면서 손을 잘린 유영감인데 위 문장은 그 두 손끼리 마주 잡았을 때 느끼는 농밀한 교감이다. 아무도 모르지만 그 두 손끼리는 아는, 일종의 애무를 동반한 고단한 삶에의 위무이다.
<휘청거리는 오후>를 집어 들었을 때, "... 이 정적, 이 무관심은 정말 견딜 수 없다."(545쪽) 라는 문장을 읽을 때까지도 내가 예전에 이 소설을 읽었었나, 언제였었나... 하는 물음에 답하지 못하였다. 한 문장 한 문장은 기시감으로 닥쳐 왔으되, 다른 한편으론 모든 문장과 모든 인물이 생소했다. 가장 중요한 결말이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고단한 일상의 중년 남자에 대한 묘사는 익숙하였지만 고비마다 한 번씩 떠올리게 되는 생각, 그래서 이 허 성씨의 결말은? 에 대한 답은 좀처럼 떠올리지 못하였다. 가위눌리듯 500여 쪽을 읽고, 그리고 결말을 확인하고서도 나는 끝내 내가 이 책을 처음으로 읽은 것인지 두번째인지를 확인할 수 없었다. 확인하고자 노력을 했던 과정의 무의미함에 대한 깨침도 사실은 끝문장을 읽고 난 직후였다.
어떤 사람은 내면에 꿈틀거리는 속물근성을 아예 만천하에 드러냄으로써 삶의 위안을 삼고, 어떤 사람을 그것을 오장육부에 꽁꽁 숨겨둔 채 세련되고 우아한 페르소나를 만들어간다. 둘 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소설 속의 허 성씨는 견디듯 산다. 더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용서하지 못하는 국면에 이르러 <견딜 수 없는 정적과 무관심>을 절감한다.
욕망을 드러내든, 숨기든 현대인들은 자기 욕망으로부터, 또 타자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소설은 묻는다. 이 삶은 도대체 내 삶이냐, 네 삶이냐, 너에게 보이고 싶은 내 삶이냐고.
<휘청거리는 오후, 1993, 박완서,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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